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원의 보아구렁이 # 해리 포터 팬픽션 주유월 ## 목차 ## 1화. 보아구렁이는 죽었다 2화. 당신이 마법사군요 3화. 첫인상 4화. 초심자의 행운 (1) 5화. 초심자의 행운 (2) 6화. 재회 (1) 7화. 재회 (2) 8화. 재시동 9화. 지혜의 출처 (1) 10화. 지혜의 출처 (2) ## 1화. 보아구렁이는 죽었다 ## “보아구렁이, 죽었다는데.” 두들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서 대뜸 던지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라고. 네 뱀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아, 불쌍해라.” 그렇게 말하며 두들리는 지역 신문의 한 귀퉁이를 해리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 우리에서 탈출한 보아구렁이, 끝내 사망 지난 23일 서리의 체싱턴 동물원에서 대형 뱀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뱀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브라질산 보아구렁이로, 오후 2시경 우리를 탈출해 원내를 배회했다. 약 2시간의 추적 끝에 뱀은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뱀은 놀란 방문객들의 발길질과 그들이 던진 물건으로 인해 크게 다쳤고, 끝내 어제 오후 5시경에 죽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 해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신문에 실린 뱀이 우리를 빠져나가게 만든 원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해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우리에서 잠자던 보아구렁이가 자신을 향해 눈을 찡긋했던 것을 기억했다. 또 자신은 한 번도 브라질에 가 본 적 없다고, 동물원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했다. 아니, 말했던가? 정말 그랬는지, 단지 그렇게 믿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해리는 처음 만난 신비로운 동물 친구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녀석에게는 유리창이나 두드려 대는 멍청한 인간들에게 종일 시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해리는 우리의 유리창을 없애 버렸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해리가 그렇게 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해리는 자신이 탈출시켜 준 보아구렁이가 브라질에 갔으리라고 믿었다. 멀어지는 뱀에게서 마치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것만 같았다…….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우리에서 나간다고 뱀이 브라질까지 갈 수 있을 리 없다. 만에 하나 보아구렁이를 탈출시킨 모종의 ‘마법’이 녀석이 브라질에 도착하기까지 가호했다 한들, 동물원에서 태어난 뱀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그 뱀은 해리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해리는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졌다. 뱀이 죽은 게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실망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신문에서 시선을 떼자 두들리 녀석은 진작 해리의 화가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있었다. 해리는 공연히 짜증을 담아 방문을 째려봤다. 매서운 시선이 닿자 방문이 저절로 쾅 닫혔다. 창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 * * 해리는 마법사였다. 혹은 초능력자. 아니면 외계인. 뭐든 간에. 해리는 정확한 명칭을 몰랐다. 다만 어쩐지 ‘마법사’가 ‘올바른’ 것만 같은 이유 모를 직감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자신을 마법사라고 불렀다. 해리는 평범한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이상한 일들을 아주 많이 할 수 있었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일쯤이야 우스웠다. 해리는 잠깐이나마 하늘을 훌쩍 날아 지붕 위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두들리에게서 물려받은 물 빠진 스웨터를 파란색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해리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었다. 해리를 몇 시간이고 쫓아다니며 물어뜯으려고 했던 마지 ‘고모’의 불도그 리퍼는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해리를 수시로 비웃고 때렸던 같은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어떤 날을 기점으로 이유를 밝히기를 거부하며 등교를 거부하다 전학을 갔다. 그리고 페투니아 이모가 공동 육아실을 네 살이 된 두들리의 방으로 바꾸고 그 대신 해리를 계단 밑 벽장에 처박아 버리려고 했을 때는……. 글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후로 벽장 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런 남다른 재주가 있는 해리였지만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딱히 해리가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꽤 영리한 아이였고, 그 자신도 그것을 ‘알았다’. 단지, 오히려 그랬기에 결국 제 손에 남는 건 말썽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위 끝에 간신히 얻어낸 방은 해리의 것이 아닌 잡동사니로 가득 차버렸다. 벽장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집에는 해리의 것보다도 넓은 빈방이 하나 있었지만 그 방은 손님방으로 쓰여야 하므로 (손님은 보통 마지였다) 깨끗하게 비워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애견을 잃은 마지는 해리에 대한 증오를 더욱 키워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수시로 우겨댔다. 짖는 개는 더 이상 없었지만 마지의 집요한 괴롭힘은 더욱 심해져 해리를 정말로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넣곤 했다. 초등학교의 일도 그랬다. 끝내 아이들이 해리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얻은 것은 고독이란 사실 육체적인 고통이라는 깨달음뿐이었다. 일주일 내내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은 뒤에 알게 된 사실이다. 찬장의 감기약을 훔쳐 먹으면 한결 나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떤 동화책 속 옷장에는 마법의 나라가 들어 있었지만 해리의 옷장에는 빌어먹을 파란 스웨터가 들어 있었다. 여전히 보기 싫게 늘어지고 보풀투성이인 두들리의 헌 스웨터가. 그럼에도 해리는 자신의 ‘마법’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무정하고도 잔혹했고 의지할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는 해리는 너무나 연약했기에……. 해리는 그런 자신을 별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나쁜 아이니까. * * * 보아구렁이 사건으로부터 한 달가량이 지났다. ‘서리, 리틀 위닝, 프리벳가 4번지, 가장 작은 방, H. 포터 군 앞’ 봉랍으로 봉인된 양피지 봉투에는 우표가 없었다. 에메랄드빛 잉크로 적힌 주소는 아주 정확하게 해리를 지명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돌아가며 해리는 편지를 살펴봤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멀린 1등급 훈장, 수석 마법사, 최고 위원장, 국제 마법사 연맹 회장) 포터 군에게 귀하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 드립니다. 필요한 교과서 및 준비물 목록을 동봉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학기는 9월 1일에 시작합니다. 늦어도 7월 31일까지 부엉이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교감 미네르바 맥고나걸 드림 --- “이게 뭐냐…….” 아침 먹다 말고 편지 가지러 갔다 오면서 가볍게 볼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마법학교? 해리는 늘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있는지, 이 ‘마법’이 정확히 어디서 온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가끔가다 해리는,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는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일에 휘말리고는 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어린 ‘동족’에게 아는 척을 했던 것이 아닌지 막연히 추측해 왔다. 넓은 세상에서 자신 혼자만이 별종이 아니라는 생각은 외톨이 마법사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이모와 이모부가 그의 기묘한 재주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기 때문에, 해리는 적어도 이 뭔지 모를 것에 대한 무언가 정립된 것이 존재하기는 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해서 자세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소위 비정상이란 것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자랑인 양반들이 그렇게 뭘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본래 이러한 종류의 진실은 때가 되면 어련히 알게 되기 마련인 법이므로 여태껏 해리는 굳이 화를 사면서까지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이 그때인 모양이었다. “마법학교란 곳에서 편지가 왔는데요.” 식탁에 돌아온 해리가 가져온 우편물을 툭 던지며 말을 꺼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해리에게서 편지를 홱 빼앗아 들고는 페투니아 이모와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 아직 다 안 읽었는데 다 보셨으면 돌려주세요.” 해리가 말했다. 옆에서 두들리는 해리의 편지를 훔쳐보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기웃대고 있었다. “나가!” 버논 이모부가 호통을 치며 해리의 목덜미로 손을 홱 뻗었다. “어허.” 해리는 날랜 몸짓으로 이모부의 손아귀를 피했다. “밥은 마저 먹어야죠.” 해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천천히 식사나 하면서 중요한 얘기를 좀 해 봅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모랑 이모부가 저한테 말 안 해 줬던 것들에 대해서요. 마법이라든지, 마법학교라든지, 뭐 그런 것들 말이죠.” 버논 이모부의 뒤에서 페투니아 이모가 쥐어짜이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심기가 불편해진 듯한 아내의 눈치를 살짝 보고는, “마법은…… 없어! 꿈도 못 꾼다. 이런 헛소리 따위!”라고 말하며 해리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해리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자 바닥으로 떨어지던 편지 조각들이 해리의 손바닥 위로 나풀나풀 날아올라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거 다 못 읽었다니까.”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두들리가 헉 소리를 냈다. 노골적인 물리법칙 위반에 버논 이모부는 거의 폭발할 것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어떻게…… 감히…… 내 앞에서…… 그, 그, ‘그 짓’을!” 터지기 직전의 이모부를 보며 해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말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보쇼,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어쨌든 언젠가는 해야 할 얘기 아니요? ‘마법은 없어’?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런’ 걸 할 때마다 벌을 줬던 건 전부 뭐였는데? 댁들이 뭔가 알고 있단 건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해리는 손가락을 내밀어 보란 듯이 까딱였다. 해리의 손짓을 따라 버논의 넥타이가 허공에서 절로 풀리고는, 다시금 주인의 목에 멋들어지게 매였다. “아니면 정말로 ‘벽장 사건’의 재림을 보고 싶어?” 일련의 과정에 내포된 암시에 버논은 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창백하게 질렸다. 물론 진짜로 목을 조를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면 조금 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후회가 들던 차였다. 쾅!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진동이 따라왔다. 소리의 출처는 계단 밑 벽장, 단단히 잠긴 문의 안쪽이었다. 그들은 오래된 공포를 떠올렸다. 벽장에 봉인되었던……. 페투니아는 두들리를 끌어안았다. “그, 그럴 수 있을 리 없어, 아무리 너라도 그건 다시 못 해!” 부정의 말과 달리 버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럼 시험해 보시지.” 해리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사실 버논이 맞았다. 방금 전의 것은 해리가 아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전혀 몰랐다. 애초에 당시의 ‘벽장 사건’부터 해리의 자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는데 나서서 불리한 증언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훌륭한 지원이었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페투니아가 흐느끼며 모두 털어놓겠다고 항복했던 것이다. 그날 그들은 많은 대화를 했다. ### 작가의 말 ### ‘동물원의 보아구렁이’는 트위터에서 이야기했던 많은 소재가 총집합된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개가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면, 네, 자기표절이 맞습니다. 변명하자면 몇 년째 구상해온 이야기입니다. 그 조각 중 쓸만한 것을 참지 못하고 변용해서 써버린 것이 잔뜩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선후관계가 정반대인 것이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일단 대략적인 구상은 완결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힘 닿는 데까지 연재해 보겠습니다. ## 2화. 당신이 마법사군요 ## “에휴.” 7월 31일, 한여름의 아침, 해리는 죽상을 하고는 정원의 잔디밭에 드러누워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해리는 불과 일주일 전에 그 자신과 부모님을 둘러싼 진실, 그리고 이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마법사들이 사는 마법세계가 존재했고 그곳에 해리 같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있다고 했다. 솔직히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해리가 넓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돌연변이인 것보다는 훨씬 이치에 맞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부모님이 해리와 같은 마법사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기실 해리는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해리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고 그를 맡아 준 이모와 이모부는 그때껏 해리에게 부모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부모님과의 연결고리가 생긴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하지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게 아니라 사실 사악한 연쇄살인마 흑마법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것, 그런데 일가족을 참살한 그 살인마가 갓난아기였던 해리 앞에서 어디론가 모습을 감춰서 해리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실종된 살인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살아남은 해리와 페투니아 이모, 그리고 그 가족이 노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의 말에 따르면 덤블도어라는 마법사(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으로, 해리의 편지에도 나와 있는 인물이다)가 신변을 보호하는 마법을 걸어 주어서 프리벳가 4번지, 정확히는 해리와 이모가 사는 집이 일종의 안전가옥 역할을 한다고는 했다. 하지만 해리는 그 ‘안전’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마법이란 것이 진정 거주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면 마지의 빌어먹을 불도그는 뭐였단 말인가? ‘리퍼 사건’은 문자 그대로 집 앞마당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해리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이유는 감당하기 벅찬 진실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호그와트란 곳의 멍청한 행정 처리 때문이었다. 그래, 행정이다. 도대체 어떤 세상이 열한 살짜리(오늘부로) 어린아이가 무능한 행정을 욕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때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세상은 무정하고 잔혹하니까. ‘부엉이가 뭔데. 망할 자식들아.’ * * * 상황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혼란스러운 제반 설명을 끝내고 그들은 해리가 호그와트에 가느냐 마느냐로 한창 논쟁 중이었다. “몇 번이고 분명히 밝혔다.” 버논이 말했다. “우린 절대 그런 데 널 보내지 않아. 이건 다 페투니아하고 오래전부터 결정한 거다.” “그러니까 그걸 왜 이모하고 이모부가 정하냐 이거죠.” 해리가 대들었다. “내 인생인데.” “혼자서 어디 잘해 보라지! 어쨌든 우린 그런 멍청한 학교에 한 푼도 내주지 않을 거다!” (해리의 부모님이 해리 앞으로 재산을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안건이었다.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그들은 아주 젊은 부부였고 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으니까.) “그건 아마…….” 해리가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 “대안이……, 있을 거예요. 장학금이라든지.” “하! 장학금은 가난한 집 애들을 위한 거고! 중요한 건 보호자가 동의를 안 한다는 거지!” “나는 댁들이 보호자인 거에 동의한 적이 없네요!” 해리와 버논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차였다. “네 엄마도 똑같았어.” 갑자기, 조용히 있던 페투니아가 입을 열었다. 자리의 일동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 날 네 엄마는 이런 편지를 받았고, 그, 그쪽 세상으로 가버렸지. 그러고는, 죽어 버렸어. 꼭 자기처럼…… 비정상적인…… 괴물들이랑 어울리니까 그렇게 된 거야! 자업자득이지! 너도 그, 그렇게 되고 싶어?” 순간 해리는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고 반사적으로 소리 지를 뻔했다. 하지만 문득, 비틀린 형태로나마 페투니아가 어머니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페투니아는 어머니의 언니였던 것이다. 해리의 어머니,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에 대해서 드물게 적선하듯 해주는 말이라곤 헐뜯는 욕밖에 없었던 이 사악한 여자도 동생의 죽음에는 원한을 품는다는 생경한 사실에, 해리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동시에 마법학교의 존재에 흥분해 무작정 가겠다고만 우겼던 자기 자신에게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자, 페투니아 이모,” 해리의 목소리는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하지만 이모, 저는 이 세상을 알고 싶어요. 제 부모님이 살아온 세상을, 저를 부르는 세상을요. 계속 이곳에 있어봤자 제게 미래는 없어요. 그냥, 아시잖아요, 전…….” 사람들하고 어울리질 못하죠. ‘비정상’이니까. 해리는 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저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어차피 이모가 설명한 대로 우리가 이미 표적이 됐다면 그들을 피하든 말든 소용이 없을 거예요. 그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을 지킬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다면…….” 해리가 음산하게 말했다. “복수할 수도 있겠죠.” 해리는 자신의 이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혈육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해리는, 페투니아의 눈동자에서 지금껏 본 적 없던 어떠한 불꽃이 튀기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무튼 안 돼.” 페투니아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허락 못 해.” ‘쩝. 실패했나.’ 버논이 고개를 묻어 버린 아내를 달래려고 거북한 소리를 쏟아댔다. 얼핏 가부장과 가정주부의 전형인 버논과 페투니아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착각하기 쉽지만, 해리는 이 집의 실세가 페투니아임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았는데……. 애가 탔다. “그런데 애초에 이 호그와트란 곳에 갈 방법이 있긴 해?” 갑자기 끼어든 것은 두들리였다. 그때까지 두들리는 해리의 입학통지서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두들리, 어른들 말하는 데 끼어들지 마라. 방에나 가 있어.” 해리가 말했다. “너도 애잖아.” “하지만 내 일이잖아.” “그리고 가족회의잖아. 나는 원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 그렇게 대꾸하고는, 두들리는 해리의 편지를 팔랑이며 내밀어 보였다. “그냥, 보라고. 입학하려면 부엉이를 보내라고 적혀 있잖아. 이게 무슨 말이긴 해?” --- 늦어도 7월 31일까지 부엉이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게?’ 워낙에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기에 그만 잊어버렸지만, 확실히 이것은 문제였다. 허락을 받고 자시고 애초에 학교에 연락을 못 하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모?” 해리가 조심스럽게 페투니아를 불렀다. “난…… 몰라!” “유감이네요. 저도 웬만하면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해리가 찬장으로 눈을 슬쩍 흘기자 페투니아의 가장 아끼는 접시가 달각달각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몰라!” 페투니아가 비명을 빽 질렀다. “그때는 사람이 편지를 가지고 왔었어! 우리 집은 마법사 가족이 아니랍시고, 찾아와서 말도 안 되는 걸 보여주고는 어머니 아버지 혼을 온통 쏙 빼놨다고! 설명 같은 건 다 그쪽에서 했었단 말이야!” “그럼 왜 이번에는…….” 깨달음이 번개처럼 그들의 뇌리를 스쳤다. 이번에는…… 아이의 부모님이 마법사였으니까? “정말, 정말 유감이구나.” 버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서는 희열이 보기 싫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대단하신 마법사들이래도 소위 행정이란 것을 처리하는 놈들은 무능한 모양이야. 언제나 무언가 멍청한 실수를 해서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지. 마법학교에 꼭 가게 해주고 싶었는데 저어엉말 안 됐어, 으응? 왜냐하면 우리는 부엉이를 보낼 줄 모르니까. 헤 헤 헤!” “말도, 말도 안 돼. 분명 나중에 사람이 찾아올 거야. 분명 실수를 알아차릴 거라고…….” 충격과 공포에 빠진 해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면 얘기는 끝났군. 늦었으니까 우린 잠이나 자러 가련다. 가자, 두들리.” 얄미운 친척들은 일제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해리만이 혼자 남았다. * * *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안내된 입학 원서의 마감일이 되도록 호그와트에서는 어떠한 서신도 사람도 없었다. 그간 해리가 그저 기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페투니아에게서 ‘부엉이’에 대해 뭐라도 캐 보려고 애를 썼다. 물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아는 게 정말로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건진 것은 마법사들은 다 ‘부엉이’를 한 마리씩 기른다는 것과 어머니도 ‘부엉이’를 길렀다는 사소한 정보 따위였다. 미친 척하고 두들리의 돈을 훔쳐 애완동물 가게를 찾아가 볼까 싶었지만, 거기서 부엉이를 팔 것 같지도 않았거니와 그 전에 마법사들이 기르는 ‘부엉이’가 평범한 부엉이인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해리가 마법학교에 가기엔 그른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결코 마법세계에 가지 못할 것이다. 숨 막히는 리틀 위닝에서 살다 죽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부려 온 약간의 재주가 어디로 가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세상에는 진짜 마법사가 있었고, 해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법학교의 직원들이 마법사의 아이는 당연히 부엉이를 보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냉담한 머저리들이었으니까. 십 년 후 이맘때쯤, 고아 소년의 입학 허가서에 어떤 특별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마법-행정실의 마법사-직원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어른이 된 그는 ‘그러고 보면 대체 부엉이는 뭐였던 걸까’를 상념으로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마땅히 예상해야 했을 일이었다. 해리의 인생은 언제고 잘 풀리는 법이 없었으니까. 사악한 친척들에게 시달리던 특별한 고아 소년이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고 새 출발을 한다니? 그런 건 동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해리의 동화란 자신을 찾고자 우리를 떠났다가 브라질은 구경도 못 하고 무정한 인간들에게 밟혀 죽은 보아구렁이였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놀랍도록 순진한 법이어서, 소용없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고 또 으레 실망하게 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오늘은 해리의 생일이기까지 했다. 생일이 끝나는 순간 결정되는 좌절이 제게 주어질 유일한 생일 선물이라는 사실은 해리를 지극히 우울하게 만들었다. 해리는 잔디밭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할 만큼 했다. 해리는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순진한 어리석음을 때려치우기로 했다. 막 현관을 향해 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허공에서 불꽃이 나타났다. 불꽃은 이내 평범한 사람의 두 배는 될 거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거인의 어깨에 앉은 아름다운 붉은 새는 다시 불꽃으로 화해 사라졌다. 어쩌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동화를 믿어보자고, 해리는 생각했다. “당신이 마법사군요(You’re a wizard)!” ## 3화. 첫인상 ## “해리의 답장이 아직 오지 않았네.” 문득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분명히 편지가 전달되었다는 신호는 왔는데 말이야.” “무슨 해리요.” 세베루스가 무신경하게 대꾸했다. “그야 당연히, 해리 포터지!” 해리 포터! 그 이름에 세베루스는 묻어 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릴리의 아이, 제임스의 아들, 그리고 지켜야 할 존재. 말이야 거창하지 세베루스는 그간 그 소년과는 동떨어진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유예는 유예일 뿐, 마침내 때가 오고 만 것이다. “시간도 참 빠르군요.” 세베루스가 침음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단 건 무슨 말입니까? 입학 원서를 말하는 겁니까?” 덤블도어는 어쩐지 실망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계획은 해리가 편지를 받지 못하면 볼 때까지 편지 폭탄을 보내는 것이었지. 배달된 달걀 안에 하나하나 편지를 말아 넣는 발상은 개인적으로 천재적이라고 자평했지만 시행하기도 전에 불발되고 말았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가끔은 상사의 광기를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세베루스가 할 말을 잃고 그저 눈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자, 덤블도어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해리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 이제 다시 계획대로 해그리드를 보낼 수가 있게 됐네! 얼마나 잘 됐나!” ‘뭐가.’ “그런데 왜 해그리드 씨입니까?” 고르고 고른 질문이었다. 대체 편지 폭탄 운운은 뭐였는지, 소년이 머글 집에 살고 있는 것이 뻔함에도 애초에 왜 제때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는 물어봐 봤자 머리만 더 아파지리라.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었다. “혹시 자네가 갈 텐가?” “미쳤어요?” 직후 그는 정정했다. “아니, 제 말은, 제가 마지막으로 ‘가정 방문’을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그때 그들이 얻었던 교훈은 죽음을 먹는 자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서 무언가를 권하는 일을 결코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왜 그런 권유를 하시는 겁니까?” “모르겠나, 세베루스? 바로 그래서라네.” “……그래서 해그리드 씨라고요?” “그렇지!” 노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낄낄 웃었다. 세베루스는 어째서 덤블도어에게 머글의 대변자라는 평판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전직 죽음을 먹는 자조차도 그의 발상에 경악하곤 하는데 말이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새 학기가 걱정됐다. * * * 목 빠지게 호그와트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렸던 해리였지만, 그가 그렸던 그림은 막연하고도 단순했다. 입학 상담이 뭐 별것 있겠는가. 교육과정을 설명하고, 본교의 훌륭한 전통과 차별점을 피력하고, 등록금에 대해 논의하고, 장학금을 가지고 합의를 보고, 회의적인 보호자들을 설득하고, 그 정도 아니겠나. 애초에 해리의 기다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나온 원시적인 기원 행위에 불과했다. 그는 아침 7시부터 사람이 찾아오기를 죽치고 기다렸지만 ‘실제로’ 아침 7시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평일 아침 댓바람에 사람을 보낸 것일까? 해리는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신 나간 노친네에게 한 푼도 줄 생각 없어!” “절대로…… 내 앞에서…… 알버스…… 덤블도어를…… 모욕하지 마!” 버논의 발언에 격노한 해그리드(거인의 이름이다)는 치켜든 우산을 페투니아 뒤에 숨어 있던 두들리에게 겨눴다. 보라색 섬광과 굉음에 뒤이어, 새된 비명이 프리벳가 4번지를 꿰뚫었다. 해리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을 비틀고 펄쩍이며 괴로워하는 두들리의 엉덩이에, 돼지 꼬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돼지 꼬리. 몇 번을 봐도 분명한 돼지 꼬리였다. 사람에게 돼지 꼬리를 달다니! 지금껏 해리는 자신의 마법으로 나쁜 짓을 많이 해 왔다. 아니, 나쁜 짓만 했던 것 같았다. 물건을 훔치거나, 아이들을 겁주거나, 어른들도 겁주거나, 개를 죽이거나(변명하자면 그건 정말로 자기방어였다), 가장 심하게는 식탁을……. 이건 해리의 통제 밖이었으니 논외로 치자. 하지만 사람에게 돼지 꼬리를? 그건 너무…… 파괴적이었다! 해리로선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니, 설령 해리가 작정하고 그러려고 한다 한들, 그런 대단한 재주는 부릴 자신이 없었다. ‘이게 진짜 마법, 진짜 마법사.’ 해리가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충격에 휩싸여 있는 동안 해리의 친척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모와 이모부는 괴성을 지르며 두들리를 끌어안았고, 두들리는 꺼이꺼이 울부짖고 있었다. “이런, 사고 쳤네.” 해그리드가 혀를 찼다. “원래는 돼지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돼지 같아서 더 바꿀 게 없었던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돼, 돼지로.” 해리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크흠, 해리?” 해그리드가 해리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이 일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구나. 어, 나는 원래 마법을 쓰면 안 되거든.” “하지만 아저씨는 마법사 아니신가요?” “전과가 좀 있어서.” 해그리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해리는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약속할게요. 절대 아무에게도 말 안 할게요.” 해리는 거인의 딱정벌레 같은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맹세했다. “고마워. 자, 그럼 가자.” 해그리드가 거대한 손으로 해리의 손을 감싸 쥐었다. “어, 어디로요?” “다이애건 앨리! 네 학용품을 사야지.” 그렇게 해리는 무난하게 납치당했다. 어처구니없지만, 해리는 이 살아있는 폭력의 화신과 사랑에 빠졌다. 어쨌든 해그리드는 두들리에게 돼지 꼬리를 달아 주었던 것이다. * * * 마법세계로 처음 들어간 해리를 얼떨떨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곳에서 해리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리키 콜드런(다이애건 앨리의 입구가 있는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았다. 해리의 부모님을 살해한 살인마, ‘볼드모트’가 엄청난 악명과 공포를 떨치던 악당이었기에, 해리는 그런 그를 물리친 일종의 영웅이란 게 설명이었다. 덮어놓고 좋아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갓난아기가 훈련된 마법사를 상대해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마법세계의 상식이란 말인가? 해그리드는 “그게 기적이기 때문에 네가 ‘살아남은 아이’라고 불리는 거란다”라고 말했지만, 해리는 자신이 일종의 광대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쨌든 해리는 여태껏 자신의 조실부모에 대해 많은 말을 들어 왔지만 그 말을 꺼낸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가 무례한 말을 하고 있단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려고 한 거니까). 그런데 마법사들은 부모님이 죽은 가운데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유명한 아이를 만나서 기쁘다고 말하면서 해리가 그걸 ‘좋아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잔인했던 이모와 이모부조차도, 물론 마법에 대해 감추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건에 대해서는 그가 열한 살 가까이가 될 때까지 쉬쉬하고 있지 않았는가. 해그리드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일을 모르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해리는 아이치고는 드물게 ‘알기에 너무 이르다’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있는 축이었다. (물론 그는 사촌에게 돼지 꼬리를 달아 준 사람과 논쟁하려고 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마법사들의 예의범절은 어딘가 다를지도 몰랐다. 당장 해그리드 건부터 그랬다. 해리는 최대한 이해해 보기로 했다.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해리는 어느새 해그리드와 함께 그린고트 은행에서 나오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배낭에 든 돈이 묵직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부모님이 이렇게 부자셨다니. 제 이모와 이모부는 부모님이 제 앞으로 한 푼도 남기지 않으셨다면서 늘 식충이 취급을 했거든요…….” 해리를 놀라게 했던 또 다른 사실은 사실 그의 부모님이 아주 많은 돈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더즐리 가족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자신의 취급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해리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는 뜬 눈으로 사악한 친척들에게 유산을 빼앗기느니 좀 가난한 척하고 그들의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쁜 놈들 같으니.” 해그리드가 말했다. “우욱, 그린고트 수레하고는 정말 안 맞아. 난 잠깐 한잔하고 올 테니 교복을 맞추고 있으렴.” 업무 중 술을 마시러 가는 해그리드의 거침없는 모습에 해리는 더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말킨 부인의 로브 가게에 홀로 들어가게 되었다. “너도 호그와트니?” 해리의 옆에서는 또래의 소년이 마찬가지로 교복을 맞추고 있었다. 아이가 말을 붙여왔다. “우리 아빠는 옆 가게에서 내 책을 사는 중이야. 엄마는 저쪽에서 지팡이를 보고 계셔. 다음에는 엄마 아빠랑 경주용 빗자루를 보러 갈 거야. 왜 1학년들은 자기 빗자루를 가져갈 수 없는 건지 모르겠어. 아빠를 졸라서 하나 사 달라고 해야겠어. 어떻게든 몰래 가지고 들어가야지.” 해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닥치라고 할 뻔했다가 그런 자신에게 화들짝 놀랐다. 이 아이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강하게 두들리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왜냐하면…… 단지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어리광쟁이라는 티를 내고 있기 때문에? 순간 해리는 자신의 마음 속 어둠을 깨닫고 반성했다. “너는 빗자루 있니?” “퀴디치는 안 하니?” “‘나는’ 하는데. 아빠는 당연히 내가 기숙사 대표 선수로 뽑힐 거라고 하셨어. 솔직히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넌 네가 어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지 아니?” “하기야 가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난 내가 슬리데린에 들어갈 거란 걸 알아. 우리 가족 모두 슬리데린이었거든. 후플푸프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봐,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말지. 안 그래?” 그렇다 쳐도 이 귀찮은 꼬마의 조잘거림은 견디기 어려웠다. 해리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대화를 대강 넘겼다. “앗, 저 사람 좀 봐!” 소년이 고갯짓한 유리창 바깥으로 해그리드가 씩 웃으며 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해리는 손을 마주 흔들었다. “저분은 해그리드 씨야.” 해리가 존경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그와트에서 일하셔.” “아, 들은 적 있어. 무슨 하인 같은 거라는데. 너는 왜 저 사람이랑 다니니?” 소년의 목소리가 어쩐지 비웃는 듯 변했다. “혹시 네 부모님이 ‘우리’랑 같은 부류가 아니니?” “납치당했어.” 해리가 태연하게 말했다. “부모님이 마법사셨는데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부엉이를 보내지 못하니까 저분이 오신 거야.” “으, 응?” 해리의 엄청난 설명에 옆에서 옷에 핀을 꽂던 말킨 부인이 컥 소리를 냈다. “무슨 농담 같은 거지, 그렇지?” “아닌데.” “아무튼 아빠한테 들었는데,” 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저 사람은 학교 안에 있는 오두막에 사는데 툭하면 술에 취하고 자기 침대를 태워 먹는대.” 주정을…… 부림. 침대에…… 불 지름. 해리는 해그리드의 야성에 또다시 지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알려줘서 고마워. 참고할게.” 해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사람을 태운다는 얘기는 없었니?” “어, 못 들었는데.” “뭐,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좋아. 너무 무신경했어. 저분이 네 말을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니? 내가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걱정하지 마. 비밀로 해 줄 테니까.” “그, 그래……?” 소년은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너 진짜 납치당한 거니?” “그렇대도.” 해리는 뿌듯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해그리드는 최고야!” “다 됐다, 얘야.” 소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말킨 부인이 해리에게 말했다. 즉시 해리는 받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너 이름이 뭐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년의 물음에 해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해리 포터!” * * * “호그와트에는 어떤 기숙사가 있나요? 슬리데린과 후플푸프에 대해 들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으며 해리가 물었다. “아까 같이 있던 남자애한테서 들었니?” 해그리드가 답했다. “기숙사는 모두 네 곳이야. 그리핀도르, 래번클로, 후플푸프, 슬리데린이 있지. 다들 후플푸프가 얼간이 집합소라고들 하지만, 슬리데린에 들어가느니 후플푸프가 나아.” “그러면 슬리데린에는 더 멍청한 애들이 가나요?” 해리는 좀전의 성가신 소년을 떠올리며 말했다. “음, 그건 아니고. 악당이 된 마법사 중에 슬리데린 출신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 ‘그 사람’도 슬리데린이었지.” ‘나쁜 사람들이 가는 기숙사에는 가면 안 되는구나.’ 해리는 어른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가장 사악한 마법사의 출신을 알아두기로 했다. “그러면 해그리드는 어느 기숙사를 나왔나요?” 해그리드는 그 질문에 어쩐지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리핀도르. 뭐, 쫓겨났지만.” ‘피할 것: 슬리데린, 그리핀도르.’ 해리는 마음속으로 메모했다. “네 부모님도 그리핀도르였어. 보통 가족이 같은 기숙사에 간단다. 거긴 가장 훌륭한 기숙사야. 넌 분명 그리핀도르에 갈 수 있을 거야, 해리.” “오.” 해리는 도로 ‘피할 것’ 목록을 지워버렸다. 그래봤자 학교 기숙사고 다 사람이 가는 곳이었다. 요컨대 간단한 논리학이다. 사악한 사람이 그곳 출신이라는 게 그곳 출신이 다 사악하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해리와 해그리드는 교과서며 학용품을 사러 다이애건 앨리 곳곳을 돌았다. 플러리시 앤 블러트 서점에서 해리는 저주 걸기에 관련된 책 제목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해그리드는 해리가 그 책을 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트렁크 가게에서 해그리드는 해리가 수영장이 들어가는 트렁크를 사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설득 끝에 해리는, 트렁크를 집으로 삼는 건 바보 같은 발상이고 자신에게 그렇게 큰, 그리고 비싼 공간은 필요 없다는 견해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런, 아직 네게 생일 선물도 주지 않았구나.” 막 약재상을 나왔을 때 해그리드가 말했다. “오늘 같이 해 주신 것만으로도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어요, 해그리드…….” “에이, 그런 말 말고. 네겐 부엉이가 필요할 거야. 내가 사 주마.” 해리가 움찔했다. 부엉이의 부재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자신에겐 부엉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와 동물 사이의 상호작용은 모조리 비극으로 끝났다. 불도그 리퍼: 질식사, 두들리의 거북이: 쇠약사, 두들리의 앵무새: 실종, 동물원의 보아구렁이: 부상 끝에 사망. 그런 해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그리드는 해리를 아이롭스 부엉이 백화점이라는 간판이 걸린 부엉이 가게로 이끌었다. 갖가지 부엉이와 올빼미가 있다는 간판에 걸맞게 부엉이 백화점은 크고 작은 새장과 그 안에 든 새들로 빼곡했다. 하지만 해리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 꽂혀 있었다. 그곳에는 유달리 큰 몸집에, 눈처럼 티 없이 새하얀 깃털을 가진 아름다운 흰올빼미가 든 새장이 있었다. 해리는 즉시 이 새와 사랑에 빠졌다. 해리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본 해그리드는 말없이 웃으며 새장을 내려 해리의 품에 안겨 주었다. “너를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해리가 속삭였다. 새는 호박색 눈으로 해리를 응시하며, 나지막하게 삐약이는 소리를 내었다. 해리에게 그것은 마치 그를 승인하는 응답처럼 들렸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해리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 * * 사야 할 물건 중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요술 지팡이였다. 해리와 해그리드는 올리밴더의 지팡이 가게에 들어갔다. 비좁고 허름한 가게는 가게라기보다는 지팡이 상자를 쌓아두는 창고에 가깝게 보였다. 가게 주인 올리밴더 씨는 으스스한 구석이 있는 노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팡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그가 해리의 부모를 죽인 지팡이를 만든 것도 자신이라며 살인 도구에 대한 말을 눈치 없이 주절거릴 때에 이르러선 해리는 그가 좀 정신이 나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리밴더 씨는 해리더러 온갖 지팡이를 휘두르게 만들고 곧장 그것을 빼앗아 가기를 한참을 반복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지팡이 상자가 산처럼 쌓였다. “……호랑가시나무, 불사조 깃털, 28센티미터. 나긋나긋하고 유연하단다.” 해리는 지친 표정으로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이젠 아무런 기대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팡이를 쥐는 순간, 해리는 지금껏 느끼지 못한 따스한 온기와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감각이 해리를 감쌌다. 자신도 모를 고양감에 휩싸인 해리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 끝에서 붉은색과 황금색 불꽃이 튀어나와 이내 뱀의 모습으로 변했다. 해리가 동물원에서 만났던 불운한 친구와 꼭 같은, 크고 아름다운 보아구렁이였다. 불꽃의 뱀은 가게를 한 바퀴 돌고는 빛의 알갱이가 되어 천천히 사라졌다. “아름답구나. 아주 훌륭해.” 해그리드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자신의 첫 ‘진짜 마법’에 흥분한 해리는 올리밴더 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분명히 ‘합격’이다. 아직 듣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흥미로워…… 정말 흥미로워…….” 하지만 올리밴더 씨는 모호한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설마 이것도 도로 뺏어가시진 않겠죠.” 해리가 말했다. “전 이게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아, 그런 뜻은 아니었다. 이 지팡이는 틀림없이 널 선택했어. 다만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서 말이지.” 올리밴더 씨는 해리의 이마에 새겨진 번개 모양 흉터를 뚫어지게 보았다. “왜냐하면, 이 지팡이와 같은 심을 가진 유일한 형제 지팡이가 너의 그 흉터를 만든 지팡이거든.” 볼드모트의 지팡이. 부모님을 죽인 지팡이. 그리고 해리의 이마에 번개 모양 흉터를 새긴 지팡이. 잔뜩 달아올랐던 해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사람’은 대단한 일을 했지. 물론, 끔찍했지만, 대단했어. 너도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것 같구나.”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해리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 * * 지팡이를 마지막으로 해리의 다이애건 앨리 쇼핑은 끝이 났다. 해그리드는 헤어지며 해리에게 킹스크로스로 가는 기차표를 건넸다. 그날 밤 해리는 요술 지팡이를 든 자신이 세상을 호령하는 꿈을 꾸었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 ## 4화. 초심자의 행운 (1) ## “호그와트야!” 신이 잔뜩 오른 목소리였다. “호그와트라고!” “네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꽤 오랜만인 것 같아. 아니, 처음인가?” 해리가 웃었다. “평소에는 반대였잖아. 내가 즐거워하면, 너는 어린애 같은 짓 그만하라며 혼을 내고.” “오랜만이라니, 우리 초면 아니었니?” 꿈속의 인물은 짐짓 시치미를 떼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우린 계속 함께 있었잖아…….” “아, ‘해리’. 하지만 ‘너’도 ‘나’도 꿈속의 등장인물에 불과한걸. 결국엔 자기 자신과의 대화일 뿐이야. 정말 ‘우리’의 존재에 연속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말은 언제나 어려워.” 해리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난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겠어.” “하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호그와트! 그리고 지팡이! 드디어!” 꿈속의 인물은 요술 지팡이를 휙 휘둘렀다. 그러자 백금으로 장식된 암녹색 벨벳 왕좌가 펑 하고 나타났다. 바닥에는 검은 구름이 깔렸고, 그 아래에 하늘 높이 내려다본 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노예가 되어 해리의 이름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젠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게 외치며 꿈속의 인물은 두 팔을 쭉 뻗고는 푹신한 왕좌에 묻히듯 앉았다.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해리가 킥킥 웃었다. “솔직히 실감이 안 나. 너무 형편이 좋잖아. 어쩌면 전부 내 망상일지도 몰라…….” “하지만 호그와트는 진짜야.” 꿈속의 인물이 말했다. “거긴 최고라고! 마침내 ‘진짜 집’에 돌아가는 거야…….” “집인지는 모르겠고, 기숙학교인 건 확실히 마음에 드네. 이모네와 드디어 떨어질 수 있잖아…….” 해리는 구름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왕좌는 멍청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하늘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꿈속의 인물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지팡이를 까딱여 거울을 만들었다. 거울은 왕좌에 위풍당당하게 앉은 주인의 모습을 비추었다. 특별히 치장된 구석은 없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여전히 건방지게 뻗쳐 있었으며, 앞머리에 가려진 이마에는 번개 모양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깡마른 몸에 걸쳐진 옷은 허름하고 헐렁했다. 동그란 안경과 그 너머 선명한 초록색 눈동자도 변한 구석 없이 그대로였다. 평소와 같은 해리 포터였다. * * *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해리는 친척들의 눈치를 봐 자체적으로 근신할 겸 자기 방 안에 콕 박혀 살았다. 사실, 교과서들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마법을 연습하느라 바빠 나오려고 해도 그럴 틈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천문학과 약초학, 마법약은 방에서 실습하기에 무리가 있었지만, 일반 마법과 변신술 교과서에 적힌 대부분의 주문은 지팡이와 방 안에 널린 잡동사니만 가지고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었다. 갓 지팡이를 얻은 햇병아리들을 위한 과정답게 주문들은 하나같이 쉬웠다. 또한 해리는 플러리시 앤 블러트 서점에 헤드위그(해그리드가 사 준 올빼미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를 보내 저주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주문했다. 하나같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저주는 써 보지 못했고, 그나마도 자기 자신에게 쓴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그래도 해리에게도 선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에게 사용해볼 날을 꿈꾸긴 했다. 이상한 점은 마법서의 내용들이 하나같이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해리는 그런 기시감을 예전부터 많이 느껴왔다. 마땅히 몰랐어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실제로 알고 있는 것 말이다. 다만 예로부터 ‘조숙하다’(그 앞에는 보통 ‘기분 나쁠 정도로’ 내지 ‘쓸데없이’와 비슷한 말이 붙어 있곤 했다)라는 평을 들어 왔기에 기시감도 그 일환이라고 여겼다. 어쨌든 그래봤자 다 살면서 언젠가는 알아야 할 것들이므로, 자기도 모르는 새 어디선가 주워듣고 익힌 것이리라. 그것이 아이의 본분이니까. 하지만 마법의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미리 주워듣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는 기억이 있는 한 마법세계 바깥에서 죽 살아왔다. 또한 당연히, 여태껏 ‘진짜’ 마법적 지식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용한 적도 없었다.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그냥 기분 탓, 무언가의 착각이라는 찜찜한 결론을 내렸다. 해리의 방 바깥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마법사 거한(그새 해리는 신비한 생물 ‘거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교과서로부터 배웠다)으로부터 비롯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공황에 빠져 있었다. 두들리의 돼지 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해리가 이 궁극적인 폭력의 형태에 감명받는 동안, 버논과 페투니아는 아들의 돼지 꼬리를 조용히 없앨 정형외과를 찾아다녔다. 해리는 자기가 한번 없애볼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버논과 페투니아는 해리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그 자체로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특별히 해리가 위협하지 않아도 그를 매우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점에서 달랐다. 평상시 그들은 고아인 해리를 돌봐줌으로써 그를 함부로 대할 권리를 얻은 것처럼 굴었다. 호그와트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 못 하는 분위기였다. 암묵적으로 해리가 그곳에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기는 했다. 다만 해리로선 본래 예정되었었던 스톤월 중학교의 입학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9월 1일이 되었다. 해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런던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여비는 충분했다. 그린고트에 갔을 때 꺼낸 돈을 일부 파운드로 바꿔 두었기 때문이다. 어째 집안이 부산스러웠다. “오늘 스멜팅스도 학기를 시작하던가요?” 오랜만에 나타난 해리의 신형에 페투니아 이모가 꺅 소리를 냈다. “아니, 두들리의 꼬리를 제거하러 런던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네-녀-석 때문에 생긴 그놈의 꼬리 말이지. 이 망할 놈아.” 버논 이모부가 답했다. “오, 런던! 잘됐네.” 해리가 생글 웃었다. “저는 킹스크로스역에서 내려요!” 버논의 얼굴이 바퀴벌레를 씹은 듯 구겨졌다. 결국 그들은 해리를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두들리가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며 해리는 내심 즐거움을 느꼈다. 흥겨운 여행이었다. “태워줘서 고마웠어! 잘 가!” 해리는 친애하는 친척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은 해리를 내려주자마자 도망치듯 떠났다. 역에 혼자 남은 해리는 해그리드가 준 표를 다시금 살펴봤다. 표에는 분명히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트렁크와 새장이 든 짐수레를 밀면서 9번 승강장을 지나쳐 10번 승강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 사이에는 빈 벽뿐,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이라고 적힌 간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해그리드가 딱히 뭐라고 말해줬던 것은 없지만, 해리는 들어가는 방법을 ‘알았다’. 해리는 눈 깜짝 않고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의 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호그와트 급행열차, 11시’ 굴뚝에서 연기가 흘러나오는 진홍색 증기기관차가 나타났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 들어온 것이다. ‘좋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새 출발 하는 거야.’ 직후 해리는 자신에게 다짐하며 크게 심호흡했다. 그에겐 ‘친구 사귀기’라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되어 있었다. 리틀 위닝의 초등학교에 다녔을 때 해리의 인간관계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학교의 깡패였던 두들리가 해리를 표적으로 삼아 못살게 굴며 친구들을 모조리 쫓아냈기 때문이다(신세 지는 친척 집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 낡고 헐렁한 옷에 깨진 안경을 낀 이상한 아이 해리는 완전히 학교의 웃음거리, 요컨대 ‘그래도 되는 아이’였다. 적어도 자제력을 잃고 교실과 복도를 난장판으로 만들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한번 선을 넘고 막 나가기 시작한 뒤에는 모두가 해리를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친구가 없는 것은 결과적으로 똑같았다. 해리는 초심자의 행운이란 걸 믿어보기로 했다. 새 학교, 새 학기다. 이전의 해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령 일이 잘못된다 해도, 다 해리 같은 어린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전과 같은 취급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야 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손수레를 끌었다. 출발하기까지 한 시간가량 남았음에도 사람은 꽤 많았다. 해리와 달리 이 모든 절차에 새로움이라고는 느끼지 못해 따분한 티를 풀풀 내는 나이 많은 학생이 짐을 요술 지팡이로 들어 옮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느 한쪽에선 십 대 중반 남자 특유의 우렁우렁한 쇳소리로 떠들어 대는 남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해리 또래의 소년과 젊은 부부가 포옹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 드레이코, 혼자 가서 잘 할 수 있지? 자기 전에 양치 꼭 해야 해……. 엄마가 매일 과자 보내줄게, 친구들과 나눠 먹으렴…….” “저도 걱정이 돼요,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죠? 아빠, 그리고 제가 말했던 빗자루…….” 그 꼴을 본 해리의 배알이 괜히 뒤틀렸다. 뒤틀린 인생 탓에, 그는 모든 종류의 사이좋은 가족이란 것을 격렬히 증오하게 된 것이었다. 해리는 애꿎은 사람들을 향해 공연히 눈총을 흘기고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정확히는, 서두르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 해리는 그 소년과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더 공교롭게도, 해리는 그 소년과 구면이었다. “앗! 해리 포터다! 아빠! 보세요! 제가 말했던 걔예요!” 바로 옷가게에서 말을 걸어왔던 성가신 녀석이었다. * * *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호그와트 급행열차의 한 객실, 거기에 앉은 해리의 앞에는 옷가게에서, 그리고 승강장에서 또 만났던 소년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드레이코 말포이였다. 드레이코의 양옆에는 험상궂고 힘깨나 쓰게 생긴 남자아이가 한 명씩 달라붙어 있었다. “크레이브, 그리고 고일이야.” 드레이코의 소개에 맞춰 두 똘마니(그들에겐 미안한 표현이지만 그밖에 달리 적절한 말이 없는 것 같았다)가 과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리가 영혼 없이 말했다. “난 해리야. 드레이코한테서 들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음.” “포터. 이제 우린 전통 있는 호그와트의 학생이야. 서로를 성으로 부르는 건 오랜 관습이라고. 알았어? 어린애처럼 말하면 안 돼.” 해리는 즉시 드레이코가 자신의 이상한 이름을 부끄러워해서 성으로 부르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무례한 추측을 했다. 하지만 뭐, 본인의 희망이 그렇다면야. “알았어, 말포이.” 해리는 드레이코, 아니 말포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뾰족하게 싫은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아낌없이 사랑받아 온 티가 풀풀 나는 철부지 도련님인 게 싫었고, 말을 질질 늘이는 말버릇도 거슬렸고, 심지어 금발인 점까지 얄미웠다. 초대면에 뜬금없이 부모의 출신을 추측하며 은근히 비웃었던 게 기분 나빴고(아닌 척해줬을 뿐이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똘마니를 데리고 다니는 게 두들리를 연상시켜서 절로 감정이 험악해졌다. 그런데도 어쩌다 그와 동석하게 되었느냐면, 승강장에서 말포이 가족에게 그야말로 꼼짝없이 붙잡혔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냥 사랑하는 부모님께 ‘자기가 만난 해리 포터’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사귄 새 친구’에게 잘 부탁한다고 정중하게 말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해리는, 글쎄, 모두가 새 친구를 사귀기를 고대하는 새 학기 첫날이다. 그것은 해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날에, ‘우리가 언제 친구였는데?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는걸. 난 다른 친구를 사귀러 갈 테니까 잘 있어.’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건 듣는 사람에게는 물론 말하는 사람에게도 과하게 잔인한 처사 아닌가……. 일단 그렇게 되자 열차에서의 동석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움직이기 시작한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해리는 생각했다. 자신의 초심자의 행운이 ‘운 나쁘게’ 형편없이 낭비된 것이든, 그냥 제게 주어진 모든 종류의 행운이란 게 이따위인 것이든, 앞으로 행운이란 건 기대도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성에 안 차는 마음이야 어떻든 지금의 해리에게는 친구가 절실했다. 별 이유 없이 다가오는 사람을 쳐낼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다. 비록 첫인상은 나빴지만, 해리는 이 말포이라는 아이와 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심은 채 하루도 가지 않고 형편없이 깨지게 되었다. ## 5화. 초심자의 행운 (2) ## “그래서 말이지, 우리 집에는 공작이 있어. 알비노 공작 가족이지. 알비노라는 건 새하얗다는 뜻이야. 아주 귀해. 아버지가 특별히 인도에서 공수해 오신 거야. 아주 아주 비싼 건데…….” ‘그 얘기만 두 번째다. 제발 닥쳐…….’ 말포이와 두 시간 동안 함께하고 난 해리는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편견이 달콤한 이유는 그것이 대체로 들어맞기 때문이다. 말포이를 처음 본 해리는 마땅한 이유도 없이 그를 싫어했다. 이제 해리에게는 그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어차피 싫어할 거라면 어째서 이유를 굳이 만들어야 하는가? 드레이코 말포이는 완전한 얼간이였다. 녀석은 자기 아버지 자랑과 아버지의 돈 자랑, 거기서 파생된 자기 자랑을 빼면 달리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대안으로써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무언가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타고나기를 과묵한 건지 똘마니로서 너무 잘 훈련된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해서인지 대화랄 만한 대화가 불가능했다. 어쩌면 자신이란 존재 자체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게 생겨 먹은 것이 아닌지 회의하기 시작할 무렵, 객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간식 수레란다.” 해리는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도 먹지 않은 데다 챙겨온 먹을거리도 없었기에 간식 수레의 존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말포이가 따라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싸구려 간식은 필요 없어. 도비가 만든 점심이 있거든. 훌륭한 프랑스식 정찬이지. 넉넉하게 있으니까 같이 먹으면 돼 — 참고로 도비는 우리 집 집요정이야. 물론 집요정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지만, 우리 집에는 있지.” “아니, 나는 여기서 사 먹고 싶은데.” “됐다니까.” 동시에 말포이는 해리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객실 문을 닫아 버렸다. 바퀴가 돌돌 굴러가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뭐 이 새끼가?’ 해리는 빌어먹을 과자가 먹고 싶었다. 그의 친애하는 친척들은 용돈 한 푼 준 적이 없었고, 먹을 것도 생존에 필수적인 이상을 공급해 준 적이 없었다. 지난번 동물원에 갔을 때 마지못해 싸구려 얼음과자 하나 받은 것이 그에겐 손에 꼽히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 해리의 주머니에는 돈이 가득했고, 간식 수레에 실린 각양각색의 신기하고 이상한 간식거리가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열차의 간식 수레를 터는 게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말포이는 해리를 끌어내고 간식 수레를 쫓아냈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고 무례한 일을 당하면 도리어 굳어 버린다는데, 지금이 딱 그 사례였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해리를 내버려 두고 말포이는 자기 짐에서 화려한 도시락을 줄줄이 꺼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배가 고파지긴 했어. 점심이나 먹자고. ……어때, 멋지지?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거야. 식재료도 다 최고급만 쓴 거지. 자, 고마워하도록 해.” ‘고마워해야 하나?’ 이가 절로 갈렸지만 당장의 식량 공급처는 말포이밖에 없었으므로, 해리는 일단 배를 채우고 나서 논쟁하든 말든 하기로 했다. 분하게도 확실히 맛있긴 했다. 기분이 풀린 해리는 친구와 도시락을 나눠 먹고 싶었던 호의가 서툰 형태로 발현된 거라고, 자신도 친구가 있었던 적이 없으니만큼 특별히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관대하게 이해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조용한 식사(해리가 ‘신사라면 입 속에 먹을 게 있을 때 떠들지 않는다’라고 우겨서 간신히 성립된 침묵이었다)가 끝나고 다시금 꼼짝없이 말포이 녀석의 신경 긁는 헛소리를 들을 위기가 돌아오자 해리의 드넓어진 마음도 도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덕분에 잘 먹었어, 말포이. 그런데 난 알고 보면 엄청난 독서광이거든. 식후엔 책을 읽지 않으면 죽어 버리는 체질이야. 빠져서 미안한데 너희들끼리 얘기해라.” “뭐 그런 게 다 있니? 그래. 알았어.” 해리는 플러리시 앤 블러트에서 우편으로 주문했던 《저주와 저주 해제》를 꺼내 마치 방패를 치듯 펼쳐 들었다. 마침내 그는 평화를 얻었……. “저주에 관한 책이네? 우리 수준엔 조금 어려울 텐데? 내용이 이해는 되니? 우리 아버지 서재에는 그런 책들이 아주 많아. 희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책도 많지. 아버지는 그런 책들을 수집해…….” “응 그런 서재가 있어서 정말 좋겠다 언젠가 너희 집에 가게 되면 꼭 가 보고 싶어 그럼 난 이만 책 좀 읽을게!” 마침내 그는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위기는 세 시간 뒤에 다시 찾아왔다. 책을 다 읽어 버리고 만 것이다. 중간에 그만 책 내용에 집중한 것이 실책이었다. 손목시계를 흘끔 보았다. 현재 시각 오후 4시경, 도착까지는 한참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말포이는 아직도 자기 아빠 자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최후의 작전을 발동했다. 해리는 천천히, 그리고 경건하게 자신을 보호해주었던 성스러운 방패를 덮었다. “있잖아.” 해리가 허허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해리는 튀었다. * * * 화장실에서 나온 해리는 무언가 시간을 때울 게 없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느릿느릿 걸었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밖에서 죽치고 있을 작정이었다. 복도 멀리서 울상을 짓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그란 얼굴의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설마 저 녀석도 자신과 똑같이 객실에서 쫓겨난 처지인가 싶어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소년이 제 발로 먼저 해리에게 다가왔다. “혹시 두꺼비 보지 못했니? 내 두꺼비를 잃어버렸어…….” 이거다! 해리의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졌다. “그러면 열차 끝에서부터 천천히, 아니 내 말은, 꼼꼼히 찾아보는 게 어때? 객실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다 물어보고. 나도 같이 찾아줄게.” 그렇게 해리는 시간 때울 거리를 손에 넣었다. 열차 맨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해리는 두꺼비를 잃어버린 아이의 이름이 네빌 롱바텀이라는 것, 잃어버린 두꺼비의 이름은 트레버고 네빌의 작은할아버지가 입학 기념으로 사준 애완동물이라는 것, 그런데 자꾸 도망을 가서 골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해리는 두꺼비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었으므로 양심이 콕콕 찔렸다. “혹시 돌아다니는 두꺼비 한 마리 본 적 없니?” 맨 끄트머리 객실, 해리와 네빌의 첫 탐문 상대는 그들 또래로 보이는 키가 큰 소년이었다. 객실에는 그 아이 혼자만 있었다. “아니, 본 적 없는데.” 두꺼비가 없다는 걸 확인한 네빌은 그대로 발길을 돌렸지만, 해리는 어쩐지 혼자 있는 소년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해리는 네빌을 따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소년에게 이어서 말을 걸었다. “너도 신입생이니?” “응.” “너 혼자야?” “그런데, 왜?” “같이 두꺼비 찾으러 갈래?” “그러지 뭐!” 인원이 한 명 늘었다. * * * “혼자 있느라 지루해서 죽을 뻔했어.” 끄트머리 객실의 소년이 말했다. “어쩌다 보니까 같이 앉을 애를 찾지 못했거든. 그건 그렇고, 난 론 위즐리야. 너흰?” “난 네빌이야.” “해리 포터.” 론이 무어라 입을 열기 전 해리가 선수 치듯 이어 말했다. “그래, 너희가 아는 해리 포터야. 다른 유명한 해리 포터가 또 있는지는 모르니까, 아마도 맞을 거야. 내 앞머리를 멋대로 걷어 올리지만 않는다면 내 흉터를 살짝 보는 걸 허락할게. 그리고 그때 일에 대해 말하자면 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아기였으니까 말이지.” “헤.” 론이 말했다. “너 어지간히 시달렸구나?” “쟤 아까도 저 말 했어.” 네빌이 말했다. “어차피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면 대본을 만들어 두는 편이 낫지 않겠어?” 해리가 대꾸했다. 론이 킥킥 웃었다. “맞는 말이네!” 세 명은 열차를 순서대로 돌며 두꺼비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네빌에겐 안됐지만 사람들은 주인 잃은 두꺼비 같은 것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보다는 객실에 들어온 해리 포터처럼 생긴 소년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안녕, 혹시 두꺼비 못 봤니? 여기 네빌이라는 애가 두꺼비를 잃어버렸거든.” 이번 객실의 주인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상급생 둘과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상급생들은 입을 떡 벌리고는 꺼억 꺽 소리를 내며 졸고 있었고 여자아이는 자기 몸통만 한 책을 무릎에 올려놓고 읽고 있었다. 책 읽는 아이가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화장실 갔다 올 때 두꺼비 한 마리가 뛰어가는 걸 봤어. 그런데 넌 혹시 해리 포터 아니니? 책에서 봤어…….” 마침내 단서를 찾은 네빌은 신이 나서 복도를 달려 나갔다. 해리는 지친 표정으로 끙 소리를 냈다. “어. 해리 포터야. 흉터 만지지 말고, 기억하는 거 없고, 그리고 아니, 난 은밀한 어둠의 마법을 감추고 있지 않고 장차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지 않아. 그리고 내가 마법세계에서 자취를 감췄던 건 그냥 날 맡아준 친척들이 머글이었기 때문이고 무슨 음모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안 돼, 사인 안 되고 사진도 안 찍어. 또 물어볼 건 없지? 제발 없다고 해줘.” 여자아이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면 해리 포터는 사실 존재하지 않고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의 실종을 해명하기 위한 마법부의 모호한 선전이라는 이론은 사실이 아니니?” “글쎄, 내 생각엔, 나는 실존하고 있다고 생각해.” 해리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망할! 왜 사람들은 이런 멍청한 질문을 계속 하는 거지?” “책에 적혀 있었어. 《현대 마법의 역사》, 《어둠의 마법의 번영과 몰락》, 《20세기의 위대한 마법 사건》…….” “좋아. 학교에 들어가면 그놈의 책들부터 찾아 읽어야겠어. 적어도 사람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으려면 말이지.” “내가 너였다면 알아볼 수 있는 건 벌써 다 알아봤을 거야.” 여자아이가 말했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니?” “글쎄, 난 아직 많은 걸 몰라.” 해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거든.” “그건 나도 비슷해. 우리 가족 중에는 마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거든. 그래서 편지를 받았을 땐 정말 놀랐어. 내가 거기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교과서는 다 외워 놨어. 연습 삼아 간단한 주문도 몇 가지 해 봤는데 잘 되더라. 당연히 교과서 말고 다른 책도 몇 권 읽어 놨지. 아까 말했던 책이 그것들이야. 이 정도로 충분했으면 좋겠어. 그건 그렇고, 나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야. 책을 읽는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헤르미온느라고 이름을 밝힌 아이는 이 모든 것을 아주 빠르게 말했다. 해리는 오직 자기과시를 위해 자신이 머글 태생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헤르미온느의 방식에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 네빌이 울상으로 객실로 돌아왔다. “있잖아, 어디에 있는 화장실에서 본 거야? 여자 화장실이 저쪽에도 있고 이쪽에도 있는데…….” “책은 모르겠고.” 잠자코 있던 론이 입을 열었다. “두꺼비 찾는 거나 도와주라. 얘 울겠다.” 또 한 명 늘었다. * * * “있잖아, 이렇게 몰려다니면서 하나하나 붙잡고 물어보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트레버를 봤다는 여자 화장실과 그 근처 객실까지 허탕을 친 다음이었다. ‘이래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이는 싫다니까.’ 혼신의 시간 죽이기 계획이 무산될까 봐 해리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그냥 반장 객실에 가서 두꺼비 좀 찾아달라고 부탁하자는 말이라도 나오면 다 끝장이었다. “그러니까 찢어져서 찾아보는 게 어떨까? 너희는 짝수 번호 객실, 우리는 홀수 번호 객실에 가서 물어보는 거지.” ……다행히 헤르미온느는 그렇게까지 똘똘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론과 해리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헤르미온느는 네빌을 데리고 다음 객실에 들어가 버렸다. “뭐, 가자고.” 론이 말했다. 하지만 안도하며 객실 문을 연 순간 해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포터! 너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야? 쟨 누구고?” 말포이였다. 도망 나온 객실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너무 정신을 팔았구나!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었지?’ 해리가 이를 악물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론이 태연하게 말을 대신 받았다. “응? 아, 여기가 해리 네 객실이니? 해리랑 나는 네빌이라는 애의 두꺼비를 찾고 있었어. 혹시 본 적 있냐?” “두꺼비 찾기? 그런 걸 하고 있었어?” 말포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왜 그따위 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네 것도 아니잖아. 자기 두꺼비도 간수 못 하는 얼간이 뒤나 닦아줄 거니? 두꺼비 같은 건 유행이 진작 지났다고. 포터, 그냥 돌아와. 마침 내가 아버지가 주신 만년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야,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해? 못 봤으면 그냥 못 봤다고나 하라고.” 졸지에 무시당한 데다 황당한 소리를 들은 론이 기분이 상해서 되물었다. “나는 드레이코 말포이야.” 말포이가 느릿느릿 뽐내듯 말했다. “네가 누군진 말 안 해도 알겠다. 아버지가 위즐리 집안 사람들은 모두 빨간 머리에 주근깨투성이고 형편에 안 맞게 애를 턱없이 많이 낳았다고 하셨거든.” 느닷없는 모욕에 론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갔다. 말포이는 다시 해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같은 마법사 가문에도 수준 차이가 있어. 엉뚱한 부류와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겠지. 자 포터, 이리 와.” 말포이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뭐 이런 미친 자식이!’ 해리는 말포이의 어마어마한 외교 실력에 그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여기서, 어? 손을 잡겠냐? 잡겠냐고. 론의 표정은 이미 잔뜩 썩어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야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잠깐, 굳이 원만하게 수습해야 할까? 갑작스럽게, 해리는 지금이야말로 골치 아픈 말포이를 떨쳐낼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어-떻-게 그런 못된 말을 할 수가 있니, 드레이코!” 해리는 현기증이 난다는 듯 과장스럽게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사람들 사이에 급을 매기는 게 네 평소 생각이니? 믿을 수가 없네. 처음 본 아이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너의 인품에 정말 실망이야. 앞으로 너랑 안 놀래. 난 간다.” “야, 포터……!” 해리는 옆의 론을 낚아채고는 즉시 등을 돌려 객실 밖으로 내달렸다. 해리와 해리의 손에 붙들린 론은 복도를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말포이 패거리가 쫓아오든 쫓아오지 않든 해리에겐 상관없었다. 열차의 맨 끄트머리에 도착한 해리는 그대로 론의 객실에 뛰쳐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론이 숨을 몰아쉬며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이게 무슨?’ 론의 시선이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에 말려들게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한참 뒤 숨을 고른 해리가 죽을 듯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백했다. “난 저 자식에게 한나절 내내 붙잡혀 있었어. 정말이지 도무지 참아낼 수가 없었어.” 해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솔직히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야, 장난해?” 론이 해리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넌 최고야!” 그러고는 파하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해리도 웃었다. 그들은 웃고 또 웃었다. “야, 그리핀도르 와라. 같이 놀자고!” 론이 말했다. 해리는 론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문득, 해리는 깨달았다. 눈앞의 이 아이야말로 자신에게 찾아온 초심자의 행운이었노라고. ## 6화. 재회 (1) ## “그런데, 두꺼비 찾는 걸 말도 없이 관두고 왔는데 네빌은 괜찮을까?” “아무렴 어때. 헤르미온느가 정말 똑똑한 애라면 그냥 반장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는 걸 금방 깨달을걸. 아니어도 뭐…… 알아서 하겠지.” 론의 객실에서 해리와 론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리는 론에게 다섯 명의 형이 있다는 것, 그중 세 명은 지금도 호그와트에 있고, 퍼시라는 형은 반장이라는 것, 형들을 포함한 론의 가족은 모두 그리핀도르고, 다들 론이 그리핀도르에 들어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론은 말포이의 아버지가 과거 볼드모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그가 몰락하자마자 나쁜 마법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혐의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해 주었다(적어도 론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해리는 승장장에서 만났던 말포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앞머리를 멋대로 들어 올리고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느냐고 묘한 어조로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6시쯤 되자 출출해진 그들은 론이 점심으로 먹고 남은 콘비프 샌드위치 한 조각을 나누어 먹었다. 다 말라비틀어진데다 양도 적었지만 해리에게는 말포이와 먹었던 프랑스식 정찬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어느덧 창밖의 하늘이 어둑해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 무렵 그들의 화제는 마법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해리가 8월 내내 방 안에 자신을 가둬 놓고는 교과서에 있는 것 중 시도할 수 있는 건 거의 모두 시도해 봤다고 말했을 때 론은 꽤 놀란 눈치였다. 아무래도 아까의 헤르미온느처럼 교과서를 모두 외우지 않으면 죽는 줄 아는 책상물림으로 오해를 사게 된 것 같아 머쓱해진 해리는, 자기가 그랬던 건 오직 그때의 자신이 마법의 세계에 대해 갓 알게 된 흥분한 11살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어차피 친척들이 그가 방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안에서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해리 너 대단하다. 난 딱히 성공해 본 마법이 없거든. 어제는 스캐버스를 노란색으로 바꿔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자, 보여 줄게…….” 론은 짐에서 여기저기 조금씩 깨져 있는 낡은 요술 지팡이를 꺼내고는 자기 무릎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뚱뚱한 회색 쥐를 겨누었다. 그때, 객실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손님이 들어왔다. 헤르미온느와 네빌이었다. 그들은 아까와 달리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너희 여기에 있었구나?” 헤르미온느가 뾰족하게 말했다. “말도 안 하고 도중에 가 버리다니! 나랑 네빌이 얼마나 어리둥절했는지 아니?” “설마 지금까지 두꺼비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니지?” 해리가 살짝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사실, 트레버는 너희들이 없어지고 거의 바로 다음에 찾아냈어. 그런데 문제는…….” 헤르미온느는 말끝을 흐렸다. 말을 이은 사람은 네빌이었다. “……다시 잃어버렸어!” “어이구야.” 론이 감탄했다. 그 말에 론에게로 고개를 돌린 헤르미온느는, 론의 지팡이를 보고는 탄성을 흘렸다. “와, 너 지금 마법 쓰니? 나도 보여 주라.” 돌연한 화제 전환에 론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고는 주문을 외웠다. “선샤인, 데이지, 버터 멜로. 이 멍청하고 뚱뚱한 쥐를 노랗게 바꾸어라.” 그렇게 말하며 론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거 제대로 된 주문 맞니?” 헤르미온느의 의심 어린 표정에, 해리는 론을 위해 무언가 해명할 필요를 느꼈다. “주문이 잘못된 건 아닐 거야. 1학년 교과서에는 없지만 오래된 주문 중에는 이런 운문형 주문도 꽤 있거든.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보면, 수염 끝이 약간 노랗게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우리 할머니도 가끔 그런 주문을 외곤 하셨어.” 네빌이 맞장구쳤다. ‘진짜였어?’ 해리는 어리둥절했다. 기실 해리는 그런 건 알지 못했고, 그냥 되는 대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교복 안주머니에서 자기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그럼 나도 해볼래!” 론의 말 없는 허가의 몸짓에,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선샤인, 데이지, 버터 멜로, 이 쥐를 노랗게 바꾸어 주세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에서 파직하고 불꽃이 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졸고 있던 스캐버스가 깜짝 놀라 일어나 제 자리를 팽글팽글 돌았다. 물론 쥐는 여전히 회색이었지만, 헤르미온느는 지팡이 끝에서 무언가 나왔다는 것에 흥분한 것 같았다. “방금 뭔가 일어났어! 너희도 봤니?” ‘원래 요술 지팡이는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불꽃이 튀긴다고, 너희처럼 자기 마법을 제대로 못 다루는 어린애들은 특히. 교과서를 다 외웠다면서, 순진하긴…….’ 해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꼬맹이들의 멍청한 짓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볼거리 같았다. 네빌이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그럼……. 나도!” 네빌이 꺼내 든 지팡이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무언가 반짝거리면서 불길한 파직파직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스캐버스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찍찍거리기 시작했다. 쥐는 필사의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주인은 구원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살아날 길은 있었다. 쥐의 물기 어린 눈망울이, 상황을 관망하는 녹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눈 마주쳤다.’ 갑작스럽게 해리는,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잔악한 애새끼들에게 둘러싸인 불행한 생물을 직시하고 말았다. 불안에 떠는 회색 쥐에게서 두들리의 죽은 거북이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크흠.” 해리가 헛기침했다. “얘들아, 그……. 주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녀석이 다칠 수 있지 않을까? 불꽃이 튀는 지팡이 끝으로 쥐를 쿡 찌르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아. 어렸을 때 내 사촌이 키우던 거북이가 너무 이리저리 건드려진 끝에 죽어 버린 걸 봤거든.” “뭐!” 론이 외쳤다. 그러고는 마치 보호하듯 스캐버스를 들어올려 껴안았다. 같은 객실에 있는 내내 아무 쓸모가 없다면서 불평을 해댔지만 역시 자기 쥐가 죽는 걸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해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쥐를 바라봤다. 그 순간 해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캐버스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던 것이다. 해리는 그저 머쓱하게 웃었다. 론이 스캐버스를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서야, 손님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떠올렸다. “맞다, 우리 두꺼비 찾으러 왔었지!” “트레버!” 네빌이 울상을 지었다. “아, 그냥 반장 객실에 가서 찾아달라고 말해. 걔들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일이야. 우리 같은 꼬마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는 거. 분명 바로 찾아 줄걸.” 해리가 태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네빌은 얼굴이 환해져서는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는 달려 나갔다. 헤르미온느는 네빌을 따라 나가려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멈췄다. “잠깐, 그걸 알고 있었으면 아까는 왜…….” 해리가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했다.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야. 우리 나이에는 시시때때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마련이지.” “그래……? 아무튼 너희도 빨리 옷을 입는 게 좋을 거야. 이제 거의 다 도착했거든.” 헤르미온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고는, 그 말과 함께 객실을 나가 버렸다. 직후, 네빌이 다시 돌아와서 물었다. “그런데 반장 객실이 어디니?” 네빌까지 내보내고 난 뒤 론은 헤르미온느의 말을 따라 바로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했다. 그제서야 해리는 짐을 모조리 말포이 패거리의 객실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녀석들이 내 짐에 해코지를 하진 않았겠지? 헤드위그는 괜찮을까?’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는 해리를 눈치챈 론이 말했다. “아무래도 거기로 도로 돌아가긴 힘들 것 같은데, 내 옷 입을래? 빌이 물려준 낡은 교복이라도 괜찮다면.” 론의 교복은 해리에게 딱 맞았다. 정작 옷 주인인 론은 큰 키 때문에 옷자락 아래로 운동화가 보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론에게도 모자는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해리는 그저 자기 말고도 모자를 안 쓴 신입생이 있기만을 바랐다. 옷을 다 갈아입을 무렵 딱 맞춰 안내 방송이 나왔다. “5분 뒤에 호그와트에 도착합니다. 짐은 따로 옮겨질 테니 열차에 그대로 두고 내리시면 됩니다.” 긴 여행의 끝이었다. * * * “1학년들은 이쪽으로!” 반가운 해그리드를 따라 해리와 신입생들은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렀다. 돌계단 위 거대한 참나무 정문이 열리고, 맥고나걸 교수라고 불린 마녀를 따라 그들은 홀에서 약간 떨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호그와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곧 개강 연회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대연회장에 자리를 잡기 전 기숙사 배정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잠시 후 전교생 앞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니 기다리는 동안 모두 옷차림을 단정히 하시기 바랍니다.” 맥고나걸 교수의 시선이 해리의 휑한 머리 위에 잠깐 머무르는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나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맥고나걸 교수는 방을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자 신입생들은 모두 대단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외워 온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태평한 사람은 해리뿐인 것 같았다. 어쩐지 해리는, 이 모든 엄숙하고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는 그냥 신입생들을 골려 먹기 위한 전통의 신고식이고 실제의 배정식은 정말 별것이 없으리란 것을 ‘알았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의 입구를 ‘알았던’ 것과 같았다. ‘다들 뭘 그렇게 겁을 먹는지……. 하여간에 꼬맹이들이란…….’ 해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 지루한 기다림이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맥고나걸 교수가 돌아온 것은 전통의 유령 행진까지 끝난 다음이었다. “따라오세요.” 그들은 홀을 가로질러 대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검은 천장을 수놓은 별빛과 허공에서 빛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촛대, 반짝이는 황금 접시와 잔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에 해리는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반가움을 느꼈다. 일련의 과정이 지나고, 신입생들은 머릿속을 읽는 모자를 그냥 쓰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론이 트롤과 레슬링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해리는 빙그레 웃었다. 배정식은 알파벳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맥고나걸 교수가 긴 양피지 두루마리를 들고 신입생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론과 같은 기숙사에 가고 싶었던 해리였기에, 론보다 자신의 순서가 앞인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가족이 대체로 같은 기숙사에 간다는 해그리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도 론도 무난하게 그리핀도르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또한 “말포이, 드레이코!”가 쾌속으로 “슬리데린!”에 배정된 것을 해리는 잘 눈여겨 두었다. 마침내 “포터, 해리!”의 차례가 되었다. 해리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대연회장이 술렁였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이라도 된 듯한 이 취급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에서 뛰쳐나가서 이곳에 오게 된 건가? ……. 가득 긴장한 마음으로, 해리는 의자에 앉고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 썼다. 교복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기에 먼저 모자를 벗을 필요도 없었다. ‘제발 그리핀도르! 정 안 된다면 슬리데린은 걸러 줘! 그럼 이만 실례, 감사했습니다!’ 해리가 속으로 외쳤다. “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성이 아닌 머릿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기묘한 소리였다. “되게 흥미로운 정신이네. 이렇게 복잡한 정신 구조를 가진 아이는 정말 오랜만이야. 네가 슬리데린에 간다면 위대해질 수 있을 거야. 굳이 피하는 이유라도?” 정신적으로 걸어오는 대화에 해리는 순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당황하고 말았다. 잠시 후, 해리는 생각을 정리해 ‘말했다’. ‘글쎄, 슬리데린에 대해 나쁜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건 그리핀도르에 대해서도 비슷하고. 그냥 오늘 한나절 내내 나를 반쯤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간 애가 있는데 걔가 슬리데린에 갔거든. 어쨌든 내가 정말 불합격이 아니라면 그리핀도르에 가고 싶어. 또 내가 뭔가 부탁을 할 수 있다면 론 위즐리라는 아이도 나와 같은 기숙사에 넣어주지 않을래?’ “그래서, 슬리데린에 가는 게 ‘겁이 난다’? 흠……. 뭔가 좀…….” 해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포이에 대해선 아예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불현듯, 해리의 뇌리에 깨달음이 반짝였다. 아니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모자는 해리가 그리핀도르에 진정 어울리는 용기를 가졌는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리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죄다 끌어올려서 최대한 ‘용맹하게’ 말했다. ‘하! 전혀 아닌데? 슬리데린에 가는 것 따윈 전혀 무섭지 않아.’ “아 그래 알았어 슬리데린!” 모자의 마지막 말이 대연회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 ……. ……. ‘뭐라고오오옷.’ 속았다. 아니, 모자를 과대평가했다. 정확히 11살 아이의 단순무식한 정신을 분석하는 데에만 특화된 이 멍청한 모자는 고도의 반어법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천 쪼가리가 틀림없었다!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하지만 해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해리가 공황에 빠진 사이 모자는 해리의 머리에서 벗겨졌고 슬리데린 테이블에서는 의례적인 박수를 뛰어넘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없었던 일로 하면 안 될까요?’ 해리는 떨리는 눈빛으로 맥고나걸 교수를 쳐다봤다. 그녀는, 당연히, 엄숙하게 고개를 저었다. 해리는 넋 빠진 표정으로 슬리데린 테이블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대연회장 이곳저곳에서 해리를 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의 해리에게 그따위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론이 슬리데린에 들어와야 한다……. 제발 슬리데린……. 무조건 슬리데린……. 반드시! 슬리데린!’ 옆에서 말포이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해리는 이를 악물고 배정식이 이루어지는 자리만을 노려봤다. 그리고 마침내……. “위즐리, 로널드!” “그리핀도르!” 해리는 이 학교를 졸업하는 날 교장실에 침입해 모자를 불태워 버리겠다고 자신에게 맹세했다. ## 7화. 재회 (2) ## ‘소년’이 마침내 호그와트에 올 날을 앞두고, 세베루스는 막연히 예견했다. 아니, ‘알았다’. 대연회장에 제 어머니라곤 하나도 닮지 않은, 꼭 제임스 포터의 축소판처럼 생긴 소년이 들어온다. 제 아비처럼 건방지고 버릇없는 소년은 제 부모처럼 그리핀도르에 들어간다. 자신은 당연하게도 그를 증오한다. 자신은 적당히 그 오만함을 눌러 줄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는 버릇없이 대답하고, 그리고, 그리고……. 세베루스의 상상 속에서 소년의 모습은 간혹 달라지기도 했다. 반대로 릴리를 빼닮은 모습, 황당하리만치 부모를 전혀 닮지 않은 제3의 모습, 심지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여자아이로 나타나기도 했다(물론 그럴 일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진작 덤블도어가 자신에게 떠들어댔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 이후는 같았다. 그것이 순리고, 이치고, 마땅히 ‘정해진’ 것이니까. 안 그런가? 그렇게 ‘정해진’ 대로, 실제의 소년은 하늘을 찌르게 오만방자한 아비의 축소판으로 나타났다. 어머니의 과분한 희생이 만든 제 흉터가 그리도 자랑스러운지, 아니면 단지 그리도 튀고 싶었던 것인지, 녀석은 모자도 쓰지 않고 나타났다. 자신이 어디에 갈지 너무나 확고히 알고 있다는 듯, 다른 긴장한 신입생들과 달리 무료한 표정으로 건들거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혐오감이 치밀어 올랐다. 어느새 소년의 차례가 되었다. 결과야 뻔하다. 세베루스는 그냥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소년이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사자 무리로 떨어지는 꼴을 굳이 볼 필요는 없었다. “슬리데린!” 모자의 선언에 이내 잘나신 살아남은 아이를 환영하는 환호성이 잇따랐다. ‘그래, 빨리 가 버리라고, 어차피 일어날 일 얼른 끝내 버리란 말이다, 네 자리…….’ ……. ‘슬리데린으로……?’ 무언가 잘못됐다. “오호라……. 이것 참 무척 흥미롭군요. 그래서 소감이 어떠신가요, 스네이프 교수님?” 저 옆에서 덤블도어가 말을 붙여왔다.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꿈인데요.” 세베루스의 목소리는 마치 폭풍이 오기 전날의 하늘처럼 안온했다. 그래,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너무 전형적이었다. 이런 게 현실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정신술의 대가였다. 악몽쯤이야 가볍게 웃어넘겼다. 정말이지, 현실에서 연회를 다시 겪을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피곤해졌다. 옆의 동료들이 어째 바들바들 떠는 게 보였다. 하긴 꿈속의 주민들에게 이 세상이 꿈이라는 건 꽤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세베루스!” 덤블도어가 싱긋 웃었다. “유감이지만 이곳은 현실이라네.” “하! 꿈 맞거든요.” 그렇게 코웃음 치고 세베루스는 가볍게 검지가 손등에 맞닿도록 꺾었다. 전형적이지만 효과적인 수법이다. 그리고 손가락은, 평범하게 아팠다. “……꿈이어야 하는데.” 세베루스는 얼굴을 와락 우그러뜨렸다. 옆의 필리우스가 온몸을 비틀어댔다. 다시 보니 그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반대편의 포모나는 웃음소리가 비어져 나오지 않게 하려고 아예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세베루스는 거의 공황에 빠져 있었다. “방금 저 애가 맥고나걸 교수님을 보는 표정 못 보셨나요? 본인조차도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해진 건 정해진 거라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젓던 덤블도어는 어조를 바꿔 은근한 태도로 속삭였다. “뭐……. 어떻게 보면, 자네에게도 이편이 더 수월하지 않겠나?” ‘저는 그놈의 애새끼를 지키겠다고 했지 돌보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요.’ 상사의 불쾌한 압박에 세베루스는 말없이 덤블도어를 노려봤다. “하여간에, 아주 재미있게 됐어. 이번 학기는 정말 기대되는군.” 덤블도어는 그렇게 말하며 앞에 놓인 황금 잔을 홀짝였다. ……빈 잔을. 그야 배정식이 끝나지도 않았으므로. 새 학기가 걱정됐다. 매우. * * * 위즐리 다음으로는 남은 학생이 얼마 없었기에 배정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저녁 연회가 시작되고 테이블 위에 음식이 가득 나타났다. 그제야 해리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슬리데린의 신입생은 해리까지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의 남학생과 다섯 명의 여학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세 명은 이미 아는 얼굴인 말포이, 크레이브, 고일이었다. 테이블에는 트레버를 찾으러 열차를 돌 때 본 학생도 제법 있었다. 아이들이 해리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상급생들도 해리에게는 관심을 보였다. 열차에서와 마찬가지로 해리는 또다시 기상천외한 질문들에 맞서야만 했다. “내 친척들이 머글이어서 사악한지는 모르겠고, 그래, 확실히 사악하기는 했지.” “내 눈은 살인 저주를 쏘지 않아……. 이건 봉인구인지 뭔지가 아니라 그냥 안경이야.” “본인에게 네가 천 년에 한 번 나타날 엄청난 천재냐고 물어봐 봤자 할 말이 없는데. 어쨌든 난 고작 열한 살인걸.” “도대체 어떻게 ‘사실 진짜 해리 포터는 10년 전에 죽었고 너는 새 신분으로 마법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변장한 그 사람 본인이니’라는 질문에 ‘어’가 돌아올 거라고 기대할 수가 있는데?! 만약 그 멍청한 헛소리가 사실이래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 아까 말은 무슨 의미심장한 암시 같은 게 아니거든. 그냥…… 아니라고! 저기? 내 말 듣고 있지?” 해리는 진짜로 도서관에 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해리가 유명세를 치르는 동안 말포이는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해리에게 관심을 다 빼앗겨서인지 그의 바로 옆자리에 무시무시하게 생긴 유령, ‘피투성이 바론’이 앉아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식사 시간 내내 ‘기름진 음식밖에 없다’, ‘집에서 먹었던 고급 식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는 동안 해리는 테오도르 노트, 블레이즈 자비니라는 다른 동년의 남학생들과 말을 텄다. ‘아버지가 네 얘기를 하더라’라며 말을 붙여 온 테오도르(그들은 말포이와 달리 성으로 부를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말포이를 이미 알고 있는 기색이었는데, 별로 친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해리가 말포이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블레이즈는…… 그냥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해리에게 말을 걸려고 찾아온 상급생들이 블레이즈를 보고는 ‘장례식에서 보지 않았냐’라는 말을 건네는 일이 몇 번이고 있었던 것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여학생들과도 한 번씩은 인사를 나눴는데, 다들 해리를 그럭저럭 좋게 보는 것 같았다. 다행히 고립될 걱정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론만큼 마음에 든 아이는 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을 힐끔거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슬프게도 사람들에게 가려서 론은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과연 론이 자신을 기억하기는 할지 궁금했다. 연회가 끝난 것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덤블도어 교장의 짤막한 연설에 이어 교가 제창까지 마무리되자 학생들은 반장들을 따라 기숙사로 이동했다. 슬리데린 기숙사의 휴게실과 숙소는 지하감옥에 위치했다. 반장들이 장식 없는 돌벽 앞에 멈춰 서서 암호를 말하자 숨겨진 문이 나타나 열렸다. 나지막한 천장의 기숙사 휴게실은 거친 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장 곳곳에 매달린 초록빛과 은빛의 등불이 방을 밝혔다. 창문 너머는 온통 새카맸다. 반장들은 그곳이 호수 아래라고 설명해 주었다. 창밖을 들여다보다 거대한 촉수처럼 생긴 것이 지나가는 것을 본 여학생들이 꺅 비명을 질렀다. “자자, 얘들아, 피곤한 건 알겠지만 잠깐만 들어줘.” 반장들은 신입생들을 휴게실 한가운데로 모으고는 공문으로 보이는 종이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휴게실의 다른 상급생들이 그들을 힐끔거렸다. “너희들을 위해 쓴 거니까 꼭 읽어봐.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물어보고.” --- 슬리데린 신입생 안내문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전통 있는 슬리데린 기숙사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원만하고 안전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위해 알아 두셔야 할 것을 적어 두었으니 모두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1. 1학년은 모두 ○○시 전까지 기숙사 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소등은 ○○시입니다. 2. 출입 암호는 2주마다 바뀝니다. 휴게실 게시판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외부인 출입, 암호 유출 모두 엄금입니다. 3. 우리 기숙사 학생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이 휴게실에 있다면, 절대 교수님을 불러오지 마시고 못 본 척하세요. 그들은 공식적으로 이곳에 없습니다. 4. 슬리데린의 담당 사감 선생님은 마법약 과목을 담당하시는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님이십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기본적으로 같은 슬리데린에게는 무해합니다. 지시에만 복종하면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5. 스네이프 교수님께 첫사랑에 대해 묻지 마세요. 6. 아예 스네이프 교수님께 사적인 질문을 하지 마세요. 7. 5번, 6번 규칙에 대해 스네이프 교수님께 발설하지 마세요. 8. 1학년 중 샐리-앤 퍽스라는 이름의 학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절대 답하지 마시고 즉시 가까운 교수님이나 반장에게 신고하세요. 9. 1학년은 교실에서 교실로 이동할 때 무조건 전원 동행해야 합니다. 기숙사 내규입니다. 스네이프 교수님은 ‘학기 첫 달 신입생 소실률’에 대단히 신경 쓰고 계시며, 당신이 담당하는 학생이 또 다른 샐리-앤 퍽스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10. 휴게실에 비치된 다과는 먹을 만큼만! 욕실 비품 훔치지 마세요. 또한 가구 파손 시 동일 물품으로 배상해야 합니다. 11. 장식장 안의 해골은 진짜 인골이니까 손대지 마세요. 10번 규칙의 의미를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12. 지하감옥 2번 교실은 방과 후 자습실로 자유롭게 사용 가능합니다. 마법 및 변신술 연습, 마법약 제조 등은 가급적 휴게실보다는 자습실에서 부탁드립니다. 특히 휴게실 내에서 환각성 물질 절대 제조 불가입니다. 13. 휴게실 내 플루는 기본적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습니다. 향수병 때문에 벽난로를 집에 연결하려고 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만, 교내 인트라넷 특성상 무조건적으로 스네이프 교수님 사무실에 연결된다는 점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14. 벽난로의 에메랄드빛 불꽃은 장식용으로, 플루 불꽃이 아닙니다(13번 규칙 참조). 상급생들이 뭐라고 말하든, 절대 벽난로에 들어가지 마세요. 매년 화상 사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15. 그냥 벽난로를 가만히 놔두세요. 16. 마시멜로 구워 먹는 건 괜찮습니다. 17. 휴게실 창문을 모스부호로 두드리지 마세요. 허가 없이 인어와 접촉하는 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마법부 관할이므로 학교가 책임지지 못합니다. 18. 같은 슬리데린 학생들끼리 싸우지 마세요. 기숙사 점수만 깎아 먹습니다. 차라리 다른 기숙사 학생들에게 시비를 거세요. 그러면 다른 기숙사 점수도 같이 깎입니다. 19. 되도록 그리핀도르로 부탁합니다. 래번클로와 후플푸프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무시해도 됩니다. 20. 무슨 일이 생기면 되도록 반장들에게 문의해 주세요. 스네이프 교수님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별일 아닌 걸로 교수님을 귀찮게 하면 우리는 더 귀찮아집니다. 이상입니다. 즐거운 학교생활 되시길 바랍니다. 슬리데린 반장 일동 --- ‘저기요.’ 안내문을 읽은 해리는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았지만 대관절 어디서부터 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여자 반장이 나와 말을 이었다. “특히 우리 슬리데린의 아름다운 전통인 ‘1학년 굽기’를 조심하도록 해. 그래, 야만적인 풍습이지. 중요한 건 너희가 속지 않는 거야. 상급생들이 뭐라고 말하든 다 거짓말이니까 벽난로 안에 들어가면 안 돼. 알았지?” 도대체 얼마나 멍청해야 자유의지로 벽난로에 기어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3살짜리도 그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의 생각과 달리 옆의 아이들은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야, 재미없게! 그걸 벌써부터 알려주면 어떡해! 이게 다 전통인데!” 벽난로 옆 고풍스럽게 세공된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남학생 서넛이 야유를 보내왔다. “닥쳐, 망할 놈들아. 애새끼들이 노릇노릇 구워진 채로 스네이프 사무실에 배달되면 우리가 무슨 꼴이 될 것 같아?” “알 바냐? 얘들아, 쟤들 말 듣지 마!” 상급생들의 언쟁에 신입생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해리는 하급생에게 불을 지르는 게 일상이라면 돼지로 만드는 것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샐리-앤 퍽스는 무슨 말이야? 아까 후플푸프에 걔가 들어가지 않았어?” 한편 신입생 무리에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여학생이 외쳤다. 그러자 아이들 앞에서 말하던 반장이 다가와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애의 목소리를 들었니?” “아니.” “그럼 됐어! 그냥 잊어버려. 매년 나오거든. 여기도 후플푸프처럼 지하다 보니까 가끔 출몰한단 말이지……. 망할 년. 자기 기숙사에나 가라고.” ‘뭐가 출몰하는데?!’ 다들 설명을 더 듣고 싶은 눈치였지만 반장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안내문을 도로 걷어가고는 숙소로 안내했다. 저녁의 기우와 달리 말포이의 객실에 남겨졌던 해리의 짐은 아주 멀쩡한 상태로 숙소까지 배달되어 있었다. 헤드위그가 안 보이는 것에 순간 깜짝 놀랐지만, 옆의 다른 아이들이 자기 부엉이 어디에 갔냐며 중얼거리는 말을 듣자니 아무래도 부엉이들은 일괄적으로 다른 곳에 간 것 같았다.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해리는 생각에 잠겼다. 죽고 싶지 않으면 3층 복도에 들어가지 말라는 교장의 연회 연설도 그렇고, 마법학교는 좀…… 이상했다. 하기야 이 학교는 원서를 제때 안 보내는 학생을 납치하는 곳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야만성이야말로 마법의 매력이리라. 해리는 대충 납득하기로 했다. 피곤에 전 해리는 곧장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깃털 베개의 저항할 수 없는 폭신함에 눈이 절로 감겨왔다……. 해리는 그대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 * * 새벽 3시, 짧게 붙였던 눈을 뜨고 세베루스는 지하감옥 복도에 나왔다. 순찰을 위해서였다. 집에서 갓 나온 코흘리개들이 도착한 날에는 언제나 사고가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그들은 늘 몽유병이든 향수병이든 갖가지 이유로 숙소를 빠져나오곤 했다. 기대에 걸맞게 복도 저 멀리 연회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작은 인영이 어른거렸다. 세베루스는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무단 외출자를 잡으러 걸음을 서둘렀다. 막 학생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순간, 학생이 갑작스레 고개를 돌렸다. ‘소년’이었다. ‘하필이면.’ 예상보다도 이른 첫 조우였다. “참 아름다운 곳이야.” 잠옷 차림의 소년이 입을 열었다.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천장을 수놓은 아름다운 밤하늘, 우아하게 회장을 밝히는 촛대……. 심지어 어린애들의 떠들썩함마저도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야……. 아아, 얼마나 그리웠는지! 이곳은 언제나 내 집이었어…….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거야.” ‘네가 여기 언제 와 봤다고.’ 배회와 횡설수설. 전형적인 몽유병이었다. 경험상 몽유병 환자를 강제로 깨우면 더 귀찮아진다는 것을 세베루스는 알았다. 깜짝 놀라서 칭얼거리거나, 더 나쁘게는 눈앞의 낯선 남자에게 놀라 비명을 빽 지르곤 하는 것이다. 잠든 채로 적당히 기숙사로 돌려놓은 뒤, 다음날 호출해서 훈계를 하든 벌을 주든 하는 게 가장 나았다. “그래그래, 알았으니까 이만 자러 가라.” 세베루스는 소년의 어깨를 팔로 감싸고는 기숙사 쪽으로 살살 밀었다. 하지만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초점 없는 눈으로 세베루스를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너를 만날 줄은 몰랐어. 오랜만이네.” 누구에게 말을 거는 걸까. 세베루스는 아닐 것이다. 몽중의 소년은 꿈꾸는 사람 특유의 몽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그러면 다음에 또 보자. ……세베루스.” ‘뭐…….’ 당황한 세베루스가 흠칫 굳은 사이 소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뒤쫓으니 저 멀리서 돌벽을 열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소년이 보였다. ‘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세베루스는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새 학기의 날이 밝았다. ### 작가의 말 ### 본격 마굴 슬리데린. 스네이프는 앞으로도 보조 화자로 활약할 예정입니다! 스네이프가 화자일 때는 지문에서 ‘세베루스’로 지칭됩니다. (해리가 화자일 때는 평범하게 ‘스네이프 (교수)’입니다.) 어째서 ‘세베루스’냐면 제한적 3인칭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스네이프 본인에게 자신은 기븐 네임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사실 제 안에서 스네이프는 ‘스네이프’이므로 쓰면서 많이 헷갈리곤 합니다. 만약 ‘세베루스’ 할 자리에서 ‘스네이프’ 하거나 그 반대가 나오는 실수를 발견하신다면 제보해 주세요. 아무래도 좋은 이야깁니다만 시리즈에서 최애캐를 꼽자면 덤블도어, 스네이프, 볼드모트 3명이 각자 다른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이 나오는 장면이 되면 너무나 신이 나 버려요. 자제하고 적절히 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8화. 재시동 ## 시끌벅적한 대연회장의 아침, 해리는 그리핀도르 테이블 인근을 걸으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그의 시선은 한 빨간 머리 소년에게로 멈추었다. 해리는 활짝 웃으며 소년에게로 달려가 말을 걸었다. “안녕, 론! 있지, 어제는 정말…….” 그러나 해리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넌 누구니? 저리 비켜줄래?” 그것은 다름 아닌 론의 목소리였다. “로, 론? 우리 어제 종일 열차에서 함께했잖아!” “흥, 난 너 같은 비열한 슬리데린 놈은 모른다고. 앞으로 말 걸지 마라.” 론은 해리를 밀쳐내고는 그의 그리핀도르 친구들에게로 걸어갔다. 불과 1분 전까지 친구라고 생각했던 소년의 냉담한 얼굴은 어쩐지, 초등학교 언젠가의 학기 첫날, 딱 하루 즐겁게 지냈다가 다음 날 다시는 말 걸지 말라고 요구했던 옆자리의 동급생과 닮아 있었다(해리는 그것이 두들리의 방문과 깊은 관련이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진실로 그런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어디선가 깔깔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그것은 유리 조각으로 변해 해리의 등을 찔러왔다. 해리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을 지르는 건 다른 쪽이었던가? 그는 오히려 듣고 있었다……. 사방에 유리 조각과 타조 깃털이 흩날렸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세상이 암전했다……. 해리는 눈을 깜빡였다. 끈적이는 아침잠이 눈꺼풀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마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의 암녹색이 어둠 속에서 선명해져 갔다. ‘꿈이었구나.’ 불길한 악몽에 몸서리를 치며, 해리는 숙련된 동작으로 화장실과 세면실을 차례로 들리고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벗은 옷을 정리하는 해리의 손끝이 그 옆, 가지런히 개어 둔 론의 로브 앞에서 움찔하고 멈추었다. ‘만약 꺼지라는 말을 들어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해리는 론이 빌려준 옷을 가방 속에 고이 접어 넣고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아직 길을 잘 모를 1학년들을 위해 반장 한 명이 나른한 눈빛으로 휴게실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각오가 무색하게, 학교 첫날의 아침은 시간표를 나눠 받으랴 길을 안내받으랴 빠져나갈 구석 없이 꽉 잡혀 있었기 때문에 해리는 론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슬리데린의 1학년들을 첫 수업인 변신술 교실로 데리고 온 남자 반장은 교실 문을 가로막고는 말을 늘어놓았다. “어제도 말했지만, 1학년은 교실에서 교실까지 무조건 단체 행동이야. 다른 기숙사는 안 그러던데, 같은 말은 마라. 삼 개월 동안 실종되고 세 살을 더 먹어서 나타나고 싶니? 너희들이 멋대로 나돌아다니면 스네이프가 내 살갗을 벗겨 버릴……. 음, 아무튼, 뭉쳐 다니라고.” 반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해리 포터!”를 대뜸 지목했다. “앞으로는 네가 애들 데리고 다녀.” “왜 내가?” 살면서 인솔자 비슷한 역할도 맡아본 적이 없었던 해리가 당황해서 반문했다. “지금 내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1학년이니까.” 완전히 제멋대로지만 기묘하게 수긍되는 답을 마지막으로, 반장은 자기 수업을 들으러 사라졌다. 한데 몰린 동급생들의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해리는 교실 문을 열었다. “음, 들어가자.” * * * 변신술 수업은 시작부터 환상적이었다. 과목을 맡은 맥고나걸 교수가 교탁을 돼지로 변화시켰다가 다시 원래대로 되돌린 것이었다. 해리는 그녀의 대마법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다가 주의를 받았다. 맥고나걸 교수는 곧이어 지팡이를 갓 잡은 그들이 가구를 동물로 바꾸려면 아주 한참이 지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해리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말해보렴……, 포터.” 맥고나걸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첫 질문자의 이름을 똑똑히 호명했다. 그것이 ‘지금 그녀가 이름을 아는 유일한 1학년’이어서였는지는 모를 노릇이었지만. 발언을 허락받은 해리는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우다다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사람을 돼지로 바꾸려면 얼마나 더 공부해야 하나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걸리죠? 불가능한 건 아니죠?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가능한가요, 그러니까, 아까 보여주신 것처럼? 사람을 돼지로 바꾸는 것과 돼지가 된 사람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중에 뭐가 더 어려운가요? 그리고 돼지 꼬리만…….” “그만, 그만!” 맥고나걸 교수는 손을 내저으며 해리의 질문을 끊었다. “질문이 좀……, 수업 주제와 벗어난 것 같구나. 수업이 끝난 다음에 얘기해 주마.” “오.” 시무룩해져서 들었던 손을 내리는 해리를 뒤로 하고, 헛기침을 한번 한 맥고나걸 교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업을 이어 나갔다. 한참의 지루한 이론 수업 끝에 그들에게 주어진 대망의 첫 실습은 성냥개비를 바늘로 바꾸는 것이었다. 동급생들이 선보이는 첫 마법 실력에 해리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냥개비를 받자마자 대번에 성공한 그와 달리,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성냥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다르게 바꾼 학생은 말포이뿐이었는데다, 그마저도 막대 부분을 광택이 나는 금속 재질로 만든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변신술을 미리 연습해보았던 거니?” 수업이 끝난 뒤 따로 남은 해리에게 맥고나걸 교수가 건넨 질문이었다. 해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동물을 변형 대상으로 삼은 것을 빼고(단순히 재료가 없었다) 교과서에 적힌 주문은 대부분 써 보았다고 실토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손으로 턱을 짚고는 “흠” 소리를 내며 해석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을 까딱여 두껍고 오래된 교과서를 손아귀로 소환했다. 그녀는 책의 중간 즈음을 펼치고는 한 주문이 적힌 부분을 짚어서 해리에게 해 보라고 말했다. 해리는 책에 적힌 주문과 동작을 꼼꼼히 읽어 보고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세르펜소르티아!” 그러자 해리의 지팡이 끝에서 거대한 보아구렁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놀라우리만치 동물원에서 만났던 녀석과 닮은 뱀은, 어떤 이유에선지 부분부분 신발에 밟힌 발자국과 그로 인한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바들바들 떨며 죽어가는 보아구렁이는 원망 섞인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비페라 에바네스카.” 맥고나걸 교수의 주문과 동시에 보아구렁이는 펑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두 사람은 당혹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잠시간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음.” 맥고나걸 교수가 입을 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렴. 네 주문은 매우 훌륭했단다. 처음 지팡이를 잡은 학생이 이 정도 수준으로 소환 주문을 해내는 건 놀라운 일이야.” “아니 그런데 방금 뱀이…….” “모두가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단다.” “아니…….”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의 거대한 의문과 당혹을 ‘주문이 완벽하지 못했다’로 간단히 일축하며 끊어 버렸다. “아무튼.”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어. 포터,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변신술을 오래도록 배운 적이 있니? 따져 묻는 게 아니란다. 솔직하게 말해주렴.” 해리는 어리둥절해하며 답했다. “아뇨, 전혀요. 저는 마법의 세계가 있다는 것도 고작 한 달 전에 알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마법을 미리 배울 수 있겠어요?” “그래, 그랬지……. 하지만 그게 참말이라면 정말 이상하구나. 어떻게……?” “뭐가 이상한가요, 교수님?” “어디서부터 말하면 좋을까……. 그래, 모든 마법사에게는 버릇이란 게 있단다. 한 마법사가 평생토록 마법을 써 오면서 붙는 고유한 세월의 흔적이란 것이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포터, 너는 꼭 수십 년은 마법을 써 온 마법사처럼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단다. 능숙하게, 또 자기만의 고유한 요령과 개성을 담아서 말이지. 방금 써 본 주문도, 물론 상당히 쉬운 주문이고 사실 완벽하게 해내지도 못 했지만, 오늘 처음 지팡이 잡는 법을 배웠으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주문을 거의 성공했잖니? 내가 보기에 그건 변신술에 미숙한 학생이 보일 법한 실수라기보다는 노련한 마법사가 한 발 삐끗한 것처럼 보였단다. 이건 단순히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거나 배우는 게 빠른 것과는 별개의 일이야.” 버릇? 수십 년? 해리는 뭐라도 해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이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닫았다. “……그래서 혹시 다른 사람에게 마법을 오래 배운 적 있는지 물어본 거란다. 만약 그 사람의 ‘버릇’을 네가 무의식적으로 익혀서 따라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아니라면요?!” 해리가 당황해서 외쳤다. 맥고나걸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르지. 그게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야. 그냥 희한하단 거지. 하여간에, 포터 네가 오늘 보여준 마법은 처음 지팡이 잡는 법을 배운 1학년으로서는 매우 뛰어난 수준이야.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자, 그럼 급우들이 기다릴 테니 어서 가려무나.” “아…….” 그제야 해리는 교실 문밖에서 수다를 떠는 동급생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이동 시에는 무조건 뭉쳐 다니라고 반장이 엄포를 놨었다. 게다가 인솔자 역할은 졸지에 그가 맡았었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서둘러 변신술 교실을 나가는 순간, 해리는 정작 돼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 * 스프라우트 교수의 약초학과 유령 빈스 교수의 마법의 역사 수업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첫 수업은 끝이 났다. 학기 첫날이기도 했고, 1학년은 고학년들보다 수업을 덜 듣는 편이었기에, 저녁까지는 다소 시간이 남았다. 해리는 고대했던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으며 론의 옷이 든 가방을 꽉 껴안았다. 호그와트의 도서관은 미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으로 가득 찬 어마어마한 양의 책장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곳이었다. 입학 이틀 차의 풋내기 학생 해리는 책의 세계를 모험하는 대신 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해리 포터에 대한 책을 찾고 있어요.” 사서 핀스 부인은 해리 쪽으로 눈을 돌리지도 않은 채 손으로 서가의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특설: 해리 포터 코너’ 해리는 대답을 대신해 말없이 핀스 부인을 쳐다봤다. 은근한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핀스 부인의 시선이 해리의 이마에 닿자 그녀는 켕기는 짓을 하다 걸린 것 같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크, 크흠.” 핀스 부인이 헛기침했다. “다음 주까지 치우마.” 조용히 계속되는 시선에 핀스 부인은 무안한 티를 내며 변명조로 말을 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만들라고 하셨던 거야…….” 거기서 해리는 따져 묻는 것을 관두고 ‘특설: 해리 포터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유익해 보이는 책 다섯 권과 가장 멍청해 보이는 책 다섯 권씩을 신중하게 고른 해리는 책상에 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몇 쪽이나 읽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리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눈을 슬쩍 흘기니 첫날 열차에서 만났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있었다. 조용히 손을 휘적여서 인사를 하고는 독서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강렬한 시선은 거둬질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도와주게 해 줘 도와주게 해 줘 도와주게 해 줘’ 해리는 그날 눈빛이 시끄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는 결국 백기를 들고 가방에서 양피지와 깃펜을 꺼내 필담을 시작했다. ‘반가워 헤르미온느 뭔가 하고 싶은 말 있니?’ ‘안녕 해리! 책 읽고 있니? 어제 말한 대로 정말 너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있는 거니?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너에 대한 코너가 있더라?’ 해리는 답을 쓰는 대신 헤르미온느에게 ‘멍청한 책’ 다섯 권을 안겨 줬다. ‘네가 빌려. 나가자.’ 말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한 말이었다. * * * 세베루스는 교무실로 들어섰다. 새로운 멍청이들과 익숙한 멍청이들로부터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피난처다. ……그래, 그도 직장 동료들과 지나가는 수다도 떨고 차도 마신다. 왜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이 존재하는지 그로선 모를 일이다. 교무실에는 미네르바가 먼저 들어와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슬리데린 신입생들의 첫 수업이 그녀의 담당이었던가. “제 학생들은 어떠셨습니까? 미네르바.” 세베루스가 툭 물었다. “아, 세베루스. 슬리데린 1학년들 말이죠.” 미네르바는 엷게 웃으며 대꾸했다. “후후, 애들이 다 그렇죠. 말포이 학생은 실력이 제법 나쁘지 않더군요…….” 말포이라면 루시우스 말포이의 아들인가. 학기가 시작하기 전 그가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약간의 정성’을 보인 뒤로 세베루스는 작은 말포이에게 큰 호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그 아이, 그래요. 해리 포터 군이었어요.” 세베루스는 컥 소리를 내버렸다. 아직도 ‘소년’이 자기 학생이란 걸 미처 이해하지 못한 두뇌는 멍청하게도 제 발로 거대한 지뢰를 밟아 버렸던 것이다. “편애가 섞인 시선이 아니라고, 확신하실 수 있는지?” “하하! 편애를 세베루스가 제게 말할 처지인가요? 확실히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첫 주문을 단번에 성공하더군요. 다른 아이들 중 성공한 아이는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아마 그 아이의 아버지처럼 변신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 애비를 닮았다고. (그것이 세베루스가 알아들은 유일한 단어였다.) “그런데 조금……. 뭐랄까…….” 역시나 주석이 붙을 줄 알았다. 분명 수업 시간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악마의 씨앗이렷다. 세베루스는 미네르바가 무슨 말을 하든 받아들일 준비가 만만했다. “애가……. 불온해요.” “예?” 당황한 세베루스를 뒤로 하며, 미네르바는 “그냥 직접 보라”는 모호한 말을 남기고 다음 수업을 위해 교무실을 나갔다. 불온……. 불온……. 도대체 어떻게 해야 미네르바 입에서 ‘불온하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문득 지난 밤의 기묘한 만남이 뇌리를 스쳤다. 그건 또 뭐였으며……. 불온함이란 단어가 주는 불안함이 세베루스의 등허리를 타고 올랐다. 새학기가 걱정됐다. 굉장히. * * * 저녁 시간, 대연회장은 여느 식사 시간이 다 그렇듯 시끌벅적했다.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잽싸게 집어 든 해리는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마침내 애타게 그리던 빨간 머리 소년을 찾아냈다. 론은 옆자리의 급우들과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지 활짝 웃고 있었다. 정말로 저 자리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가도 되는 걸까, 도리어 무안만 당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망설이던 차, “해리, 너 여기 있었구나!” 론이 다가왔다. “아, 론! 있잖아, 그, 어제 빌려준 옷을 갖고 왔는데…….” “얌마, 그런 얘기나 하러 온 거면 섭섭한데? 그런 건 언제 돌려줘도 상관없다고! 이리 와. 내가 애들 소개해 줄게.” 론은 해리의 손을 잡아끌더니 그를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아예 앉혀 버렸다. “얘들아, 얘가 해리야. 내가 말했지? 얜 진짜 죽여준다고! 해리, 얘는 시무스고…….” 해리는 론이 정말, 아주 마음에 들었다. ### 작가의 말 ### 엄청나게 오랜만입니다. 무려 해가 넘어가 버렸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보아구렁이는 버려진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믿어달라기에는 늦은 것 같지만 제 마음만은 그렇습니다! Special Thanks to: 베타 리더 sssy 님, 베타 리더 천호랑 님 ## 9화. 지혜의 출처 (1) ## “거들어줘?” “사양할게.”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지난번 일을 어떻게 잊겠어? 그러고도 맡기면 학습 능력이 없는 거지.” “글쎄, 상황이 다르잖아……. ‘이런 거’는 진짜 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전에도, 어쨌든 학교 다니기는 훨씬 편해졌잖아?” 그렇게 말하며, 꿈속의 인물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타조 깃털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살랑살랑 흔들었다. “농담하는 거지?” “아니.” 꿈속의 인물은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한결같이 성격이 나쁜 그다. 해리는 또 다른 자신을 매섭게 째려봤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해리의 선언에, 꿈속의 인물은 고민하듯 뚱한 표정으로 한쪽 턱을 괴고 허공을 째려보다, 끝내 항복, 이라는 느낌으로 두 손을 들었다. “그래. 혼자서 잘 해봐. 그렇게 학교생활을 즐기고 싶다니, 관대한 내가 양보해 줘야지.” “말은 잘 하네.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으면서…….” “그건 부정할 수 없는걸.” 잠깐의 정적. 이내 두 ‘해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키득, 실소를 교환했다. 그들이기에 주고받는 시답잖은 유머다. 살랑살랑. 팔랑팔랑. 타조 깃털이 흩날렸다. * * * 호그와트에서의 첫 주는 순식간에 지나가 금요일을 맞이했다. --- 해리에게 1학년들은 금요일 오후에 수업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3시쯤 와서 차 한잔 하지 않을래? 첫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듣고 싶구나. 헤드위그를 기다릴게. 해그리드 --- 아침의 연회장, 헤드위그가 물고 온 편지였다. “무슨 편지니, 해리?” 옆자리에서 아침을 먹던 테오도르가 물었다. 답장을 쓸 깃펜을 꺼내려 가방을 뒤적이던 해리는 건성으로 ‘초대장’이라 답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무슨 초대장이냐, 혹시 교수님께 받은 거냐 따위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해리가 모호한 미소로 답을 얼버무리자 그들은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듯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알아들은 것인지 해리는 알지 못했다. 그냥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전 수업이 마법약이지? 우리 사감 교수님 수업이잖아.” “스네이프 교수님 말이지. 우리 아버지와 아주 절친한 분이셔. 아버지가 이사장이시거든.” “그거 정말 놀랍다. 너희 아버지가 이사장이란 걸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 여느 때와 같은 말포이의 자기 자랑에, 해리는 그만 반사적으로 빈정대 버렸다. 그의 말에 푸흡 비웃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말포이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해리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실수였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속으로 진땀이 흘렀다. 론과의 평화로운 우정이 그리웠다. 해리는 얼른 오전 수업 시간이 오기만을 바랐다. * * * 오전의 마법약 수업은 그리핀도르 학생들과 같이 듣는 과목이다. 급우들은 합동 수업이 썩 탐탁잖은 듯했지만, 해리는 론의 옆자리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단 생각에 신이 났다. 아무래도 소속이 다르다 보니, 가장 마음이 가는 친구인데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이 ‘가장 마음이 가는 친구’지, 사실 론은 해리의 거의 유일한 ‘친구’에 가까웠다. 같은 기숙사의 ‘급우’들과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루두루 원만하고 양호한 편, 아니, 그 이상이었다. 살아남은 아이의 이름값, 앞선 몇 번의 수업에서 보여준 특출한 모습, 거기에 얼떨결에 유사 반장 노릇을 도맡은 것까지 맞물려 해리는 자연히 아이들 사이에서 존중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비록 말포이는 해리의 이러한 입지를 못마땅해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그는 해리의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말포이는 꾸준히 해리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시도했다. 해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거나, 그의 체면을 은근히 깎아내리는 식으로 말이다. 솔직해지자면, 집에서 편지를 한 통도 받은 적 없는 그 앞에서 보란 듯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에서 보내오는 과자를 과시하듯 늘어놓는 것은 조금 아팠다. 그러나 그러한 견제는 상대에 대한 인정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하나의 역설이었다. 말포이는 해리에게 ‘싫은 녀석’ 이상이 될 수 없었다. 녀석의 수작질과 두들리의 해리를 사회적으로 자살시키려는 집요한 시도를 비교하자면, 그저 코웃음만 쳐질 뿐이었다. 그래, 해리는 명실상부 슬리데린 1학년의 우두머리였다. 단 하나 불행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해리에게는 완전히 맞지 않는 옷이었다는 것이다. 해리는 그냥…… 그렇게 사교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바랐던 학교생활은 친한 친구 한두 명 사귀고 괴롭힘당하는 일 없이 그들과 조용히 오손도손 지내는 거였고, 그가 실제로 했던 학교생활은 음침한 왕따 경력이 삼 년이요 아무도 가까이 안 가는 미친놈 경력이 삼 년이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대장 사자 노릇은 팔자에도 없고 성미에도 안 맞는 짓이란 것이다. 그래도 해리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받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 * “아, 그래. 해리 포터. 우리의 새로운…… ‘유명 인사’.” 슬리데린의 모든 1학년은 입학하자마자 선배들로부터 한 가지 주의를 받았다. 스네이프 교수에게 개기지 말라고. 하지만 해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교수가 먼저 자신에게 개겨오면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포터!” 과목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던 중, 스네이프가 갑자기 해리를 불렀다. “쑥을 우려낸 물에 수선화 뿌리를 갈아 넣으면 뭐가 되지?” “살아있는 죽음의 약이 됩니다.” 해리가 즉답했다. 그는 무언가를 더 요구하는 듯한 스네이프의 표정과 발표를 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손을 번쩍 든 헤르미온느를 슬쩍 보고는, 덧붙여 말했다. “……수면제입니다. 많이 마시면 죽습니다.” 스네이프의 입술이 냉소로 비틀렸다. “‘많이 마시면 죽습니다’? 6살짜리도 그런 답은 할 수 있겠어. 혹시 ‘용량만이 독을 결정한다’라는 격언을 들어 본 적 있는지? 포터, 모를까봐 말해주는데, 모든 약은, 많이 마시면 죽는다. 쯧쯧……. 확실히 이름값만 못하는군.” 노골적인 조롱에 말포이와 그의 패거리가 푸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교실의 다른 아이들도 입꼬리를 부르르 떨었다. “살아있는 죽음의 약은 아주 강력한 수면제입니다. 복용자를 해독하지 않는 이상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지게 하고, 아주 소량으로도 치사량에 도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제 말이 그렇게 틀렸나요?” “그러면 그렇게 말했어야지.” 스네이프는 해리의 이어지는 해명을 가소롭다는 듯 딱 잘라내 버렸다. 교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도로 비어져 나왔다. ‘풀어서 설명한 거라고!’ 해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첫 수업, 첫 질문이라서 요구하는 답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해리의 그런 도전적인 결심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그냥 해리를 놔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스네이프는 다시금 그를 지목해 질문을 던졌다. “다시 해 보자, 포터. 위석을 찾으려면 어디를 봐야 하지?” “위석은 염소의 위에 있는 돌입니다.” 머리에 한계까지 몰린 피가 뇌를 팽팽 돌렸다. 해리는 눈을 형형히 빛내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독을 듣지 않게 만드는, 아주 희귀한 재료입니다. 그 자체로도 해독제 역할을 하지만, 학교 밖 약재상과 같은 실제 현장에서는 으깨어 다른 성분과 혼합해서 종합 해독제로 사용되는 일이 더 잦습니다 — 주로, 단가 때문이죠. 소량만으로도 대부분의 독을 해독하는 위석은 얼핏 골파롯의 세 번째 법칙, ‘혼합 성분의 독약에 대한 해독제는 반드시 각각의 성분에 대한 해독제의 총합보다 더 많아야만 한다’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석은 엄밀히 말해 학술적인 의미의 ‘해독제’는 아닙니다. 독성 성분 자체를 해독하는 것이 아닌 인체에 미치는 독의 영향을 중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마법약 시간에 해독제를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죠. 감사합니다.” 일장 연설을 마친 해리는 옆자리의 론이 그를 마치 외계인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곁눈질로 느꼈다. 손을 반쯤 들다 만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완전히 조용해진 교실에 홀로 선 해리는 은은히 올라오는 쾌감을 만끽했다. 자, 여기서 뭘 더 요구할 수는 없겠지. 해리는 스네이프를 도발적인 시선으로 쳐다봤다. 스네이프는 아주 흥미로운 것을 보는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봤다. 이내 그의 비틀린 입술이 열렸다. “그래……. 우리의 유명인사께서는 자신의 총명함을 자랑하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나셨나 보군. 혹시 지금이 1학년 첫 수업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냐? 아니, 그 똑똑하신 머리로는 잊을 리가 없을 테지? 포터, 대답이라는 것은 질문의 의도에 부합해야 하는 거란다. 너처럼 1학년 시간에 N.E.W.T.와 현장 수준의 지식을 내뱉는 건 자기 자랑이라고 하는 거고. 자, 대단하신 해리 포터 ‘교수님’의 발표에 다들 박수!” 굳어버린 해리를 뒤로 하고, 얼떨떨해하는 학생들을 향해 스네이프가 으르렁거렸다. “박수 쳐! 치라고!” 교수의 윽박지르기에 가까운 명령에 교실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아니면 그냥 다들 잘난 체하는 해리를 놀려먹고 싶었는지도. 말포이가 깔깔 웃으며 환호성을 더했다.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과 눈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해리는 자신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이다……. 투구꽃무리와 투구꽃의 차이를 설명해 봐라.” 스네이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꼬듯 덧붙였다. “물론 ‘우리 수업에 적절한 수준’으로 부탁드립지요, 포터 ‘교수님’.” 해리는 자신이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배들의 조언을 되새길 때였다. ‘스네이프에게 개기지 마라’. 반응하지 마라……. 자신을 죽여라……. 신중하게 머릿속으로 《1000가지 마법 약초와 곰팡이》를 펼쳤다. 사진기처럼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만일 그런 신묘한 기억력이 있었다 해도 굳이 그딴 일에 시간을 낭비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의 앞부분 — A로 시작하는 — 은 꽤 지겹게 읽은 편이었다. 그놈의 기시감인지 뭔지를 시험해본답시고 말이다. “‘바곳(Aconite): 울프스베인 마법약, 눈을 크게 뜨는 마법약(Wideye Potion) 따위의 다양한 마법약에 쓰이는 식물. 독성이 강해서 다루는 데 주의해야 한다. 다른 이름: 투구꽃(Wolfsbane), 투구꽃무리(Monkshood)’……입니다, 교수님.” 해리는 공손한 목소리로 차분히 답했다. 발끈하지 않은 자신에게 내심 안도하며……. 그러나 해리는 마법약 선생을 얕보았다. “그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교과서를 달달 외우셨군, 응? 포터, 교사의 질문에는 말이다, 자기 말로 답을 해야 하는 거다. 설마 선생님들이 책 내용을 몰라서 물어보겠냐? 학생이 배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거지. 책을 그대로 읽는 건 영어만 할 줄 알면 다 해. 최소한 베끼지 않은 척이라도 해 봐라.” 빈정거리는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가위가 되어 해리의 신경줄을 하나씩 툭툭 끊어먹었다. 한계였다. 해리는 앉은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나서는 빽 소리 질렀다. “짧게 설명해도 안 된다, 자세히 설명해도 안 된다, 그래서 교과서를 그대로 읊어 드렸는데 도대체 뭘 해야 만족하실 건데요?” 동시에, 해리는 자신이 이 싸움인지 뭔지에서 완전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례한 놈.” 스네이프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게 네가 자기 견해에 자신이 있다면, 오늘 받은 질문 ‘각각’에 대해 양피지 1피트 길이의 작문을 제출하도록.” 그리고 그는 즐거운 듯 덧붙였다. “참고로 기한은 내일까지다.” * * * “넌 할 만큼 했어. 운이 나빴지. 잘못 걸린 거야.” 옆자리의 론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해리는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다른 그리핀도르 학생들도 미친 교수의 표적이 된 해리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여주었다. 책상 너머를 슬쩍 바라보자 말포이가 주위의 다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들리진 않았지만, 화제가 무엇인지는 대략 알 것 같았다. 반별로 앉으라는 지시는 딱히 없었지만,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학생들은 자연히 기숙사에 따라 교실을 양분했다. 유일한 예외는 해리였다.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는 당당하게 론의 옆자리에 비집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보면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슬리데린 쪽에 앉았으면 해리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녀석들이 말포이의 말을 들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첫 수업은 종기 치료제를 배합하는 것이었다. 스네이프의 교육 방침은 일단 학생들을 실전에 던져놓고는 제대로 못 할 때마다 흠을 잡는 식이었다. 당연하게도 마법약을 생전 처음 만들어보는 학생들은 스네이프의 매서운 시선으로부터 살아남지 못했다. 스네이프의 마음에 든 사람은 말포이뿐인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그의 민달팽이 삶는 방법을 칭찬했지만, 해리는 그의 아버지가 이사장인 것이 칭찬의 진짜 이유라고 추측했다. 수업 시간 내내 해리는 미친 교수가 트집을 잡을 거리를 더 이상 주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노력이 빛을 본 것인지, 스네이프는 중간중간 해리를 한참 쳐다보곤 했지만, 얼굴만 찌푸릴 뿐 말없이 그를 지나쳐 갔다. 수업을 들으며 해리는 스네이프가 ‘슬리데린에겐 대체로 무해하다’(딱히 그렇지도 않았지만)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차츰 깨닫게 되었다. 수업 중간, 네빌이 시무스의 냄비를 녹여버리고 병동으로 이송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스네이프가 옆에서 실험하던 론과 해리에게 다가와선 “왜 바늘을 넣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그 녀석이 잘못하면 네가 잘나 보일 거라고 생각한 거냐”라며 그리핀도르에서 1점을 감점한 것이다. 터무니없이 불공평한 것은 둘째치고, 그 옆에 있는 해리는 슬리데린이었기에 그 논리로 따지고 보면 슬리데린에서도 1점을 감점하는 것이 맞았을 것이지만, 그들은 미친 교수와 논쟁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앞서 학습했으므로 잠자코 감점을 받아들였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수업이 끝이 났다. 굶주린 학생들은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가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몰려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슬리데린의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차피 점심시간 이후에는 수업이 없었으므로 신경 쓸 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해리에게도 편한 일이었다. 론과 천천히 점심을 먹으러 걸어갈 수 있으니까. “진짜 욕봤다, 해리.”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수다를 떠는 해리와 론을 누군가가 따라잡았다. 헤르미온느였다. “해리!” “아, 헤르미온느. 안녕.” “저, 있잖아. 아까 네가 수업 시간에 발표했던 위석에 대한 얘긴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더라. 따로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니? 어떤 책을 읽었던 거야?” 헤르미온느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범생이답게 자기가 모르는 게 나오니까 불안해하는 걸까. 확실히 엄청난 발표를 했었다……. “그래 맞아. 엄청 놀랐다니까. 해리,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알아 온 거니?” 론이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그건……. “그러게?” “뭐?” “응?” “솔직히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화가 나서 되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되는 대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말해주기 싫어서 둘러댄다고 생각한 것인지, 기분이 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해리로서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었다. “너희는 그런 적 없니? 배운 적 없는데 왠지 아는 것 같은 느낌이라든지, 처음 해 보는 건데 여러 번 해 본 것처럼 익숙하다든지?” 그러나 론과 헤르미온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볼 뿐이었다. 마법사 아이들에게도 이 ‘기시감’은 이상한 일이라는 말이다. 확실히 해리는 이상했다. 읽은 적 없는 교과서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고, 배운 적 없는 마법을 쉽사리 해냈다.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가 마치 노련한 마법사처럼 지팡이를 휘두른다고 했다……. 론의 실패한 주문에 대해 옹호하려고 했을 때도 ‘아무렇게나’ 한 말이 참말이 되지 않았던가. 결정적으로 오늘의 위석 발표는, 맹세컨대 해리의 일평생에 걸고 결코 알 수 없었던 정보뿐이었다. 이 지혜는 어디서 온 걸까? ### 작가의 말 ### 맡기는 쪽이 편했을 텐데. 하지만 이런 것도 다 해 봐야 느는 거겠죠? 스네이프 VS 해리의 첫 신경전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몇몇 팬들은 해리가 스네이프의 세 질문에 모두 답했으면 스네이프의 해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럴 리가요. (웃음) 미친 교수 스네이프를 너무나 좋아해요. 참고로 1피트는 약 30cm로, A4용지의 세로 길이와 비슷합니다. 원래는 2피트로 하려고 했는데 첫날부터 너무한 것 같아서 줄였습니다. 실제 원작의 스네이프도 첫날에는 1점씩만 깎잖아요? 스네이프에게도 그런 무른(?) 구석이 있다는 해석을 좋아하기 때문에 적극 반영해 보았습니다. (웃음) 빼먹었다 뒤늦게 덧붙이지만, 베타 리더 sssy 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 10화. 지혜의 출처 (2) ## “해그리드는 괜찮은가요, 제가 슬리데린이라도?” 금지된 숲의 가장자리, 해그리드의 통나무 오두막에 들어가 앉은 해리가 맨 처음으로 꺼낸 화두였다. 슬리데린을 좋게 보지 않는 듯한 해그리드가 슬리데린에 들어간 해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내내 걱정했던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호그와트에서 한 주를 보낸 해리는 이제 슬리데린 기숙사의 이미지가 단순히 ‘거기에 나쁜 사람들이 많이 나왔더라’ 정도가 아님을 알았다. 요컨대 슬리데린은 가장 재수 없고, 기분 나쁘고, 자기네밖에 모르고, 성질 더러운 놈들의 수용소였다. 적어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슬리데린 학생 본인들까지도. ……빌어먹을 모자가 그를 왜 이곳에 배정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하하하! 너 그걸 여태 걱정하고 있었던 거니?” 해그리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어느 기숙사에 들어가든,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는걸!” “해그리드……! 저도 해그리드가 무조건 좋아요!” 기뻐하는 해리의 표정에, 해그리드는 어딘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크흠, 사실 네게 거짓말을 한 게 있단다.” 해그리드는 머뭇거리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 출신에 대해 말이야.” “출신이라뇨?” “사실…….” 해그리드가 마지못해 내뱉듯 말했다. “……난 슬리데린 출신이야.” “네에에에엣!?” “놀랐니? 미안해.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슬리데린을 실컷 욕해놓고 거기를 나왔다고 말하려니 조금 뭐하더라고.” 당연히 해리는 놀랐다. 어마어마하게. ‘이럴 수가, 해그리드. 당신 말만 믿고 그리핀도르나 슬리데린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순간, 해리의 뇌리에 섬광과도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어쩌면……. 어쩌면……. 정확히 이것이 해그리드의 의도가 아닐까? 가장 평판 나쁜 기숙사 슬리데린은 가장 평판 좋은 기숙사 그리핀도르와 유구한 경쟁 관계였다. 그런데 만일 슬리데린 출신이 자신이 그리핀도르 출신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면? 모두가 좋아하는 기숙사의 후광을 입는 동시에, 어쩌면 그리핀도르의 수준에 대한 인식을 떨어뜨려, 경쟁 기숙사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책략! 해리는 해그리드의 심계에 전율했다. “이해했어요, 해그리드. 그런 거였군요. 역시 해그리드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해리의 목소리에는 존경심이 듬뿍 어려 있었다. “그러니까 저도 꼭 졸업하면 그리핀도르 출신이라고 말하고 다닐래요!” “……어, 음, 아무튼 네가 좋게 받아들였다면 다행이야.” 해그리드는 푸근하게 마주 웃어 주었다. 이어지는 대화는 해리의 학교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해리는 해그리드에게, 다들 자신에게 잘 대해준다는 것, 다만 유독 드레이코 말포이라는 녀석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그리핀도르의 론 위즐리라는 남자아이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수업을 한 스네이프 교수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독 자신을 들들 볶는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벌로 작문을 왕창 내주는 거 있죠. 뭐, 네, 거기서 소리를 지르면 안 되긴 했죠. 하지만 애초에 먼저 너무한 건 스네이프잖아요.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는 걸까요?” “아이고, 고생했어. 정말……, 어, 스네이프 교수님이 왜 그러셨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구나! 아, 그새 차가 떨어졌구나. 한 잔 더 마시렴.”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며, 해그리드는 찻주전자를 들어 해리의 잔에 찻물을 따라 주었다. ‘하긴, 해그리드가 교수 욕에 맞장구치기는 입장상 힘들겠군. 하지만 말을 아낀다는 건 반대로 할 말이 많다는 뜻이지…….’ 해리는 해그리드의 태도를 좋을 대로 해석했다. 입을 다물고 차를 홀짝이며, 그는 찻주전자 덮개 밑에 놓인 신문 기사를 집어 들었다. ‘그린고트 은행 침입 사건’ “흠.” * * * 때는 오후, 호그와트 정원의 한구석, 책 읽기에 좋은 나무 밑 벤치에 한 여학생과 한 남학생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 나이의 청소년들이 바로 떠올릴 법한 남녀 사이의 은밀한 만남은 아니고, 건전하고도 시시한 독서 모임이었다. 그들은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였다. “이놈의 ‘해리 포터 스터디’도 오늘로 닷새째네.” 해리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정말로 핀스 부인에게 그 바보 같은 코너를 치우지 말라고 부탁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게 늘어나고 있으니까. 정말 배울 게 많아!” 첫날 도서관에서 만난 뒤로 그들은 매일 방과 후, 한두 시간가량을 할애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목적은 단순했다. 해리 포터에 대해 ‘알려진’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문제는 살아남은 아이의 존재가 영국 마법세계의 꼬이고 꼬인 정치사와 너무 깊게 관련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 모두가 이제 막 마법세계에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열한 살 풋내기 꼬마란 것에 있었다. ‘적당히 나눠서 책을 읽고, 알아낸 것을 노트에 정리한다’라는 계획은 좋았으나, A를 이해하기 위해 B를 뒤지고 B를 알아내기 위해 C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읽어야 할 책과 수수께끼는 산더미처럼 늘어만 갔다.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부담이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해리 자신의 일이었기에 모르고 있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알지 못했던 그에 관한 이야기가 잔뜩 실려 있었던 것이다. 헤르미온느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리는 부모님의 사진을 책에서 처음으로 봤다. 놀라우리만치, 혹은 놀랍지 않게도, 해리와 그들은 닮았다. 마치 사촌 두들리가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를 닮았듯이……. 해리는 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어머니의 아몬드 모양 눈매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는 컬러 사진이 크게 실린 책의 제목을 잘 기억해 두었다. 답이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사실도 많이 알아냈다. 어째서 자신을 돌볼 친척이 그 사악한 이모 내외뿐이었는지,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어떻게 그에게 그렇게 많은 재산을 남겼는지, 그리고 외조부모의 기일 때마다 페투니아 이모가 어째서 자신의 존재를 유독 용납하지 못했는지 — 죽음을 먹는 자들은 마법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포터’와 해리의 외조부모(즉, 어머니와 이모의 부모님)를 살해했다. 젠장, 그들이 마법을 싫어하는 것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반 시간을 조금 넘기고, 헤르미온느가 두꺼운 책을 탁 덮었다. “너무 빠르지 않아?” “따로 조사할 게 있잖아.” 헤르미온느의 대답에, 해리는 어리둥절해서 오늘 수업에서 뭐가 있었나 되짚어 보다 이내 화색이 되어 말했다. “너 혹시 내 마법약 작문 같이 써줄 거니?” “작문 말고……, 네 기억 말이야! 너도 이상하다고 말했잖아? 배운 적도 없는 걸 어느새 알고 있다고.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지? 이거야말로 정말 알아봐야 할 거 아니니?” “어,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거보단 작문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해리가 말했다. “그거 내일까지 제출이라고.” “그럼 왜 아까까진 책을 읽고 있었던 건데?” 그야 엄마 아빠 얘기는 궁금하지만 숙제는 하기 싫으니까다. 해리는 눈을 굴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조사 계획을 세워 봤어. 이건 현재 세운 가설이고…….” 해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건 말건, 헤르미온느는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얜 어째서 이렇게까지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아무래도 다른 애들에게 그 얘기를 터놓은 건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자신의 제정신을 의심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뭐, 그건 내가 알아서 알아볼게. 내 일이니까. 어쨌든 난 진짜로 작문 숙제를 해야 해. 스네이프한테 또 깨지고 싶진 않거든.” 딱 잘라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해리를 향해, 헤르미온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숙제, 같이 할래?” 해리가 제안했다. “그건 선생님이 너한테만 내준 거잖아…….” “아니지, 헤르미온느. 들어봐. 숙제라는 건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확실히 더 알기 위한 거지? 내가 받은 숙제도 사실 그 연장선인 거야. 스네이프가 내가 받았던 질문의 답을 필기해 두라고 한 거 기억하니?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시험공부인 거지. 만약 네가 이걸 같이 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만 앞서나가는 거다? 나는 오히려 네게 기회를 주는 거라고…….” “시, 시험, 공부…….” 해리의 과감한 주장이 모범생의 불안감을 자극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뻔뻔한 합리화를 늘어놓으며 남에게 자기 숙제를 강요하는 그가 안쓰러워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헤르미온느는 결국 해리에게 굴복하고 그를 뒤따랐다. 덕분에 해리의 숙제는 아주 쉽게 끝났다. 더도 덜도 아니고 ‘적당히 잘하는 1학년의 작문’에 수준이 정확히 맞도록 헤르미온느더러 자료 조사와 검수를 맡긴 게 큰 도움이었다. ……사실상 절반은 헤르미온느를 시켰다는 말이다. 순진한 공부벌레를 너무 이용해 먹는 것 같았지만 뭐, 워낙에 나서서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이것은 오히려 이 애를 도와주는 게 아닐까? 어쨌든 모든 건 그녀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왔다. “있잖아, 해리.”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도서관에서 막 나오는 길이었다. “우리 다음 주도……, 같이 공부 할 거지?” “응? 그래, 뭐. 그러자.” 그 말에, 헤르미온느는 활짝 웃었다. 어쩐지 안도한 듯이. * * * ‘좀 과했나?’ 세베루스는 생각했다. 오늘의 수업, 그 소년의 일에 대해서다. 아니, 과하지 않았다. 곧바로 그렇게 결론 내렸다. 소년은 오만방자한 놈이었다. 그 나이에 골파롯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릴리의 아이다운 면모였지만(기분 나빴다), 그런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나대는 것은 그야말로 제임스 포터의 복제품이었다(정말 기분 나빴다). 미네르바가 이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 애가 불온하댔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수업 분위기를 잡치는 불쾌한 놈이라는 말이겠다. “오늘이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1학년의 첫 수업이었죠, 세베루스?” 마침 교무실에 나란히 앉아서 업무를 보던 미네르바가 던진 화두였다. “그, 애는 어땠나요? 그러니까, 포터 군 말입니다.” “확실히 버릇없는 애송이더군요.” 세베루스가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그래봤자지만요. 요는 콧대를 눌러 주면 되는 겁니다. 애한테 주제 파악을 확실히 시키면 어련히 적절한 태도를 갖추기 마련이죠.” “음…….” 미네르바가 길게 침음했다. “뭐, 세베루스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더니, 그녀는 이내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밑의 7학년 학생 한 명이 개인 프로젝트를 꾸미고 있는데 지도해줄 시간이 없어서 대신 맡아 줄 교사가 필요하다나. 이런 일에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다. 세베루스는 사무실에 볼일이 있다며 잽싸게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가만히 있었다는 이유로 졸지에 날벼락을 맞게 된 필리우스에게 속으로 가볍게 사과하며, 그는 지하 감옥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식사 시간이 지난 저녁의 지하 감옥 복도는 일반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이 음침한 곳에서 굳이 시간을 보낼 학생은 없었고, 지하 감옥에 볼일이 많은 슬리데린 소속의 학생이라면 그냥 휴게실에 들어가서 편히 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복도 어디에선가 묘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파닥파닥. 마치 불똥이 튀기는 듯한 소리였다. 호기심을 느낀 세베루스는 무심코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걸어갔다. 2번 교실, 제 학생들에게 자습실로 쓰라고 열어 둔 곳이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간 세베루스는 작게 숨을 삼켰다. 소년이 있었다. 텅 빈 자습실에 홀로 앉은 소년은 시선을 완전히 책에 고정한 채,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끊김 없이 휘두르며 반대쪽 손으로 책상 앞에 놓인 책들을 마구잡이로 뒤적이고 있었다. 불똥 튀는 소리의 정체는 소년을 둘러싼 다홍빛 불꽃이었다. 불꽃은 소년의 속삭이는 주문 소리에 맞춰 새파랗게, 또 샛노랗게 색을 바꾸었다. 마치 뱀처럼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던 불꽃은 이내 눈송이로 모습을 바꾸어 공중을 수놓았다. 눈송이는 한데 뭉쳐 흰 새가 되었고, 새는 점차 몸을 부풀려 거대해지더니 펑 소리를 내며 터져 종이 폭죽을 흩날렸다. 수준 높은 기교였다. 예술적일 정도의. 넋을 놓고 지켜보던 세베루스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소년이 상급생들의 교과서를 뒤적이며 주문을 하나씩 써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세베루스는 소년의 주문이 점차 고학년의 것으로 올라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막힘 없이 모습을 바꾸던 그의 주문은 갈수록 연이은 실패로 버벅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번 멈추던 것이 세 번 멈추고, 이내는 주문을 아예 성공시키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멈췄다. “아직……. ……이 부족한가……. 복구하려……, ……겠어.” 무아지경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소년이 가느다랗게 중얼거렸다. 덜컥. 무심코 뒷걸음질 친 세베루스의 발걸음에 의자가 걸렸다. 소년의 확장된 동공이 그에게로 향했다. “아, 세베루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마법이 깨졌다. 깜빡, 깜빡. 잠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소년은 눈을 두 번 감았다 떴다. “……스네이프 교수님, 안녕하세요.” 세베루스는 당황을 감추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통금 시간이 가깝다. 이만 들어가.” 소년은 말없이 고개만 까딱이고는, 흩어진 책들을 들기 좋게 쌓기 시작했다. “아.” 불현듯 소년이 멈칫했다. “여기, 내라고 하셨던 작문입니다.” 소년은 가방에서 양피지 세 장을 꺼내 세베루스의 손에 쥐여 주고는, 책들을 양팔로 껴안은 채 곧바로 교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세베루스는 망연히, 손에 들린 양피지로 시선을 내렸다. 지극히 평범한 1학년의 작문이었다. * * * 쿠당탕탕 달음박질 소리가 돌계단에 울려 퍼졌다. 소리는 이내 옆으로 꺾였다. 벌컥! 교무실의 문이 열렸다. 다름 아닌 세베루스였다. 그가 외쳤다. “애가 불온해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 작가의 말 ### 이번 화에는 자체 설정이 몇 나옵니다. 슬리데린 해그리드, 그리고 해리의 머글 외조부모와 모든 ‘포터’ 친척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몰살당했고 그의 막대한 유산은 모든 죽은 포터들의 유산이 한데 몰린 결과라는 것 말이죠. 이는 공식 설정 — J. K. 롤링이 책 밖에서 밝힌 — 을 부정하는 의도적인 개작이며, 동시에 정경, 책 7권의 내용과 충돌하지 않는 재해석입니다. 재해석을 즐깁시다. 그것이 팬픽션의 권리! 마지막으로, 집필에 큰 도움을 주셨던 베타 리더 sssy 님과 둠칫 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 서지 정보 ## 저자: 주유월 발행: 2022년 8월 23일 - 2023년 1월 24일 수정: 2023년 10월 18일 03:26:33 연재처: https://yuwol.pe.kr/boa/ 연락처: https://twitter.com/JuYuw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