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데린 북클럽

어쩌면 호그와트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이야기. 슬리데린 없는 슬리데린 북클럽의 기원과 해체.

2022년 2월 19일자 트윗을 기반으로 퇴고함.


호그와트 마법학교에는 여러 동아리가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도 있고, 교사진의 손으로 세워진 동아리도 있으며, 마법부의 지시로 설립된 동아리도 있다. 그 많은 동아리 중 하나가 ‘슬리데린 북클럽’이다.

‘슬리데린 북클럽’은 그 이름대로 독서 모임으로, 주장에 따르면 백 년 넘은 유서 깊은 동아리다. 이름과 달리 꼭 슬리데린 소속의 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사실, 이 북클럽에는 슬리데린 회원이 한 명도 없다.

사실, 이 북클럽에는 래번클로뿐이다.

상기했듯 이 북클럽은 회원을 받을 때 기숙사를 따지지 않는다. 꼴에 학교 공인 동아리(담당 교사와 동방과 쥐꼬리만 한 지원금을 할당받는다는 뜻이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원수부터 그리 많지 않아서 사람을 가릴 처지도 되지 못한다.

단지 입회자가 모두 래번클로일 뿐이다. 이러면 래번클로 북클럽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농담이 돈 지 근 이십 년은 되었을까. 책 읽고 얘기하는 게 전부인 이 지루한 동아리의 구성원이 래번클로로 수렴진화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름이 슬리데린이냐. 백 년 전 슬리데린 학생 세 명이 방과 후에 노닥거릴 교실을 타내려고 만든 무성의한 동아리가 어찌어찌하다 호그와트 유일의 독서 모임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되었다고 한다나.

그런 아무래도 좋을 소사뿐인 ‘슬리데린 북클럽’에, 엄브릿지라는 파란이 일었다. 마법부가 돌연 교내 모임을 허가된 것을 제외하고 전부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처음에 회원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 무해하고 재미없는 동아리를 금지시킬 이유 따윈 없으니까. 실제로 걱정이 기우라는 듯 허가는 금세 났다. 진짜 문제는 일주일 후 엄브릿지가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으러 회원들을 사무실에 호출하면서 일어났다.

“슬리데린 북클럽인데, 왜 슬리데린이 한 명도 없습니까?”

“없으니까요.”

“왜 슬리데린 학생이 한 명도 없는데 슬리데린 북클럽이라고 자칭하는 겁니까?”

“그냥 이름이 원래 이랬습니다.”

“슬리데린 북클럽이라고 이름 붙이면 관대하게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닌가요? 그런 꼼수가 들통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까?”

유서 깊은 슬리데린 북클럽의 자랑스러운 회장, 애슐리 케첨은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했다. 엄브릿지에게 동아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지만 도통 들어먹지를 않는 것이다.

“슬리데린의 이름을 참칭하고 그 밑에서 불온서적을 읽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담당 교사가 정말로 서류와 일치하나요?”

케첨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심문은 계속되었다.

“마법학교의 동아리가 왜 머글 도서를 읽는 거죠? 훌륭한 마법 영문학의 전통을 무시하는 건가요? 이것은 머글 유화 정책에 대한 덤블도어의 프로파간다가 아닙니까?”

케첨은 지극히 평범한 호그와트 6학년생이었고, 단지 트집을 잡고 싶을 뿐인 마법부의 끄나풀에게 영문학의 발전사, 인구수와 시장의 공개성으로 인한 머글-문학과 마법-문학의 비대칭성에 대해 강의할 자신이 없었다.

그건 그냥 빌어먹을 셰익스피어라고.

끝내 케첨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말았다.

“아니, 머리에 든 거 없는 슬리데린 녀석들이 책을 안 읽겠다는데 저희보고 어떡하라는 겁니까?”

엄브릿지의 사무실이 폭발했고, 그날부로 백 년 역사의 슬리데린 북클럽은 해체되었다.

하지만 남은 회원들은, 어차피 전부 같은 기숙사였으므로, 자기네 기숙사 휴게실에서 독서 모임을 계속 이어갔고, 그 재미없는 동아리가 받은 부당한 탄압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