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보아구렁이

3화. 첫인상

“해리의 답장이 아직 오지 않았네.” 문득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분명히 편지가 전달되었다는 신호는 왔는데 말이야.”

“무슨 해리요.” 세베루스가 무신경하게 대꾸했다.

“그야 당연히, 해리 포터지!”

해리 포터! 그 이름에 세베루스는 묻어 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릴리의 아이, 제임스의 아들, 그리고 지켜야 할 존재. 말이야 거창하지 세베루스는 그간 그 소년과는 동떨어진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유예는 유예일 뿐, 마침내 때가 오고 만 것이다.

“시간도 참 빠르군요.” 세베루스가 침음했다. “답장이 오지 않았단 건 무슨 말입니까? 입학 원서를 말하는 겁니까?”

덤블도어는 어쩐지 실망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계획은 해리가 편지를 받지 못하면 볼 때까지 편지 폭탄을 보내는 것이었지. 배달된 달걀 안에 하나하나 편지를 말아 넣는 발상은 개인적으로 천재적이라고 자평했지만 시행하기도 전에 불발되고 말았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가끔은 상사의 광기를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세베루스가 할 말을 잃고 그저 눈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자, 덤블도어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해리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 이제 다시 계획대로 해그리드를 보낼 수가 있게 됐네! 얼마나 잘 됐나!”

‘뭐가.’

“그런데 왜 해그리드 씨입니까?” 고르고 고른 질문이었다. 대체 편지 폭탄 운운은 뭐였는지, 소년이 머글 집에 살고 있는 것이 뻔함에도 애초에 왜 제때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는 물어봐 봤자 머리만 더 아파지리라.

덤블도어가 빙그레 웃었다. “혹시 자네가 갈 텐가?”

“미쳤어요?” 직후 그는 정정했다. “아니, 제 말은, 제가 마지막으로 ‘가정 방문’을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잘 알지.”

그때 그들이 얻었던 교훈은 죽음을 먹는 자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서 무언가를 권하는 일을 결코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면 왜 그런 권유를 하시는 겁니까?”

“모르겠나, 세베루스? 바로 그래서라네.”

“……그래서 해그리드 씨라고요?”

“그렇지!” 노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낄낄 웃었다.

세베루스는 어째서 덤블도어에게 머글의 대변자라는 평판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전직 죽음을 먹는 자조차도 그의 발상에 경악하곤 하는데 말이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새 학기가 걱정됐다.


* * *

목 빠지게 호그와트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렸던 해리였지만, 그가 그렸던 그림은 막연하고도 단순했다. 입학 상담이 뭐 별것 있겠는가. 교육과정을 설명하고, 본교의 훌륭한 전통과 차별점을 피력하고, 등록금에 대해 논의하고, 장학금을 가지고 합의를 보고, 회의적인 보호자들을 설득하고, 그 정도 아니겠나.

애초에 해리의 기다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나온 원시적인 기원 행위에 불과했다. 그는 아침 7시부터 사람이 찾아오기를 죽치고 기다렸지만 ‘실제로’ 아침 7시에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평일 아침 댓바람에 사람을 보낸 것일까? 해리는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신 나간 노친네에게 한 푼도 줄 생각 없어!”

절대로…… 내 앞에서…… 알버스…… 덤블도어를…… 모욕하지 마!

버논의 발언에 격노한 해그리드(거인의 이름이다)는 치켜든 우산을 페투니아 뒤에 숨어 있던 두들리에게 겨눴다. 보라색 섬광과 굉음에 뒤이어, 새된 비명이 프리벳가 4번지를 꿰뚫었다.

해리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을 비틀고 펄쩍이며 괴로워하는 두들리의 엉덩이에, 돼지 꼬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돼지 꼬리. 몇 번을 봐도 분명한 돼지 꼬리였다.

사람에게 돼지 꼬리를 달다니!

지금껏 해리는 자신의 마법으로 나쁜 짓을 많이 해 왔다. 아니, 나쁜 짓만 했던 것 같았다. 물건을 훔치거나, 아이들을 겁주거나, 어른들도 겁주거나, 개를 죽이거나(변명하자면 그건 정말로 자기방어였다), 가장 심하게는 식탁을……. 이건 해리의 통제 밖이었으니 논외로 치자.

하지만 사람에게 돼지 꼬리를? 그건 너무…… 파괴적이었다! 해리로선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니, 설령 해리가 작정하고 그러려고 한다 한들, 그런 대단한 재주는 부릴 자신이 없었다.

‘이게 진짜 마법, 진짜 마법사.’

해리가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충격에 휩싸여 있는 동안 해리의 친척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모와 이모부는 괴성을 지르며 두들리를 끌어안았고, 두들리는 꺼이꺼이 울부짖고 있었다.

“이런, 사고 쳤네.” 해그리드가 혀를 찼다. “원래는 돼지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미 너무 돼지 같아서 더 바꿀 게 없었던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돼, 돼지로.” 해리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크흠, 해리?” 해그리드가 해리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이 일은 사람들에게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구나. 어, 나는 원래 마법을 쓰면 안 되거든.”

“하지만 아저씨는 마법사 아니신가요?”

“전과가 좀 있어서.” 해그리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해리는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약속할게요. 절대 아무에게도 말 안 할게요.” 해리는 거인의 딱정벌레 같은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맹세했다.

“고마워. 자, 그럼 가자.”

해그리드가 거대한 손으로 해리의 손을 감싸 쥐었다.

“어, 어디로요?”

“다이애건 앨리! 네 학용품을 사야지.”

그렇게 해리는 무난하게 납치당했다.

어처구니없지만, 해리는 이 살아있는 폭력의 화신과 사랑에 빠졌다. 어쨌든 해그리드는 두들리에게 돼지 꼬리를 달아 주었던 것이다.


* * *

마법세계로 처음 들어간 해리를 얼떨떨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곳에서 해리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리키 콜드런(다이애건 앨리의 입구가 있는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았다. 해리의 부모님을 살해한 살인마, ‘볼드모트’가 엄청난 악명과 공포를 떨치던 악당이었기에, 해리는 그런 그를 물리친 일종의 영웅이란 게 설명이었다.

덮어놓고 좋아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갓난아기가 훈련된 마법사를 상대해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마법세계의 상식이란 말인가? 해그리드는 “그게 기적이기 때문에 네가 ‘살아남은 아이’라고 불리는 거란다”라고 말했지만, 해리는 자신이 일종의 광대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쨌든 해리는 여태껏 자신의 조실부모에 대해 많은 말을 들어 왔지만 그 말을 꺼낸 사람들은 최소한 자기가 무례한 말을 하고 있단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려고 한 거니까). 그런데 마법사들은 부모님이 죽은 가운데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유명한 아이를 만나서 기쁘다고 말하면서 해리가 그걸 ‘좋아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잔인했던 이모와 이모부조차도, 물론 마법에 대해 감추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건에 대해서는 그가 열한 살 가까이가 될 때까지 쉬쉬하고 있지 않았는가. 해그리드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일을 모르고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해리는 아이치고는 드물게 ‘알기에 너무 이르다’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있는 축이었다. (물론 그는 사촌에게 돼지 꼬리를 달아 준 사람과 논쟁하려고 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마법사들의 예의범절은 어딘가 다를지도 몰랐다. 당장 해그리드 건부터 그랬다. 해리는 최대한 이해해 보기로 했다.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해리는 어느새 해그리드와 함께 그린고트 은행에서 나오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배낭에 든 돈이 묵직했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부모님이 이렇게 부자셨다니. 제 이모와 이모부는 부모님이 제 앞으로 한 푼도 남기지 않으셨다면서 늘 식충이 취급을 했거든요…….”

해리를 놀라게 했던 또 다른 사실은 사실 그의 부모님이 아주 많은 돈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더즐리 가족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자신의 취급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해리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는 뜬 눈으로 사악한 친척들에게 유산을 빼앗기느니 좀 가난한 척하고 그들의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쁜 놈들 같으니.” 해그리드가 말했다. “우욱, 그린고트 수레하고는 정말 안 맞아. 난 잠깐 한잔하고 올 테니 교복을 맞추고 있으렴.”

업무 중 술을 마시러 가는 해그리드의 거침없는 모습에 해리는 더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말킨 부인의 로브 가게에 홀로 들어가게 되었다.

“너도 호그와트니?”

해리의 옆에서는 또래의 소년이 마찬가지로 교복을 맞추고 있었다. 아이가 말을 붙여왔다.

“우리 아빠는 옆 가게에서 내 책을 사는 중이야. 엄마는 저쪽에서 지팡이를 보고 계셔. 다음에는 엄마 아빠랑 경주용 빗자루를 보러 갈 거야. 왜 1학년들은 자기 빗자루를 가져갈 수 없는 건지 모르겠어. 아빠를 졸라서 하나 사 달라고 해야겠어. 어떻게든 몰래 가지고 들어가야지.”

해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닥치라고 할 뻔했다가 그런 자신에게 화들짝 놀랐다. 이 아이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강하게 두들리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왜냐하면…… 단지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어리광쟁이라는 티를 내고 있기 때문에? 순간 해리는 자신의 마음 속 어둠을 깨닫고 반성했다.

“너는 빗자루 있니?”

“퀴디치는 안 하니?”

“‘나는’ 하는데. 아빠는 당연히 내가 기숙사 대표 선수로 뽑힐 거라고 하셨어. 솔직히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 넌 네가 어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지 아니?”

“하기야 가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지? 하지만 난 내가 슬리데린에 들어갈 거란 걸 알아. 우리 가족 모두 슬리데린이었거든. 후플푸프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봐,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말지. 안 그래?”

그렇다 쳐도 이 귀찮은 꼬마의 조잘거림은 견디기 어려웠다. 해리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대화를 대강 넘겼다.

“앗, 저 사람 좀 봐!”

소년이 고갯짓한 유리창 바깥으로 해그리드가 씩 웃으며 두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해리는 손을 마주 흔들었다.

“저분은 해그리드 씨야.” 해리가 존경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그와트에서 일하셔.”

“아, 들은 적 있어. 무슨 하인 같은 거라는데. 너는 왜 저 사람이랑 다니니?” 소년의 목소리가 어쩐지 비웃는 듯 변했다. “혹시 네 부모님이 ‘우리’랑 같은 부류가 아니니?”

“납치당했어.” 해리가 태연하게 말했다. “부모님이 마법사셨는데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부엉이를 보내지 못하니까 저분이 오신 거야.”

“으, 응?”

해리의 엄청난 설명에 옆에서 옷에 핀을 꽂던 말킨 부인이 컥 소리를 냈다.

“무슨 농담 같은 거지, 그렇지?”

“아닌데.”

“아무튼 아빠한테 들었는데,” 소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저 사람은 학교 안에 있는 오두막에 사는데 툭하면 술에 취하고 자기 침대를 태워 먹는대.”

주정을…… 부림. 침대에…… 불 지름. 해리는 해그리드의 야성에 또다시 지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알려줘서 고마워. 참고할게.” 해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사람을 태운다는 얘기는 없었니?”

“어, 못 들었는데.”

“뭐,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좋아. 너무 무신경했어. 저분이 네 말을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니? 내가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걱정하지 마. 비밀로 해 줄 테니까.”

“그, 그래……?” 소년은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너 진짜 납치당한 거니?”

“그렇대도.” 해리는 뿌듯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해그리드는 최고야!”

“다 됐다, 얘야.” 소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말킨 부인이 해리에게 말했다. 즉시 해리는 받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너 이름이 뭐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년의 물음에 해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외쳤다.

“해리 포터!”


* * *

“호그와트에는 어떤 기숙사가 있나요? 슬리데린과 후플푸프에 대해 들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으며 해리가 물었다.

“아까 같이 있던 남자애한테서 들었니?” 해그리드가 답했다. “기숙사는 모두 네 곳이야. 그리핀도르, 래번클로, 후플푸프, 슬리데린이 있지. 다들 후플푸프가 얼간이 집합소라고들 하지만, 슬리데린에 들어가느니 후플푸프가 나아.”

“그러면 슬리데린에는 더 멍청한 애들이 가나요?” 해리는 좀전의 성가신 소년을 떠올리며 말했다.

“음, 그건 아니고. 악당이 된 마법사 중에 슬리데린 출신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거든. ‘그 사람’도 슬리데린이었지.”

‘나쁜 사람들이 가는 기숙사에는 가면 안 되는구나.’

해리는 어른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가장 사악한 마법사의 출신을 알아두기로 했다.

“그러면 해그리드는 어느 기숙사를 나왔나요?”

해그리드는 그 질문에 어쩐지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리핀도르. 뭐, 쫓겨났지만.”

‘피할 것: 슬리데린, 그리핀도르.’ 해리는 마음속으로 메모했다.

“네 부모님도 그리핀도르였어. 보통 가족이 같은 기숙사에 간단다. 거긴 가장 훌륭한 기숙사야. 넌 분명 그리핀도르에 갈 수 있을 거야, 해리.”

“오.”

해리는 도로 ‘피할 것’ 목록을 지워버렸다. 그래봤자 학교 기숙사고 다 사람이 가는 곳이었다. 요컨대 간단한 논리학이다. 사악한 사람이 그곳 출신이라는 게 그곳 출신이 다 사악하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해리와 해그리드는 교과서며 학용품을 사러 다이애건 앨리 곳곳을 돌았다. 플러리시 앤 블러트 서점에서 해리는 저주 걸기에 관련된 책 제목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해그리드는 해리가 그 책을 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트렁크 가게에서 해그리드는 해리가 수영장이 들어가는 트렁크를 사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설득 끝에 해리는, 트렁크를 집으로 삼는 건 바보 같은 발상이고 자신에게 그렇게 큰, 그리고 비싼 공간은 필요 없다는 견해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런, 아직 네게 생일 선물도 주지 않았구나.”

막 약재상을 나왔을 때 해그리드가 말했다.

“오늘 같이 해 주신 것만으로도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어요, 해그리드…….”

“에이, 그런 말 말고. 네겐 부엉이가 필요할 거야. 내가 사 주마.”

해리가 움찔했다. 부엉이의 부재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자신에겐 부엉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와 동물 사이의 상호작용은 모조리 비극으로 끝났다. 불도그 리퍼: 질식사, 두들리의 거북이: 쇠약사, 두들리의 앵무새: 실종, 동물원의 보아구렁이: 부상 끝에 사망.

그런 해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그리드는 해리를 아이롭스 부엉이 백화점이라는 간판이 걸린 부엉이 가게로 이끌었다.

갖가지 부엉이와 올빼미가 있다는 간판에 걸맞게 부엉이 백화점은 크고 작은 새장과 그 안에 든 새들로 빼곡했다. 하지만 해리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 꽂혀 있었다. 그곳에는 유달리 큰 몸집에, 눈처럼 티 없이 새하얀 깃털을 가진 아름다운 흰올빼미가 든 새장이 있었다.

해리는 즉시 이 새와 사랑에 빠졌다.

해리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본 해그리드는 말없이 웃으며 새장을 내려 해리의 품에 안겨 주었다.

“너를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해리가 속삭였다. 새는 호박색 눈으로 해리를 응시하며, 나지막하게 삐약이는 소리를 내었다. 해리에게 그것은 마치 그를 승인하는 응답처럼 들렸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해리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 * *

사야 할 물건 중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요술 지팡이였다.

해리와 해그리드는 올리밴더의 지팡이 가게에 들어갔다. 비좁고 허름한 가게는 가게라기보다는 지팡이 상자를 쌓아두는 창고에 가깝게 보였다. 가게 주인 올리밴더 씨는 으스스한 구석이 있는 노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팡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그가 해리의 부모를 죽인 지팡이를 만든 것도 자신이라며 살인 도구에 대한 말을 눈치 없이 주절거릴 때에 이르러선 해리는 그가 좀 정신이 나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리밴더 씨는 해리더러 온갖 지팡이를 휘두르게 만들고 곧장 그것을 빼앗아 가기를 한참을 반복했다. 불합격 판정을 받은 지팡이 상자가 산처럼 쌓였다.

“……호랑가시나무, 불사조 깃털, 28센티미터. 나긋나긋하고 유연하단다.”

해리는 지친 표정으로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이젠 아무런 기대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팡이를 쥐는 순간, 해리는 지금껏 느끼지 못한 따스한 온기와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감각이 해리를 감쌌다.

자신도 모를 고양감에 휩싸인 해리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지팡이 끝에서 붉은색과 황금색 불꽃이 튀어나와 이내 뱀의 모습으로 변했다. 해리가 동물원에서 만났던 불운한 친구와 꼭 같은, 크고 아름다운 보아구렁이였다. 불꽃의 뱀은 가게를 한 바퀴 돌고는 빛의 알갱이가 되어 천천히 사라졌다.

“아름답구나. 아주 훌륭해.” 해그리드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자신의 첫 ‘진짜 마법’에 흥분한 해리는 올리밴더 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분명히 ‘합격’이다. 아직 듣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흥미로워…… 정말 흥미로워…….” 하지만 올리밴더 씨는 모호한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설마 이것도 도로 뺏어가시진 않겠죠.” 해리가 말했다. “전 이게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아, 그런 뜻은 아니었다. 이 지팡이는 틀림없이 널 선택했어. 다만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서 말이지.”

올리밴더 씨는 해리의 이마에 새겨진 번개 모양 흉터를 뚫어지게 보았다.

“왜냐하면, 이 지팡이와 같은 심을 가진 유일한 형제 지팡이가 너의 그 흉터를 만든 지팡이거든.”

볼드모트의 지팡이. 부모님을 죽인 지팡이. 그리고 해리의 이마에 번개 모양 흉터를 새긴 지팡이. 잔뜩 달아올랐던 해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사람’은 대단한 일을 했지. 물론, 끔찍했지만, 대단했어. 너도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것 같구나.”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해리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 * *

지팡이를 마지막으로 해리의 다이애건 앨리 쇼핑은 끝이 났다. 해그리드는 헤어지며 해리에게 킹스크로스로 가는 기차표를 건넸다.

그날 밤 해리는 요술 지팡이를 든 자신이 세상을 호령하는 꿈을 꾸었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

댓글

  • 익명

    깔깔
    • 주유월

      😆
  • k

    해...해그리드가 무슨 어둠의 야인같은 존재가 되고 있어...? 아니 그 틀린 말은 없기도 한데 저 그
    • 주유월

      해그리드는…… 사악해요!
  • 익명

    갈수록 재밌었지네요!! 해리가 혹시 슬리데린 기숙사로 들어가게 될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 궁금해요
    • 주유월

      재밌게 봐주셔서 기뻐요! 이야기는 작품 소개란에 안내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
  • 익명

    해리가 네 기숙사들 중 어디에 가게 될지 궁금해져요. 유월님의 덤블도어가 정말 흥미로워요! 앞으로의 내용도 기대됩니다
    • 주유월

      덤블도어의 광기를 즐겨주세요. 부디 다음 내용도 잘 부탁드립니다!
  • Charming Princess

    '그날 밤 해리는 요술 지팡이를 든 자신이 세상을 호령하는 꿈을 꾸었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
    
    해리?와 해리?의 마음속 어둠이 귀여워요
    
    PS: 고유명사 표기는 구번역 기준인가요?
    • 주유월

      해리(?)를 많이많이 귀여워해 주세요!
      
      고유명사는 웬만하면 구번역을 따라가려고 합니다만 제가 갖고 있는 판본이 신번역뿐이고 또 제가 신번역을 싫어한다 뿐 구번역에 무조건 동의하지는 않기 때문에 신번역 혹은 제 임의의 표기를 사용하기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