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에서 고드릭 골짜기까지

톰 리들이 볼드모트가 되어서 몰락하기까지의 삶을 어떻게 그리겠는가?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

2021년 10월 31일자 트윗 스레드에서 문단 및 서식 조정과 오탈자 정정을 가한 합본 문서로, 총 118개 트윗을 병합했습니다.

근시일 내 본문에 기반해 새로 고쳐쓴 완성본을 발행할 예정이므로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의욕 상실로 재발행을 무기한 연기합니다. 그냥 보세요. 읽기에는 합본이 더 좋습니다.


저...안녕하세요. 생각보다 죽먹자와 볼디를 원작 기준으로 제대로 꿰뚫어보시는게 많은거 같아서 급 궁금해져서요. 혹시 리들이 볼드모트가 되서 몰락하기까지 어떻게 살았을지 그려지는 그림이 있으신가요?

이런저런 캐해를 많이 보긴하는데 리들이 외모를 잃은건 본체라는 육신을 잃어서 마법약으로 대강 부활해서 코없는 감자모트가 됬다고들 하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다는 것도 놀랍고.

‘톰 리들이 볼드모트가 되어서 몰락하기까지의 삶을 어떻게 그리겠는가?’

해포에서 거리를 두고 살던 와중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와우 이런 캐해 질문 받는 거 처음이에요 이런 영광스럽고 매력적인 떡밥 물지 않을 수 없죠. 아래로 장문을 잇겠습니다.

볼드모트의 삶을 그리기에 앞서 볼드모트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목적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인간인지부터 간략하게 정리합시다. 볼디는 어떤 인간인가? 그것을 알아야 그가 어떻게 움직였을지를 가정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왜 볼드모트는 더 합법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었는데 테러리스트따리가 된 거지’와 같은 의문을 늘 가졌었어요. 하지만 근래 재주행을 하고 그간의 해석을 뒤돌아보고 정리하자 답이 나오더라고요.

애초에 볼드모트가 원한 건 권력이 아니었던 겁니다.

“너희는 또한!” 크라우치 장관이 소리쳤다. “프랭크 롱보텀이 정보를 넘기려 하지 않자 그의 아내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너희는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사람의 힘을 되찾아서, 그자가 강력하던 시절에 너희가 누렸을 것이라 짐작되는 폭력적인 인생(인용자 강조)을 다시 누리고자 획책했다. 이에 본 법정은 위원단에게…….”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주년 개정판

4권 불의 잔, 레스트랭 부부와 바크주의 재판 기억입니다.

“그자가 강력하던 시절에 너희가 누렸을 것이라 짐작되는 폭력적인 인생”. 크라우치 장관이 지적한 죽음을 먹는 자들의 삶이었죠.

이…… “폭력적인 인생”은, 죽먹자 그리고 볼드모트 그 자신이 누려온 삶의 양식 그 자체입니다. 볼드모트가 추구했던 것, 그래서 손에 넣었던 것은, ‘폭력’입니다.

권력? 아뇨. 7권서 실제 정부 먹은 다음에 뭐 했는지 보십쇼. 꼭두각시 세워놓고 신경도 안 쓰잖아요. 그냥 그는 내키는 대로 사람을 막 죽이고 고문하고 적당히 헛소리를 늘어놓으면 추종자들이 호응해주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볼드모트의 삶에 대한 많은 모순이 단번에 풀립니다. 자기자신은 혼혈이면서 왜 머글과 머글태생에 대한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단체를 만들었는가? 그러면서 왜 머글태생인 릴리에게는 스카웃을 보냈는가? 순수혈통 우월주의를 주창하면서 왜 어둠의 생물들은 채용했는지? (죽먹자의 창립 모토가 늑대인간 권리라는 건 크랙픽 Seventh Horcrux에서 반복되는 농담이기도 하죠. 웃기지 않아요?)

답은 간단해요. 볼드모트는 그 무엇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냥 대충 아무 소리나 하면서 추종자를 모으고 힘을 키웠을 뿐이에요.

볼드모트는 명백히 사적으로 머글을 싫어하고 혈통을 신성시합니다. 하지만 혈통 우월주의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란 겁니다. 볼디는 사상 따위에 휘둘리는 연약한 인간이 아닙니다. 모든 것 위에 나님이 있다. 세상과 나님이 어긋나면 세상을 고치는 초극강 자의식 과잉 인간입니다.

이 ‘내가 세상과 어긋나면 세상을 고치겠다’라는 의식은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로서의 삶을 시작한 궁극적 원인이자 동인이기도 합니다: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질이 갈수록 정부와 마찰을 빚으니까 사람을 맘대로 죽일 수 있는 어둠의 마법사가 되기로 한 것이죠.


그러면 이제 볼드모트가 생각 없는 살인 애호가라는 이론에 입각해 고드릭 골짜기에서 몰락하기까지의 그의 일생을 간략히 그려봅시다.

옛날 옛적에 톰 리들이라는 소년이 런던의 한 고아원에 살았습니다. 그는 타고나기를 사악해서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괴롭히곤 했답니다. 그런 톰은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소셜스킬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던 사이코패스 소년은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기로 합니다. 완벽한 착한 아이, 모범생으로 변모한 겁니다.

흠, 왜 진작 그럴 수 있었는데 성질머리대로 사납게 살았던 걸까요. 아마 너무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런던의 고아에게 주어진 삶이야 뻔하죠. 나이가 차면 시설에서 쫓겨나고 아무 공장에 팔려가 착취당하다가 별 볼 일 없는 삶을 일찌감치 마감하기. 톰이 갖고있는 이상한 능력? 소년의 하잘것없는 가학성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정말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서커스단 광대? 톰은 머리가 좋았고 그렇기에 일찍이 절망했습니다. 어차피 하찮게 뒈질 거란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타고난 혐성을 만끽하고 좋을 대로 살았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마법사로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제시되었고 톰은 이제 정말 잘해야 한단 걸 깨달았습니다. 톰은 정말, 정말 노력했을 거예요.


그렇게 톰은 리들(Mr. Riddle)이 되었습니다.

덤블도어의 주장에 따르면, 재학 내내 자신의 혈통을 필사적으로 추적하고 다녔다고 하죠. 고아 소년이 자신의 핏줄을 찾아다니는 건 그 자체로 이해가 갑니다만, 자기가 혼혈이라고 우기고 다니는 슬리데린의 머글-세계-출신 소년이라는 맥락에서 또 다른 동기를 어렵잖게 추측할 수 있겠죠.

잠깐 딴말을 하자면 솔직히 저는 팬픽션들의 순혈주의를 좀 웃기게 생각합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것이냐. 팬픽스러움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그 팬픽션 순혈주의가 원작의 독해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짜증나요.

“물론, 너희 어머니는 머글 태생이었지. 그 사실을 알고 믿을 수가 없었단다.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분명 순수 혈통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20주년 개정판

“그레인저? 그레인저라? 어쩌면 최고 마법약사 학회를 설립한 헥터 대그워스 그레인저와 친척일지도 모르겠구나?”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20주년 개정판

그치만 원작에서 묘사된 순수혈통에 대한 은근한 우대만으로 리들은 충분히 좆같았을 거예요. 그냥…… 직관적으로 담임이란 양반이 이러잖아요ㅋㅋㅋ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까요.

“리들? 리들이라? 어쩌면 전투 마법 이론을 다시 세운 것으로 유명했던 폰트워스 리들의 친척일지도 모르겠구나?”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고아원에서 자랐거든요.”

“호오? 머글 고아원 말이니? 믿을 수가 없구나. 나는 틀림없이 네가 이름 있는 순수 혈통 집안의 자제라고 생각했거든. 정말 뛰어난 재능이야.”

이제 리들은 부푼 가슴을 껴안고 폰트워스 리들에 대해 찾아보러 도서관에 사흘간 쳐박힙니다.

그리고 결국 -폰-이 자기랑 아무 관련 없는 머저리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는 뒤늦게 은은히 덮쳐오는 좆같음을 음미합니다.

꽤나 있을 법하지 않나요?

위대한 존재여야 마땅한 나님—톰 마볼로 리들—의 고고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혈통이란 요소는 어마어마한 자격지심이 되었겠죠. 물론, 나님—톰 마볼로 리들—은 ‘언제나’ ‘반드시’ 위대합니다. 고로, 당연히, 단지 자기가 모를 뿐 자신은 위대한 가문의 후손입니다! 증거는 없는데 아무튼 그럼. 내가 알아. 그래서 리들은 필사적으로 가족을 찾는 데 매달립니다.

수년 동안 끈기있게 매달린 끝에 리들은 기어코 단서를 찾아냈죠. 비록 믿을 수 없이 나약하게 죽은 엄마가 진짜 마법사 혈통이었고, 아빠는 여전히 누군지도 모른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인정해내야만 했지만. 시작이 좀 불길하긴 하지만 그는 진짜 가족을 찾으러 떠납니다.

뭐…… 당시의 톰이 뭘 기대했을진 모르지만, 실제로 마주한 진실이 그거보다는 무조건 더 나빴겠죠. 모든 단서가 거주민이 정신이상자임을 나타내는 오두막에 들어가자 웬 알콜중독자가 삼촌이랍시고 반겨주고 애비란 놈은 아내가 마녀라는 이유로 아내와 아이를 버린 머글이랩니다. 게다가 부자임.

그렇게 그의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명백히, 리들 일가의 몰살은 완전히 우발적이고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인 살인입니다. 리들 녀석이 리틀 행글턴에 가기 전에 ‘생부 일가를 찾아내서 모두 죽여야지’라고 생각을 했겠습니까? 죽인 방법도 허술하기 그지없어요. 냅다 삼촌 기절시키고 지팡이 뺏어서 집에 쳐들어가서 몽땅 죽이기. 허점이 몇 갠가요. 분명히 선언하는데 리들이 정부(머글 정부든 마법부든)에 붙잡히지 않은 건 그냥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슨 뛰어난 계획 살인범이어서가 아니라요.

그러니까, 톰 마볼로 리들에게는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질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리들 저택에서 생부 일가와 우리의 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볼디만이 알 일이겠지만, 어쨌든 리들은 한 가족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리고 잽싸게 현장을 빠져나와 고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그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사이코패스(JKR의 공식 표현)는 상황에 대한 압박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들 합니다만, 저질러버린 살인에 압박감을 느끼는지와 무관하게, 과연 그가 ‘나는 잡히지 않을 거다’라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들은 목격자가 정말로 없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마법부의 수사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고, 삼촌의 지운 기억이 진짜 복원되지 않을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는 여름 내내 ‘경찰/마법부 직원이 방에 들어와 자신을 체포할 수 있다’를 염두에 두고 남은 방학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가 어디까지 신경쓸지야 몰라도 적어도 늘 머릿속 한구석에 새겨두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체포되지 않았죠. 살인범으로 잡혀간 건 모핀 곤트. 리들은 용의선상에조차 몰리지 않음. 아무 생각 없이 한 가족을 몰살시켜버린 리들은 얼떨결에 완전범죄에 성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리들 일가의 몰살이 ‘사전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저질러졌’다는 점, ‘그 진행이 실제로 허술해서 자칫했으면 진범이 잡힐 수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에 저는 주목합니다. 새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리들이 이제…… ‘그래도 괜찮았다’를 학습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는 대로, 다음학기에 리들은 비밀의 방을 엽니다. 이어서 머틀을 죽이고, 호그와트를 문 닫을 지경으로 만들고, 해그리드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워서 일을 일단락시키고, 일기장 호크룩스를 만듭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머틀의 죽음이 명백히 사고사였다는 겁니다.

“으으, 정말 지독했지.” 그녀가 즐거운 듯 말했다.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 일이야. 나는 바로 이 칸막이에서 죽었어. 생생하게 기억나. 올리브 혼비가 내 안경을 갖고 놀려서 여기 숨어 있었지. 문을 잠가 놓고 울고 있었는데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그러더니 뭔가 이상한 말이 들리더라고. 다른 언어였던가,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어쨌든 내가 정말로 화가 났던 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남자였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문을 열었지. 그 애한테 나가서 남자 화장실을 쓰라고 말하려고. 그러고는…….” 머틀은 으스대듯 몸을 부풀렸다. 그녀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죽었어.”

“어떻게?” 해리가 물었다.

“모르겠어.” 머틀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엄청나게 큰 노란 눈 한 쌍을 본 것만 기억나. 몸 전체가 멈춰 버리는 것 같더니, 그다음엔 둥실둥실 떠오르고 있었어…….” 그녀가 꿈꾸는 듯한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그 뒤로 난 다시 돌아왔어. 올리브 혼비를 따라다니기로 결심했거든. 아, 내 안경을 놀린 걸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20주년 개정판

그냥 머틀이 운 나쁜 장소에 있어서 죽었단 거잖아요 모든 정황이.

물론 리들의 500% 책임이긴 합니다. 여자화장실에 누가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1잘못)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서(2잘못) 비밀의 방을 열고(3잘못) 바실리스크를 불러서(4잘못) 태평하게 대화나 하고 있었잖아요(5잘못)

하지만 머글태생 머틀의 죽음이 결코 리들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건 분명하죠. 거기에 있었던 게 순수혈통 소녀 폰트라 폰킨스(내가 지어냄)였어도 그녀는 죽었을 겁니다.

진짜로 주목해야 하는 건 머틀의 죽음이 어째서 ‘슬리데린의 후계자가 비밀의 방을 열어서 살해한 것’로 알려졌는지입니다.

잠시 50년 후로 넘어가 비밀의 방 사건이 재현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봅시다.

  1. 학교에서 기르는 수탉들이 죽음.
  2. “비밀의 방이 열렸다” 이하 선언문이 전시되는 동시에 관리인의 고양이가 석화됨.
  3. 머글태생 학생들이 석화되기 시작함.
  4. 끝내 누군가 비밀의 방으로 끌려감.

그렇습니다. 슬리데린의 후계자로 자칭하는 어떤 바보가 먼저 대박 공개적으로 “비밀의 방이 열렸다 후계자의 적들이여 조심하라” 선언을 하고, 습격—그러나 살인까지는 가지 않는, 아마도 석화에 그치는—이 계속되어야지만, 머틀의 죽음이 ‘슬리데린의 괴물에 의한 죽음’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프레드와 조지가 슬리데린 퀴디치 주장 몬태규에게 한 일을 기억하십니까? 사라지는 캐비닛에 쳐박아서 가볍게 몇 주를 실종되게끔 하려고 했죠.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는 뜻이지.” 프레드가 말했다. “우리가 그 자식을 2층에 있는 사라지는 캐비닛에다 머리부터 처박아 버렸거든.”

헤르미온느는 크게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엄청 곤란해질 텐데!”

“몬태규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는 아니지. 그리고 그때까지는 몇 주가 걸릴 테고. 우리가 그 녀석을 어디로 보냈는지는 알 수 없거든.” 프레드가 싸늘하게 말했다. “아무튼…… 이제 곤란한 처지가 되든 말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20주년 개정판

호그와트에서 죽은 사람이 없다는 교단의 주장과 달리 호그와트에서 학생이 실종되는 건 사실 일상다반사입니다. 학생들이 서로를 죽이려 드는 것도 미수로 그치기만 한다면 마법세계는 솔직히 신경도 안 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리들이 정말로, 진정으로, 머글태생 학생들을 없애버리려고 했다면 그냥 아무 선언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바실리스크보고 머글태생들을 짚어서 잡아먹으려고 시키면 됐던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실종된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면 점점 말이 나올 거고 수사가 진행되겠지만, 누가 신경씁니까? 머글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댁의 학생들이 없어졌어요 같은 말을 하겠냐고요. 실종된 학생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머글태생이란 게 정말 밝혀질지조차 의문인데 말이죠. (비아냥입니다.)

이건 반쯤은 농담이지만(반은 농담 아님. 진짜로 호그와트가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리들이 주체할 수 없는 관종 기질로 쓸데없이 제 무덤을 팠다는 건 명백하지요.

리들은 까놓고 말해서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고귀한 임무”(2권 비밀의 방 리들의 대사에서 직접 인용)를 진짜로 수행하는 데엔 관심이 없었어요.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후계자로서 비밀의 방을 열어버린 자신에 도취되고 싶었을 뿐이었던 거죠.

실제로 살인은 머틀뿐이었고 그전까지는(즉 사건이 그의 통제 아래 있었을 때에는) 아무도 안 죽었잖아요. 석화된 ‘사람’이 있기나 한지 의문. 고양이나 괴롭힌 거 아녜요?

그렇다면 리들 녀석은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 그 심리를 파헤치는 게 관건이 되겠습니다.

그것을 논하기 전에 잠시 시대배경을 살펴봅시다. 당시는 2차대전 중이었고, 런던은 공습을 당해 폭격을 얻어맞곤 했습니다. 당시 고아원과 같은 시설의 아이들은 시골로 대피를 갔다고 합니다. (레딧에서 ‘물론 고아원의 아이들은 시골로 대피를 갔겠지만, 그들이 리들에게 연락을 했을지 의문이기 때문에 리들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무도 없는 텅빈 고아원에 돌아가야 했을 거다’라는 농담을 본 기억이 납니다. 공정성을 위해 여기선 농담으로만 남겨둡시다.) 리들이 실제 런던으로 돌아가진 않았을 거고 그럭저럭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갈 거라고 가정하더라도, 살던 곳이 전쟁으로 지극히 위험한 불바다가 되는 것은 리들에게 굉장히,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문제는 말이다, 톰.” 그가 한숨을 쉬었다. “널 위해서 특별 조치를 취할 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20주년 개정판

리들이 5학년이 되어서야 새삼스레 교장에게 호그와트에 남을 수 없느냐고 (재차?) 요청한 것, 그리고 당시 교장이었던 아르만도 디펫이 “지금 상황”이 아니었다면 마치 “특별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듯 말했던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기인했을 겁니다.

이제 학기가 시작하고 막 학교에 돌아온 리들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봅시다.

  • 전쟁중. 살던 고아원 박살날지도 모름.
  • 애타게 찾던 아빠는 자길 버린 역겨운 머글.
  • 엄마 가족도 별로 제정신 아닌듯.
  • 살인을 저질렀음. 어떻게 수사망은 벗어났지만…….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이죠?

리들이 필사적으로 가장해온 가면에는 균열이 갔습니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상황이 계속됩니다. 혈통에 대한 막연한 믿음은 지난 여름에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리들에게는 자신이 위대한 마법사의 후예이고 숭고한 일을 행하는 존재라는 확신이 필요해진 겁니다. 그게 비밀의 방이 열린 이유입니다.

‘이럴수가……. 그럼 무슨 스트레스 받은 모범생의 일탈 같은 느낌으로 비밀의 방이 열린 거라고? 그건…… 너무 멍청하지 않아? 여름에 호그와트에 있게 해달라고 매달려도 모자랄 판국에 호그와트를 문닫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일탈이라는 건 원래 생각을 하고 하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리들이 생각을 전혀 안 하고 무작정 일을 쳤다는 게 디펫과의 대담에서 드러나지 않습니까? 엄청 초조해하다 해그리드에게 겨우 누명을 씌웠잖아요. 물론 그가 당초에 세운 계획에 머틀의 살인, 아마도 모든 종류의 살인이 없었겠습니다만……. 16살은 바실리스크를 통제할 수 없다.

리들의 동기를 알았으면 이제 그 바보같은 일탈이 의도하지 않은 소녀의 죽음으로 어그러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봅시다.

머틀이 죽어버린 순간, 리들은 좆됐습니다. 해리포터의 마법세계에서 죽은 자에겐 입이 있죠. 실제로 머틀은 돌아왔습니다. 정말, 정말, 정말로 운이 좋아서 머틀이 리들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바실리스크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 않는 이상(우습게도 이 천운이 실제 리들에게는 따라줍니다), 만약 머틀의 유령이라도 나타나면 리들은 그냥 아즈카반에 가야 하는 겁니다.

머틀이 죽은 순간 리들이 해야 하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머틀의 시체를 없애버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척 모든 증거를 말소한 뒤 그냥 그녀의 유령이 돌아와서 증언하지 않기만 하늘에 빌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진 않아요. 어떤 이유에서건 머틀의 죽음은 아주 빠르고 명확한 형태로 알려졌습니다. 시체가 있었겠죠 분명.

물론 머틀의 유령이 돌아와버린 시점에서 증거인멸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수 있지만 실제로 돌아온 머틀이 의미있는 증언을 전혀 못했다는 지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증거인멸은 의미가 있습니다.

리들은 왜 아무것도 안 한 걸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호그와트는 학생의 실종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안 씁니다. 물론 리들이 비밀의 방이 열렸다며 시끄럽게 사고를 쳐놔서 슬리데린의 후계자와 얽혀서 무슨 일 일어난 거 아니냐고 의심을 사겠지만 그래도 시체가 등장한 것보단 그림이 훨씬 덜 명백하다고요. 리들이 알리바이에 신경쓰는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애초에 여자화장실에 사람 있는지 체크 안 한 시점에서 드러나죠. 만약 리들이 여자화장실, 즉 살인현장으로 향하는 걸 본 증인이라도 나타나면 진짜 좆되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리들은 그냥 손 빨고 하늘이 자길 살려주기만 빈 겁니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깁니다.

  1. 리들은 너무나도 오만하고 어리석어서 자기가 잡힐 거란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예 머틀의 살인을 광고하고 다녔을 수도 있다. 괜히 머틀의 죽음이 즉각 슬리데린의 괴물에 의한 죽음으로 알려졌겠는가? 그녀의 죽음을 이용해 호크룩스를 제작한 것도 이러한, 사고를 자신의 살인으로 삼아버리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리들은 패닉에 빠졌다. 비밀의 방으로 사람들을 겁주고 다니긴 했는데 진짜 사람이 죽는 건 계획에 없었다. 애초에 겨우 살인 용의자에서 벗어난 게 최근 일인데 또 이딴 일을 벌이겠냐고. 머리가 새하얘져서 그냥 거기서 도망갔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진짜 궁금하니까 인용으로 알려주십쇼.) 전 겸손히 행간을 짚기만 할 뿐 어느 한쪽을 고르진 않으렵니다. 단지 결과가 ‘리들에겐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었음’을 공통되게 가리킨다는 것만 가리키겠습니다. 기억해두십쇼. 리들은 생각이란 걸 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자, 이제 리들은 살인을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뭐, 죽이려고 해서 죽인 건 아닌데, 리들 때문이긴 하죠. 적어도 정부는 리들이 죽였다고 생각할 테니까 살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머틀의 죽음은 리들 일가의 죽음과 거의 같은 공통점을 갖습니다. 다시 한번 써볼게요.

  1. 사전 계획 없이 저질러졌다
  2. 그 진행이 허술해 자칫했으면 잡힐 수 있었다
  3. 그럼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하지만 머틀의 건에서 리들은 전보다 좀더 위험한 선을 밟았습니다. 지난 건과 달리 완전히 천운의 천운이 중첩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우연으로 간신히 살았으니까요. 심지어 덤블도어에게 의심까지 샀습니다. 빌어먹을 11살 때 자기가 뱀이랑 대화할 수 있다고 흘렸던 그 한마디가 자기 목을 옥죌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었을걸요?

그의 살인이 갖는 일관성, 그러나 점점 옥죄어오는 아즈카반의 압박을 잘 기억하면서 졸업 후로 넘어가봅시다.


슬러그혼에게 호크룩스에 대해 물어보는 멍청한 사건(심지어 딱히 뭘 얻어낸 것도 없었음. 왜 질문한 거냐ㅋㅋㅋ)과 같은 사소한 이런저런 일상을 이겨내고 리들은 비로소 호그와트를 졸업합니다.

리들이 호그와트를 무지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그게 그리 기쁜 일인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리들이 17살이나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 그 시기 고아원들은 그만큼 나이먹은 아이들을 (주로 공장과 계약해서) 내보낸다는 것, 그래서 리들이 지금 고아원에서 여전히 살고 있을지부터 의문스럽다는 것을 고려하면, 즉 졸업하자마자 바로 직장과 숙식을 구해야만 하는 극한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적극적으로 싫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혹시 모르죠. 7년 동안 맞지도 않는 모범생 가면을 겨우 벗고 자유로워질 수 있단 거 아닙니까. 리들의 성질머리에 7년 동안 누구 안 죽이고 참고 있던 것만 해도 기적입니다.

아. 누구 이미 죽였지.

너도 예상했겠지만 볼드모트는 그때까지 치렀던 모든 시험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고 7학년이 되었다. 볼드모트 주위의 동급생들은 다들 호그와트를 떠나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결정하기 시작했지. 대부분이 반장이자 남학생 회장이자 호그와트 특별 공로상 수상자인 톰 리들이 아주 멋진 꿈을 갖고 있을 거라 기대했어. 나는 슬러그혼 교수를 포함한 몇몇 교수들이 볼드모트에게 마법 정부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고 알고 있다.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 제안하고 유용한 연줄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 하지만 볼드모트는 그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 후 교수들은 볼드모트가 보긴 앤 버크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됐지.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20주년 개정판

호그와트에서 졸업한 리들은 호그와트 어마방 면접에서 떨어지고 보진과 버크에 점원으로 취직합니다.

작내 작외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톰 리들이 왜 유용한 연줄을 죄다 씹고 엉뚱한 ‘보진과 버크(보긴 앤 버크)’에 취직했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재능 낭비”(작중 표현을 빌리자면)니까요.

덤블도어는 보진과 버크가 어둠의 마법을 다루기 때문에 리들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라 추측하죠. 여전히 설득력은 미약합니다.

하지만 리들의 그 엄청난 자의식, 세속 권력에는 의외로 아무런 관심이 없는 모습, 소위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 연기고 성질머리가 지극히 더럽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는 그의 선택을 그리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볼드모트가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걸 생각하실 수 있나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결국 리들도 똑같은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성실하고 지루한 일을 매일 하면서 평생 생글방글 착한 척하며 사는 자신은 상상도 못했고 그래서 마법부 일은 거들떠도 안 봤을 거라고,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그게 허영이란 거죠. 공무원이 견딜 수 없이 끔찍한 일인 거랑 별개로 (위에서 지적했듯) 리들은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굶어죽는 상황입니다. 당장 동기들은 다 하나씩 직장을 얻고 있고. 난 위대한 사람이 될 거라며(근데 무슨? but no idea.) 웃음 나오는 하찮은 일 따윈 안 할 거라고 자부하지만 당장 내일 먹을 빵이 급해지는 상황이죠……. 호그와트 면접에서 나이가 부족하다며 대번에 떨어진 것도 자존심을 구겨버리는 데 한몫했을 겁니다. 리들의 ‘아무 생각이 없는’ 일관성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흥미가 가는 보진과 버크에 자포자기 형태로 점원직을 얻은 게 아닐까, 저는 그리 추측합니다.

하기야 이런 세세한 심리분석까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보긴앤버크 점원이 된 건 아니다. 그렇게만 요약해두죠.

일단 점원이 되자 리들은 (놀랍게도) 성실하고 유능하게 일합니다. 잘생긴데다 서비스직 최적화 가면쓰기 능력을 갖췄고, 덤블도어가 언급은 안 했지만 아마 어둠의 마법에 조예도 깊었기 때문이겠죠.

물론, 오래 지나지 않아 그의 인내심은 헵시바 스미스에게 바닥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어째서였을까요? 은근슬쩍 자기를 더듬으려고 드는 늙은 여자에게 수시로 방문하면서 손등에 입을 맞추고 꽃을 가져다주는 수고로운 아부를 떠는 일이 질렸던 걸까요? 그 여자가 은근슬쩍 자기 모친을 모욕한 게 뭐라고 말이죠.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요…….

물론 후플푸프의 컵과 슬리데린의 로켓에 대한 탐욕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리들의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질, 자신을 죽이고 가면을 쓰는 뛰어난 능력과 별개로 속내에 어마어마한 자의식과 자존심 자부심이 들어서 있음을 감안한다면 리들이 헵시바 스미스를 죽인 건 정말로 놀랍지 않습니다.

헵시바 스미스의 살인은 명백한 계획살인이었습니다. 또한 이후에 리들은 모든 걸 정리하고 잠적해 두번 다시 톰 리들로서 나타나지 않았지요.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1. 리들이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단 것
  2. 정부의 추적을 두려워한단 것

물론 헵시바 스미스를 죽인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냥 물건을 보자마자 바로 몸이 달아서 암살해버린다고? 걍 눈 딱 감고 헵시바랑 결혼해서 암살하지?ㅋ 하지만 적어도 리들은 뒷수습을 했습니다. 자기가 지난 사건에서 빠져나간 게 순전히 운이란 걸 인식하고 있었던 겁니다.

리들은 호키라는 가짜 범인을 내세워(분명히, 비밀의 방 사건에서 배운 것) 헵시바를 죽여버리고 창립자의 유물들을 강탈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의심이 갈 것을 우려해 연락을 끊고 잠적했죠. 해리와의 회상에서 실제로 덤블도어는 리들에게 절도 혐의가 갔음을 암시하지 않습니까?

운이 세 번까지 따라주지 않으리라 리들은 생각했고, 실제로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비했기에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살인 충동과 맞서싸우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을 안 죽이는 방향으로 싸웠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사람을 죽여도 안 잡히기 위해 세상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바로 볼드모트의 탄생입니다.

물론 그가 영국을 뜬 뒤 세상을 돌아다니며 어둠의 마법을 배우고 추종자를 모으고 볼드모트로서 악명을 떨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사건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싸우는 대신 세상과 싸우기로 결정한 순간 그는 이미 볼드모트였습니다.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본격적으로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출범한 시대를 다루기에 앞서, 리들의 캐릭터를 명확히 하기 위해, 덤블도어가 제기한 의문: “그게 리들 가족을 죽인 이후의 첫 살인이었는지”(덤블도어는 머틀을 살인으로 카운트하지 않고 있습니다. 흥미롭지요.)를 잠깐 살펴보죠.

볼드모트는 또 한 번 살인을 저질렀다. 그게 리들 가족을 죽인 이후의 첫 살인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다. 이번에 그는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였어.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20주년 개정판

저도 덤블도어와 의견이 같습니다. 톰의 의식적 살인은 리들 가족과 헵시바 스미스 사이에 없었을 겁니다.

그도 그럴게, 톰이 만약 그 이전에 사람을 죽였다면 헵시바를 죽이고 모든 신분을 포기하고 잠적할 정도로 몸을 사린 게 설명이 되지 않거든요.

누구 하나 묻어버리고 뻔뻔하게 돌아다닐 수완과 자신이 있었다면 헵시바를 그렇게 멍청하게 죽이진 않았을 겁니다. ‘능숙하게’ 죽인 뒤 모든 혐의에서 벗어나 계속 보진과 버크 점원 톰 리들로 살아갔겠죠. 하지만 리들이 실제로 한 건 멍청한 암살 계획과 잠적이었습니다. 즉 헵시바를 죽인 건 리들이 정말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졸업 전에 막연히 꿈꿨던 것과 달리 자기는 별 볼 일 없는 녹턴앨리 가게 점원이 되었죠. 업무도 좆같습니다. 늙은 여자에게 아부나 떨어야 합니다. 잘 하고 있긴 한데…… 영원히 계속 해야 해? 그러던 와중 호그와트의 유물이 나타났고 리들의 눈이 돌아버린 거죠.

완전히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있었다고 가정한다면(그의 엄청난 허영심과 자의식 그리고 그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아요) 헵시바의 살인은 ‘고작 물건 때문에’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기보단 결국 일어날 일이 터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보진에게 사표를 내던지고 집으로 돌아가 “좆 까, 난 볼드모트 경이야. 씨발 더 못해먹겠다고”를 외치면서 짐을 싸는 리들……. 그림이 그려지네요.

일단 리들이 생각을 안 하는 인간이라고 가정하면 그를 둘러싼 많은 수수께끼가 풀린다니까요, 진짜로.


여기까지가 리들의 종말이고 볼드모트의 시작이 되겠습니다. 조금 딴소리를 하고 싶은데요, 팬덤의 많은 사람들은 리들과 볼드모트를 분리합니다. 원작에서 볼드모트를 리들이라고 부르는 건 그의 연속성을 환기시키는 의미였지만 팬덤에서의 “리들”은 볼드모트와 리들을 단절시키는 의미가 되었죠. 리들과 볼드모트가 다른 성격이다. 호크룩스 만들면서 지능 떨어졌다. 그런 이야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앞선 타래로 길게 기술했듯 리들-볼드모트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일관되게 계속 생각이 없고 어리석습니다. 오히려 볼드모트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성장하고 있어서 조금 대견스러울 지경이랄까요. 봐요, 호그와트 졸업하니까 그래도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가는 지성을 보여주잖아요. 얼마나 감동스러운 성장인가.

리들이 내내 써왔던 ‘가면’을 어째서 볼드모트가 되니 쓰지 않느냐. 간단합니다. 볼드모트가 되어서 못하게 된 게 아니라 더는 못해먹겠어서 볼드모트가 된 겁니다.

어린 톰은 자기 좋을 대로 살았습니다. 착하게 살아봤자 돌아오는 보답이 없으니까요. 호그와트 입학장을 받은 리들은 위대한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가면을 씁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해 ‘완벽한 모범생’이 됩니다. 중간에 스트레스 받아서 살인 사건에 연관되는 등의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찌저찌 넘기고 졸업해서 직업도 얻었습니다.

이제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총명한 청년 톰 리들은 보진과 버크에서 어둠의 마법 물품 세일즈맨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장난해? 좆같아서 살인과 절도를 저지르고 죄다 때려치운 뒤 나라를 떴습니다. 그렇게 리들은 볼드모트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단순하고 일관된 인간으로 보이지 않나요? 이것은 이 타래의 전제이고 증명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논제이기도 합니다. 볼드모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확히 해야만 했던 부분인데, 여기까지 다다르기까지 쌓아 온 긴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졌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마법사, 1,000여 건이 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끝에 15년 전에 불가사의하게 자취를 감췄다는 마법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20주년 개정판

매주 더 많은 사망과 실종과 고문에 대한 소식이 들려 오고…… 마법 정부는 혼란에 빠져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이 모든 걸 머글들에게 감추는 데 급급하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글들도 죽어 가고 있어. 사방에 공포가 가득했다……. 공황……. 혼란……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주년 개정판

“안토닌 돌로호프입니다.“ 그가 말했다. “저, 저는 그자가 수많은 머글과 어, 어둠의 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고문하는 걸 봤습니다.”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주년 개정판

“트래버스가 있습니다. 트래버스는 매키넌 가족을 몰살하는 데 가담했습니다! 물키베르는, 그자는 임페리우스 저주의 전문가로, 무수한 사람을 조종해서 억지로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게 만들었습니다! 룩우드는 첩자였고요. 다른 곳도 아닌 정부에 있으면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주년 개정판

자, 이제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있습니다. 1000건이 넘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 머글들과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저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죽음을 먹는 자들. 요약: 테러리스트.

사실 죽음을 먹는 자들에 대해 할 이야기는 맨-위에서 거의 다 했습니다. 무언가 제대로 된 요구사항을 가지고 뭉친 집단이 아니라, 그냥 좋을 대로 폭력을 휘두르기 위해, 볼드모트라는 1인의 카리스마 아래 모인 폭력배 집단이다 이거죠.

이들은 정말 웃기는 컬트 집단입니다. 볼드모트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요구한 것들을 보십쇼.

  • 볼드모트를 주인님(마이 로드 OR 마스터)이라고 부름
  • 죽먹자들은 자신을 (볼드모트의) 종(서번트)라고 칭함
  • 볼드모트의 로브 밑자락에 키스함
  • 탈퇴불가. 절대 충성해야함.

볼드모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망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쓴 겁니다. 범죄자 집단에게 칭송받는 게 그리 좋냐 싶긴 하지만, 그의 타고난 살인 충동과 세상을 조화시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인을 숭배하는 자기 세력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ㅋㅋ

죽음을 먹는 자들이 마땅한 목적의식 없이 그냥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하고 폭력을 발산할 뿐인 집단이라는 이론은 많은 걸 설명합니다. 퀴디치 월드컵에서 전직 죽먹자들이 (아마도 높은 확률로 술 쳐마시고) 훌리건짓을 왜 했게요. 그게 원래 하던 짓이니까 하던 거죠.

볼드모트 몰락 이전에 활동했던, 이름이 나온 죽음을 먹는 자들의 나이가 대체로 매우 젊다는 것은, 오히려 젊은 혈기 때문에 갱에서 날뛰었던 거라고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바크주, 스네이프, 레귤러스 블랙, 레스트랭 부부, 루시우스 말포이 기타등등. 다 십대에서 이십대의 어린 새끼들.

그는 정부에서 빠르게 승진했고, 볼드모트의 추종자들에게 매우 가혹한 조치를 내렸어. 오러들에게 새로운 권한이 주어졌지. 예컨대, 체포하기보다는 죽일 수 있는 권한이라든가. 게다가 재판도 없이 곧장 디멘터들에게 보내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크라우치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고, 혐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저주들을 쓰도록 승인해 주었지. 난 그자가 어둠의 편에 선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무자비하고 잔인해졌다고 본다. 그래, 크라우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꽤 많은 사람이 그자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자가 마법 정부 총리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떠들어 대는 마법사도 아주 많았단다. 볼드모트가 사라졌을 때, 크라우치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건 그저 시간문제처럼 보였지.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주년 개정판

사실,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돌아버린 팬픽션들의 영향으로 팬덤에서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무슨 사상을 가진 정치 집단이고 지지하고 말고가 갈릴 수 있다는 듯 이야기되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작내에서 죽먹자는 그냥 범죄자 취급이었어요. 크라우치가 지지받았던 게 이를 뒷받침하죠.

이 장면은 동시에 볼드모트 몰락 이전에는 마법부가 볼드모트 & 죽음을 먹는 자들과 그래도 잘 싸우고 있었단 걸 시사합니다. 즉각처형에 무재판까지 완전히 개판이 되긴 했지만 죽먹자들은 잡히면 감옥에 보내지는 테러리스트따리였어요. 사람들이 간혹 몰락 이전을 두고 볼드모트의 전성기라고들 하지만, 사실 해리 포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시기의 볼드모트의 전망은 그리 밝다고만은 하기 힘들었던 겁니다.

비록 점점 “강해지고 있었”(1권 마법사의 돌)고 세력을 점점 키우고 있었지만, 그만큼 엄청난 반감을 샀고 열받은 정부는 보이는 족족 재판도 안하고 감옥에 쳐넣거나 아예 즉시사살하기 시작했습니다. 볼드모트의 이미지는 그가 몰락했을 때 어떠한 (공적인) 이견의 여지 없이 모두가 기뻐하며 축배를 들었을 정도로 최악이었습니다. 정말로 아기 해리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볼드모트가 마법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까요……? ‘아니’라 할 근거는 없지만 사실 ‘그래’라 할 근거도 없는 거죠. ‘살아남은 아이’ 해리가 볼드모트를 처치했다며 칭송받았단 게 곧 볼드모트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영웅이 아닌) 시대정신에 따라 몰락할 여지가 없었단 뜻은 아니란 거예요.

그러니까 솔직히 볼드모트는……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힘을 키우고, 세력을 불리고, 부하들에게 충성 맹세를 받고, 자신의 영생을 공고히 하고, 심심하면 머글이나 반대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볼드모트의 삶. 동시에 정부기관과 덤블도어에게 집요하게 추적당하는 중이고 국제적으로도 공적으로 찍혔고 정부 전복은 아직 머나먼 꿈만 같은 볼드모트의 삶.

이 와중 엉뚱하게 아기 해리 하나 죽이지 못하고 몰락해 세상으로부터 14년간 자취를 감추게 된 건 오히려 볼드모트에게는 행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진짜로. 볼드모트는 한번 죽었다 살아나면서 죽음을 먹는 자 조직 경영에서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고요.

마법부 장관이 퍼지였기 때문에 은밀한 부활 계획이 완전히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활은 헛소문 취급 받아 은밀히 세력을 불릴 수 있었습니다. 의심으로 자신들을 지켰죠. 예언 찾는다고 모습을 들키는 뻘짓 오브 뻘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과 3년 만에 정부를 전복했습니다.

조직이 한번 박살났음에도 불구하고 재건했을 때 죽먹자들이 더 승승장구했던 이유는 분명 애새끼들이었던 조직원들이 그동안 나이 먹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으면서 연륜과 머리가 생겨서였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추측합니다. 그렇게 보면 볼드모트가 아기 해리에게 쓰러지지 않았을 때 정말 정부를 원작처럼 먹을 수 있었을지 다소 의심스러워지죠.

여기까지 볼드모트의 시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가 처한 상황만을 나열해보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그간 무슨 생각으로 움직였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지요. 볼드모트는 무슨 생각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을 만들었던 걸까요? 불안정한 폭력배 집단이라는 결과를 고정한 채로 그간 무슨 일이 있었을지 그려봅시다.

헵시바 스미스를 죽이고 리들, 아니 볼드모트는 자신의 범죄적 성향과 타협하기를 관뒀습니다. 이리 된 바 차라리 최고의 어둠의 마법사가 되리라 결심합니다. 선과 악은 없고 오직 힘만이 있을 뿐. 최강의 힘을 손에 넣어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두겠다. 근사한 포부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더 많은 어둠의 마법을 배우고, 옛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 그럴듯한 연설을 하며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이 ‘무리’로 뭔가를 해내겠다는 듯한, 그럴듯하지만 알멩이라곤 전혀 없는 계획을 모두의 앞에서 세웁니다. 뭐 가장 순수한 마법사만 남을 때까지 세상을 갈아엎겠다든지. 사악한 머글태생들을 몰아낸다든지. 머글들로부터 숨어살지 않고 앞으로 나가자든지. 어둠의 생물 권리를 쟁취해내겠다든지.

볼드모트는 ‘리들’ 시절 했던 것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읽어내고, 가면을 쓰고, 그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는 것. 볼드모트가 순수혈통 우월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늑대인간들에게 연락을 안 했겠죠. 그냥 추종자를 늘리고 힘을 키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요?

쪽수가 모이니 에너지가 고이기 시작하고 자기 좋을 대로 폭주하기 시작하죠. 근처에 보이는 머글들을 공격한다. 말리러 나온 마법부 직원들을 공격한다. 퀴디치 경기가 끝나자 폭동을 일으킨다. 예언자일보 독자칼럼이 마음에 안 든다고 꼬투리를 잡아 집에서 잠자던 사람을 습격한다. 하지만 볼드모트에겐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공포가 늘어나잖아요. 모두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이름을, 볼드모트의 이름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을 더 모으고, 어둠의 표식으로 충성을 강제하고, 살인과 고문을 주도하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볼드모트는, 덤블도어에게 어마방 면접을 보러 갈 때까지만 해도 좀 불온한 집단 정도였던 죽음을 먹는 자들을 지극히 극악무도하고 가입해 있다는 그 자체로 사살되어 마땅한 테러리스트 단체로 키워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죠. 했던 말의 반복이기도 하고.)

이쯤 되니까 피곤해서 계속 횡설수설을 하는데(솔직히 걍 없애버려도 되는 트윗이 잔뜩임) 하고 싶은 말은…… 볼드모트가 무슨 거대한 계획을 갖고 움직인 게 아니었을 거란 거예요. 생각없이 세력을 키우고 좋을 대로 폭력과 공포를 휘두른 결과 어느새 모두의 공적이 되어있었던 거겠죠.

그렇게 만인의 공적 최악의 악당 두목이 되었던 볼드모트는 배신자 피터 페티그루의 정보를 듣고 아기 해리 포터를 죽이러 갑니다. 별 생각도 없었겠죠. 예언이 만든 운명적인 적수라고? 그러면 죽인다!

그 이후의 일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 제가 요구받은 그림은 여기까지니 더 할 필요 없겠습니다.

끝. 긴 이야기였습니다. 볼드모트 파트부터 졸려지기 시작한 데다가 방향을 잃어서 엄청나게 횡설수설한 개소리인데 자고 일어나면 지우고 다시 쓸지도 모름……. 이 부분이 미흡하다거나 뭔 소리 하려고 꺼낸 건지 모르겠다든지 왜 이 얘기는 안 했는지 달아주시면 보강에 쓸지도 몰라요


P.S. 볼드모트의 학창시절에서 리들의 리틀 행글턴에서의 모험이 비밀의 방 사건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타임라인을 채택한 이유에 대한 간략한 해설

볼드모트의 학창시절 타임라인에 대한 혼란은…… 역시 롤링의 모호한 서술 때문이겠지? 나도 첨엔 비밀의 방 → 리틀 행글턴 순서인 줄 알아서…….

“알겠어?” 그가 속삭였다. “볼드모트는 내가 호그와트에 있을 때 이미 사용하던 이름이었어. 물론 가장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만 말이야. 내가 더러운 머글 아버지의 이름을 영원히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어머니에게서 다름 아닌 살라자르 슬리데린의 피를 물려받은 내가? 이 내가, 자기 아내가 마법사였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버린 그 역겹고 천한 머글의 이름을 계속 쓸 거라고? 아니지, 해리. 난 나를 위해 새로운 이름을 마련했어.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됐을 때 만방의 마법사들이 두려워서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이름을 말이야!”

— J. K. 롤링,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20주년 개정판

근데 그러면 비밀의 방 시점에서 자기 아빠에 대한 비화를 알고 있는 게 설명이 안 됨. 논리적으로 리틀 행글턴 → 비밀의 방이어야 맞음

그리고 롤링은 숫자에 정말 약하고 “50년 전에 어쩌고”와 같은 서술을 문자 그대로 51년이나 49년이 아닌 50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난센스. 작중에서 드러난 연도에 대한 단서와 논리적 단서가 모순된다면 전자를 무시하고 후자를 취하는 게 해리포터 독해에서는 옳음…….

보면 Harry Potter Lexicon에서는 나처럼 리틀 행글턴 → 비밀의 방으로 분류하고 있고 Harry Potter Wiki 에서는 비밀의 방 → 리틀 행글턴으로 분류하고 있음

둘다(특히 후자) 말썽 있는 사이트지만 원칙적으로는 증거주의를 채택하는 데인데 두 곳이 모순되는 서술을 취한다면 걍…… 작내 서술만 취해도 해석이 갈릴 수 있단 거죠. 걍 JKR이 연도 서술을 모호하게 한 거. 그럼 논리를 따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비밀의 방 → 리틀 행글턴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얘가 아빠 얘기를 모핀에게 처음 들을 수밖에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