동반 순간이동이 시공간에 뚫은 설정 구멍

레귤러스 블랙의 불필요한 죽음의 원인은 순간이동의 설정 변경에 있다.

2021년 12월 5일 트윗을 옮김.


안녕하세요 주유월님 제 최애 레귤러스 블랙 얘기도 조금 해주세요...감사합니다.

— 페잉 메시지

레귤러스 블랙이란 인물 본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저는 늘 레귤러스 블랙의 불필요한 죽음과 동반 순간이동 설정에 대한 플롯홀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레귤러스 블랙…… 죽을 이유가 딱히 없잖아요? 왜? 동굴에서 안 나가는데? 아무 설명도 안 되는데 왠지 비장한 양 연출되어서 그 시점쯤 되어선 충분히 단련된 이 아동문학의 독자들이 대충 받아들여준 거죠…….

그런데 작중 순간이동 설정의 취급을 잘 보면 5권까지는 동반 순간이동이란 개념 자체가 부재한 듯 묘사되거든요. 5권 막바지에 볼드모트가 벨라트릭스를 챙겨서 순간이동으로 마법부에서 ㅌㅌ하기는 합니다만 그전까지는 남을 붙잡고 순간이동이 전혀 불가능하고 그게 상식인 양 전개되죠.

"그래서 형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단 말인가요? 어째서 우리는 순간이동으로 갈 수 없는 거죠?"

프레드가 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투덜거렸다.

"너희는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시험도 치르지 않았잖니?" 위즐리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여자애들은 어디로 간 거니?"

—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빗자루를 타고 갈 거다." 루핀이 말했다. "그 방법밖에 없어. 순간이동을 하기엔 네가 너무 어리고, 플루 네트워크는 놈들이 감시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고 허가받지 않은 포트키를 설치하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그래, 보통은 순간이동을 하지." 위즐리 씨가 말했다. "하지만 너는 못하니까. 그리고 난 완전히 비마법적인 방식으로 도착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단다. 더 좋은 인상을 주는 거지. 네 징계 청문회가 열린 이유부터가……."

—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보면 5권까지 순간이동에 언급된 모든 장면은 애초에 훈련된 성인 마법사가 훈련받지 않은 어린/미숙한 마법사를 붙잡고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부재하다니까요?

6권/혹은 5권 막바지를 집필하는 시점에 가서야 롤링이 생각보다 이동수단이 골치아프단 걸 깨닫고 지금까지 등장한 작가양반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매우 흥미로운 이동 개념들, 빗자루와 플루 네트워크와 기사 버스와 포트키를 의미불명의 폐기물처럼 만들어버리고 플롯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동반 순간이동이란 개념을 추가했다고 보면 아주 많은 게 설명되죠…….

해포의 구성을 잘 뜯어보면 그 권에 처음 등장하는 마법 개념은 초반부터 꼬박 이곳저곳에 배치해 언급하는, 약간 눈가리고 아웅스럽지만 그럼에도 세심한 작법 내지는 글버릇이 반복되거든요?

3. 집 주변의 보안장치들을 재확인하십시오. 가족 모두가 방패 마법과 보호색 마법, 미성년자가 있을 경우 동반 순간이동 같은 비상 조치에 대해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근데 6권에서 동반 순간이동도 초반부터 뜬금없이 언급돼요. 빼박이죠. JKR이 글쓰기 귀찮아져서 편의주의적 설정을 추가해놓고 물타기를 한 겁니다.

그렇게 보면 레귤러스의 죽음을 둘러싼 근본적 의문이 아주 많이 설명됩니다. 레귤러스의 죽음은 독약으로 머리가 돌아버린 청년이 결행한 의미불명의 자살이 아니라 단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그 할 수 있는 것에 사랑하는 집요정을 희생시키는 게 없었을 뿐인 절박한 죽음으로 바뀌게 되죠.

왜? 크리처랑 같이 탈출을 안 했는가?: 마법약으로 인해 자력으로 순간이동할 힘이 없어서 못한 거다.

레귤러스는 정말로 설명되지도 않고 솔직히 정당화될 것 같지도 않은 이유로 크리처에게 자기가 자살하는 걸 그냥 내버려두고 가라고 명령했단 말인가?!: 아니야 크리처가 얘 못 데리고 나가.

레귤러스가 최초로 언급된 권은 5권이고, 그 시점에서는 이미 죽었으며, 볼드모트에게 살해당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된데다, 로켓도 나왔죠.

즉 레귤러스는 동반 순간이동이 존재하지 않은 세계에서 죽었고 잠수한 패치된 우주가 이미 죽은 레귤러스에게 패치를 적용하는 걸 까먹었을 뿐인 겁니다.

사적인 감상인데, 굉장히 중요한 반전 플롯인 레귤러스의 죽음을 농담처럼 만들어버린 것도 문제지만 각자 장단점을 갖고 있어 훌륭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빗자루-플루-포트키-기사버스란 흥미로운 설정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는 지점에서 저는 동반 순간이동이란 때우기 설정을 매우 증오합니다.

가장 끔찍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7권의 모든 플롯이 동반 순간이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만 봐도 동반 순간이동이 얼마나 월드빌딩을 망치고 플롯에서 재미를 말살하는 편의주의적 설정인지 보이죠…….

반항적 포터헤드라면 팬픽션에서 마땅히 동반 순간이동을 삭제해야 한다는 게 저의 논쟁적 견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