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보아구렁이

2화. 당신이 마법사군요

“에휴.”

7월 31일, 한여름의 아침, 해리는 죽상을 하고는 정원의 잔디밭에 드러누워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해리는 불과 일주일 전에 그 자신과 부모님을 둘러싼 진실, 그리고 이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마법사들이 사는 마법세계가 존재했고 그곳에 해리 같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있다고 했다. 솔직히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해리가 넓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돌연변이인 것보다는 훨씬 이치에 맞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부모님이 해리와 같은 마법사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다. 기실 해리는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해리가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고 그를 맡아 준 이모와 이모부는 그때껏 해리에게 부모님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부모님과의 연결고리가 생긴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하지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게 아니라 사실 사악한 연쇄살인마 흑마법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것, 그런데 일가족을 참살한 그 살인마가 갓난아기였던 해리 앞에서 어디론가 모습을 감춰서 해리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서 끝나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실종된 살인마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어서 살아남은 해리와 페투니아 이모, 그리고 그 가족이 노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의 말에 따르면 덤블도어라는 마법사(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으로, 해리의 편지에도 나와 있는 인물이다)가 신변을 보호하는 마법을 걸어 주어서 프리벳가 4번지, 정확히는 해리와 이모가 사는 집이 일종의 안전가옥 역할을 한다고는 했다. 하지만 해리는 그 ‘안전’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마법이란 것이 진정 거주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면 마지의 빌어먹을 불도그는 뭐였단 말인가? ‘리퍼 사건’은 문자 그대로 집 앞마당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해리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이유는 감당하기 벅찬 진실 탓이 아니었다. 그것은 호그와트란 곳의 멍청한 행정 처리 때문이었다.

그래, 행정이다. 도대체 어떤 세상이 열한 살짜리(오늘부로) 어린아이가 무능한 행정을 욕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 때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세상은 무정하고 잔혹하니까.

‘부엉이가 뭔데. 망할 자식들아.’


* * *

상황은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혼란스러운 제반 설명을 끝내고 그들은 해리가 호그와트에 가느냐 마느냐로 한창 논쟁 중이었다.

“몇 번이고 분명히 밝혔다.” 버논이 말했다. “우린 절대 그런 데 널 보내지 않아. 이건 다 페투니아하고 오래전부터 결정한 거다.”

“그러니까 그걸 왜 이모하고 이모부가 정하냐 이거죠.” 해리가 대들었다. “내 인생인데.”

“혼자서 어디 잘해 보라지! 어쨌든 우린 그런 멍청한 학교에 한 푼도 내주지 않을 거다!” (해리의 부모님이 해리 앞으로 재산을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안건이었다.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그들은 아주 젊은 부부였고 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으니까.)

“그건 아마…….” 해리가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 “대안이……, 있을 거예요. 장학금이라든지.”

“하! 장학금은 가난한 집 애들을 위한 거고! 중요한 건 보호자가 동의를 안 한다는 거지!”

“나는 댁들이 보호자인 거에 동의한 적이 없네요!”

해리와 버논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차였다.

“네 엄마도 똑같았어.”

갑자기, 조용히 있던 페투니아가 입을 열었다. 자리의 일동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 날 네 엄마는 이런 편지를 받았고, 그, 그쪽 세상으로 가버렸지. 그러고는, 죽어 버렸어. 꼭 자기처럼…… 비정상적인…… 괴물들이랑 어울리니까 그렇게 된 거야! 자업자득이지! 너도 그, 그렇게 되고 싶어?”

순간 해리는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고 반사적으로 소리 지를 뻔했다. 하지만 문득, 비틀린 형태로나마 페투니아가 어머니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페투니아는 어머니의 언니였던 것이다.

해리의 어머니,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에 대해서 드물게 적선하듯 해주는 말이라곤 헐뜯는 욕밖에 없었던 이 사악한 여자도 동생의 죽음에는 원한을 품는다는 생경한 사실에, 해리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동시에 마법학교의 존재에 흥분해 무작정 가겠다고만 우겼던 자기 자신에게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자, 페투니아 이모,” 해리의 목소리는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하지만 이모, 저는 이 세상을 알고 싶어요. 제 부모님이 살아온 세상을, 저를 부르는 세상을요. 계속 이곳에 있어봤자 제게 미래는 없어요. 그냥, 아시잖아요, 전…….”

사람들하고 어울리질 못하죠. ‘비정상’이니까. 해리는 말을 삼켰다.

“그러니까 저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어차피 이모가 설명한 대로 우리가 이미 표적이 됐다면 그들을 피하든 말든 소용이 없을 거예요. 그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자신을 지킬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다면…….” 해리가 음산하게 말했다. “복수할 수도 있겠죠.”

해리는 자신의 이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두 혈육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해리는, 페투니아의 눈동자에서 지금껏 본 적 없던 어떠한 불꽃이 튀기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무튼 안 돼.” 페투니아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허락 못 해.”

‘쩝. 실패했나.’

버논이 고개를 묻어 버린 아내를 달래려고 거북한 소리를 쏟아댔다. 얼핏 가부장과 가정주부의 전형인 버논과 페투니아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착각하기 쉽지만, 해리는 이 집의 실세가 페투니아임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도 같았는데……. 애가 탔다.

“그런데 애초에 이 호그와트란 곳에 갈 방법이 있긴 해?”

갑자기 끼어든 것은 두들리였다. 그때까지 두들리는 해리의 입학통지서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두들리, 어른들 말하는 데 끼어들지 마라. 방에나 가 있어.” 해리가 말했다.

“너도 애잖아.”

“하지만 내 일이잖아.”

“그리고 가족회의잖아. 나는 원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 그렇게 대꾸하고는, 두들리는 해리의 편지를 팔랑이며 내밀어 보였다. “그냥, 보라고. 입학하려면 부엉이를 보내라고 적혀 있잖아. 이게 무슨 말이긴 해?”

늦어도 7월 31일까지 부엉이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게?’

워낙에 혼란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기에 그만 잊어버렸지만, 확실히 이것은 문제였다. 허락을 받고 자시고 애초에 학교에 연락을 못 하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모?” 해리가 조심스럽게 페투니아를 불렀다.

“난…… 몰라!”

“유감이네요. 저도 웬만하면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해리가 찬장으로 눈을 슬쩍 흘기자 페투니아의 가장 아끼는 접시가 달각달각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몰라!” 페투니아가 비명을 빽 질렀다. “그때는 사람이 편지를 가지고 왔었어! 우리 집은 마법사 가족이 아니랍시고, 찾아와서 말도 안 되는 걸 보여주고는 어머니 아버지 혼을 온통 쏙 빼놨다고! 설명 같은 건 다 그쪽에서 했었단 말이야!”

“그럼 왜 이번에는…….”

깨달음이 번개처럼 그들의 뇌리를 스쳤다.

이번에는…… 아이의 부모님이 마법사였으니까?

“정말, 정말 유감이구나.” 버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서는 희열이 보기 싫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대단하신 마법사들이래도 소위 행정이란 것을 처리하는 놈들은 무능한 모양이야. 언제나 무언가 멍청한 실수를 해서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지. 마법학교에 꼭 가게 해주고 싶었는데 저어엉말 안 됐어, 으응? 왜냐하면 우리는 부엉이를 보낼 줄 모르니까. 헤 헤 헤!”

“말도, 말도 안 돼. 분명 나중에 사람이 찾아올 거야. 분명 실수를 알아차릴 거라고…….” 충격과 공포에 빠진 해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면 얘기는 끝났군. 늦었으니까 우린 잠이나 자러 가련다. 가자, 두들리.”

얄미운 친척들은 일제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해리만이 혼자 남았다.


* * *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안내된 입학 원서의 마감일이 되도록 호그와트에서는 어떠한 서신도 사람도 없었다.

그간 해리가 그저 기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페투니아에게서 ‘부엉이’에 대해 뭐라도 캐 보려고 애를 썼다. 물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아는 게 정말로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건진 것은 마법사들은 다 ‘부엉이’를 한 마리씩 기른다는 것과 어머니도 ‘부엉이’를 길렀다는 사소한 정보 따위였다.

미친 척하고 두들리의 돈을 훔쳐 애완동물 가게를 찾아가 볼까 싶었지만, 거기서 부엉이를 팔 것 같지도 않았거니와 그 전에 마법사들이 기르는 ‘부엉이’가 평범한 부엉이인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해리가 마법학교에 가기엔 그른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결코 마법세계에 가지 못할 것이다. 숨 막히는 리틀 위닝에서 살다 죽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부려 온 약간의 재주가 어디로 가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세상에는 진짜 마법사가 있었고, 해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법학교의 직원들이 마법사의 아이는 당연히 부엉이를 보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냉담한 머저리들이었으니까.

십 년 후 이맘때쯤, 고아 소년의 입학 허가서에 어떤 특별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마법-행정실의 마법사-직원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어른이 된 그는 ‘그러고 보면 대체 부엉이는 뭐였던 걸까’를 상념으로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마땅히 예상해야 했을 일이었다. 해리의 인생은 언제고 잘 풀리는 법이 없었으니까. 사악한 친척들에게 시달리던 특별한 고아 소년이 신비로운 마법의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고 새 출발을 한다니? 그런 건 동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해리의 동화란 자신을 찾고자 우리를 떠났다가 브라질은 구경도 못 하고 무정한 인간들에게 밟혀 죽은 보아구렁이였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이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놀랍도록 순진한 법이어서, 소용없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고 또 으레 실망하게 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오늘은 해리의 생일이기까지 했다. 생일이 끝나는 순간 결정되는 좌절이 제게 주어질 유일한 생일 선물이라는 사실은 해리를 지극히 우울하게 만들었다.

해리는 잔디밭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할 만큼 했다. 해리는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순진한 어리석음을 때려치우기로 했다. 막 현관을 향해 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허공에서 불꽃이 나타났다.

불꽃은 이내 평범한 사람의 두 배는 될 거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거인의 어깨에 앉은 아름다운 붉은 새는 다시 불꽃으로 화해 사라졌다.

어쩌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동화를 믿어보자고, 해리는 생각했다.

“당신이 마법사군요(You’re a wizard)!”

댓글

  • k

    저 오래 기다려왔어요 이제 로판정치순혈귀족권력싸움 없는 슬리데린 2차 창작 볼 수 있는 거에요????? 짱 좋아 소재도 좋아 2화 떴지만 글도 벌써 재미있어 이런 냉소적인 문체...서술자가 11살 꼬꼬마라는 점이 절 슬프게 하지만 그거야 원작도 그렇고 하여간 아 신나서 이하 생략
    
    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달려구 했었는데!
    • 주유월

      대망의 첫 댓글 반가워요! (그리고 치명적인 댓글 버그 빨리 제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프롤로그밖에 없는데도 재밌게 봐주셔서 기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Charming Princess

    넌 마법사야. - 당신이 마법사군요! 이걸 이렇게 재해석하시다니 그저감탄.
    
    여기 해리는 순한맛 톰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물을 결코 일어날 리 없는 방식으로 죽임, 같이 사는 아이와 심지어 어른마저도 '그'를 두려워함. 물론 해리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방어지만요. 마치 예전 유월님의 트윗 속 천재 흑마법사 해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에요. 
    
    PS 1: 슬리데린 정치가 없다는 건 그 나잇대스럽게 짜증나는 말포이를 볼 수 있다는 거겠죠? 무척기대.
    PS 2: 사악하고 짜증나는 더즐리 가족 묘사가 원작의 그것
    PS 3: 혹시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 보셨나요 묘한 데자뷰
    PS 4: 300화 연재기원
    • 주유월

      긴 코멘트 아주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You’re a wiazard는 회심의 일격이 맞아요! 교차점 제대로 짚어주셔서 기쁘고 톰의 그림자가 서린 해리가 의도대로 그려졌다니 뿌듯하네요.
      
      P.S. 이 작품에서 말포이는 정말로 취급이 안 좋을 예정입니다. 😉
      
      P.S.2.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HPMOR)은 한때 제 최애픽이었습니다. 리스펙트.
  • 익명

    헐 너무 재밌어요... 글구 문장이 되게 읽기 좋아요!! 너무 흥미진진합니다 다음편...다음편...!!! 잘 읽고 가요!!
    • 주유월

      작문 경험이 많지 않은 햇병아리 작가에게 문장 칭찬만큼 기분 좋은 말도 없지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기뻐요! 다음 편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