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보아구렁이
1화. 보아구렁이는 죽었다
“보아구렁이, 죽었다는데.” 두들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서 대뜸 던지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라고. 네 뱀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아, 불쌍해라.” 그렇게 말하며 두들리는 지역 신문의 한 귀퉁이를 해리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우리에서 탈출한 보아구렁이, 끝내 사망
지난 23일 서리의 체싱턴 동물원에서 대형 뱀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뱀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브라질산 보아구렁이로, 오후 2시경 우리를 탈출해 원내를 배회했다. 약 2시간의 추적 끝에 뱀은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뱀은 놀란 방문객들의 발길질과 그들이 던진 물건으로 인해 크게 다쳤고, 끝내 어제 오후 5시경에 죽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해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신문에 실린 뱀이 우리를 빠져나가게 만든 원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해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우리에서 잠자던 보아구렁이가 자신을 향해 눈을 찡긋했던 것을 기억했다. 또 자신은 한 번도 브라질에 가 본 적 없다고, 동물원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했다. 아니, 말했던가? 정말 그랬는지, 단지 그렇게 믿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해리는 처음 만난 신비로운 동물 친구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녀석에게는 유리창이나 두드려 대는 멍청한 인간들에게 종일 시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해리는 우리의 유리창을 없애 버렸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해리가 그렇게 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해리는 자신이 탈출시켜 준 보아구렁이가 브라질에 갔으리라고 믿었다. 멀어지는 뱀에게서 마치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것만 같았다…….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우리에서 나간다고 뱀이 브라질까지 갈 수 있을 리 없다. 만에 하나 보아구렁이를 탈출시킨 모종의 ‘마법’이 녀석이 브라질에 도착하기까지 가호했다 한들, 동물원에서 태어난 뱀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그 뱀은 해리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해리는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졌다. 뱀이 죽은 게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실망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신문에서 시선을 떼자 두들리 녀석은 진작 해리의 화가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있었다. 해리는 공연히 짜증을 담아 방문을 째려봤다. 매서운 시선이 닿자 방문이 저절로 쾅 닫혔다. 창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 * *
해리는 마법사였다.
혹은 초능력자. 아니면 외계인. 뭐든 간에. 해리는 정확한 명칭을 몰랐다. 다만 어쩐지 ‘마법사’가 ‘올바른’ 것만 같은 이유 모를 직감에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리는 자신을 마법사라고 불렀다.
해리는 평범한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이상한 일들을 아주 많이 할 수 있었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일쯤이야 우스웠다. 해리는 잠깐이나마 하늘을 훌쩍 날아 지붕 위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두들리에게서 물려받은 물 빠진 스웨터를 파란색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해리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었다. 해리를 몇 시간이고 쫓아다니며 물어뜯으려고 했던 마지 ‘고모’의 불도그 리퍼는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해리를 수시로 비웃고 때렸던 같은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어떤 날을 기점으로 이유를 밝히기를 거부하며 등교를 거부하다 전학을 갔다. 그리고 페투니아 이모가 공동 육아실을 네 살이 된 두들리의 방으로 바꾸고 그 대신 해리를 계단 밑 벽장에 처박아 버리려고 했을 때는……. 글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후로 벽장 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런 남다른 재주가 있는 해리였지만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딱히 해리가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꽤 영리한 아이였고, 그 자신도 그것을 ‘알았다’. 단지, 오히려 그랬기에 결국 제 손에 남는 건 말썽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위 끝에 간신히 얻어낸 방은 해리의 것이 아닌 잡동사니로 가득 차버렸다. 벽장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집에는 해리의 것보다도 넓은 빈방이 하나 있었지만 그 방은 손님방으로 쓰여야 하므로 (손님은 보통 마지였다) 깨끗하게 비워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애견을 잃은 마지는 해리에 대한 증오를 더욱 키워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수시로 우겨댔다. 짖는 개는 더 이상 없었지만 마지의 집요한 괴롭힘은 더욱 심해져 해리를 정말로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넣곤 했다.
초등학교의 일도 그랬다. 끝내 아이들이 해리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고 얻은 것은 고독이란 사실 육체적인 고통이라는 깨달음뿐이었다. 일주일 내내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은 뒤에 알게 된 사실이다. 찬장의 감기약을 훔쳐 먹으면 한결 나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떤 동화책 속 옷장에는 마법의 나라가 들어 있었지만 해리의 옷장에는 빌어먹을 파란 스웨터가 들어 있었다. 여전히 보기 싫게 늘어지고 보풀투성이인 두들리의 헌 스웨터가.
그럼에도 해리는 자신의 ‘마법’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무정하고도 잔혹했고 의지할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는 해리는 너무나 연약했기에…….
해리는 그런 자신을 별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나쁜 아이니까.
* * *
보아구렁이 사건으로부터 한 달가량이 지났다.
‘서리, 리틀 위닝, 프리벳가 4번지, 가장 작은 방, H. 포터 군 앞’
봉랍으로 봉인된 양피지 봉투에는 우표가 없었다. 에메랄드빛 잉크로 적힌 주소는 아주 정확하게 해리를 지명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돌아가며 해리는 편지를 살펴봤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
(멀린 1등급 훈장, 수석 마법사, 최고 위원장, 국제 마법사 연맹 회장)포터 군에게
귀하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 드립니다. 필요한 교과서 및 준비물 목록을 동봉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학기는 9월 1일에 시작합니다. 늦어도 7월 31일까지 부엉이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교감 미네르바 맥고나걸 드림
“이게 뭐냐…….”
아침 먹다 말고 편지 가지러 갔다 오면서 가볍게 볼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마법학교? 해리는 늘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있는지, 이 ‘마법’이 정확히 어디서 온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가끔가다 해리는,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는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일에 휘말리고는 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어린 ‘동족’에게 아는 척을 했던 것이 아닌지 막연히 추측해 왔다. 넓은 세상에서 자신 혼자만이 별종이 아니라는 생각은 외톨이 마법사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이모와 이모부가 그의 기묘한 재주에 관해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기 때문에, 해리는 적어도 이 뭔지 모를 것에 대한 무언가 정립된 것이 존재하기는 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해서 자세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소위 비정상이란 것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자랑인 양반들이 그렇게 뭘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본래 이러한 종류의 진실은 때가 되면 어련히 알게 되기 마련인 법이므로 여태껏 해리는 굳이 화를 사면서까지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이 그때인 모양이었다.
“마법학교란 곳에서 편지가 왔는데요.”
식탁에 돌아온 해리가 가져온 우편물을 툭 던지며 말을 꺼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해리에게서 편지를 홱 빼앗아 들고는 페투니아 이모와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 아직 다 안 읽었는데 다 보셨으면 돌려주세요.” 해리가 말했다. 옆에서 두들리는 해리의 편지를 훔쳐보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기웃대고 있었다.
“나가!” 버논 이모부가 호통을 치며 해리의 목덜미로 손을 홱 뻗었다.
“어허.” 해리는 날랜 몸짓으로 이모부의 손아귀를 피했다. “밥은 마저 먹어야죠.”
해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천천히 식사나 하면서 중요한 얘기를 좀 해 봅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모랑 이모부가 저한테 말 안 해 줬던 것들에 대해서요. 마법이라든지, 마법학교라든지, 뭐 그런 것들 말이죠.”
버논 이모부의 뒤에서 페투니아 이모가 쥐어짜이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심기가 불편해진 듯한 아내의 눈치를 살짝 보고는,
“마법은…… 없어! 꿈도 못 꾼다. 이런 헛소리 따위!”라고 말하며 해리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해리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자 바닥으로 떨어지던 편지 조각들이 해리의 손바닥 위로 나풀나풀 날아올라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거 다 못 읽었다니까.”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두들리가 헉 소리를 냈다. 노골적인 물리법칙 위반에 버논 이모부는 거의 폭발할 것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어떻게…… 감히…… 내 앞에서…… 그, 그, ‘그 짓’을!”
터지기 직전의 이모부를 보며 해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말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보쇼,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어쨌든 언젠가는 해야 할 얘기 아니요? ‘마법은 없어’?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런’ 걸 할 때마다 벌을 줬던 건 전부 뭐였는데? 댁들이 뭔가 알고 있단 건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해리는 손가락을 내밀어 보란 듯이 까딱였다. 해리의 손짓을 따라 버논의 넥타이가 허공에서 절로 풀리고는, 다시금 주인의 목에 멋들어지게 매였다.
“아니면 정말로 ‘벽장 사건’의 재림을 보고 싶어?”
일련의 과정에 내포된 암시에 버논은 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창백하게 질렸다. 물론 진짜로 목을 조를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면 조금 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후회가 들던 차였다.
쾅!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진동이 따라왔다. 소리의 출처는 계단 밑 벽장, 단단히 잠긴 문의 안쪽이었다. 그들은 오래된 공포를 떠올렸다. 벽장에 봉인되었던……. 페투니아는 두들리를 끌어안았다.
“그, 그럴 수 있을 리 없어, 아무리 너라도 그건 다시 못 해!” 부정의 말과 달리 버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럼 시험해 보시지.” 해리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사실 버논이 맞았다. 방금 전의 것은 해리가 아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전혀 몰랐다. 애초에 당시의 ‘벽장 사건’부터 해리의 자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는데 나서서 불리한 증언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훌륭한 지원이었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페투니아가 흐느끼며 모두 털어놓겠다고 항복했던 것이다.
그날 그들은 많은 대화를 했다.
작가의 말
‘동물원의 보아구렁이’는 트위터에서 이야기했던 많은 소재가 총집합된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개가 어디선가 본 것 같다면, 네, 자기표절이 맞습니다.
변명하자면 몇 년째 구상해온 이야기입니다. 그 조각 중 쓸만한 것을 참지 못하고 변용해서 써버린 것이 잔뜩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선후관계가 정반대인 것이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일단 대략적인 구상은 완결까지 끝난 상태입니다.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힘 닿는 데까지 연재해 보겠습니다.
발행
Charming Princess
익명의 댓글입니다 작가님 재연제 계획 있어요?2023년 5월 6일 23:5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