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보아구렁이
6화. 재회 (1)
“그런데, 두꺼비 찾는 걸 말도 없이 관두고 왔는데 네빌은 괜찮을까?”
“아무렴 어때. 헤르미온느가 정말 똑똑한 애라면 그냥 반장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는 걸 금방 깨달을걸. 아니어도 뭐…… 알아서 하겠지.”
론의 객실에서 해리와 론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리는 론에게 다섯 명의 형이 있다는 것, 그중 세 명은 지금도 호그와트에 있고, 퍼시라는 형은 반장이라는 것, 형들을 포함한 론의 가족은 모두 그리핀도르고, 다들 론이 그리핀도르에 들어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론은 말포이의 아버지가 과거 볼드모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는데 그가 몰락하자마자 나쁜 마법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혐의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해 주었다(적어도 론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해리는 승장장에서 만났던 말포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앞머리를 멋대로 들어 올리고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느냐고 묘한 어조로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6시쯤 되자 출출해진 그들은 론이 점심으로 먹고 남은 콘비프 샌드위치 한 조각을 나누어 먹었다. 다 말라비틀어진데다 양도 적었지만 해리에게는 말포이와 먹었던 프랑스식 정찬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어느덧 창밖의 하늘이 어둑해지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 무렵 그들의 화제는 마법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해리가 8월 내내 방 안에 자신을 가둬 놓고는 교과서에 있는 것 중 시도할 수 있는 건 거의 모두 시도해 봤다고 말했을 때 론은 꽤 놀란 눈치였다.
아무래도 아까의 헤르미온느처럼 교과서를 모두 외우지 않으면 죽는 줄 아는 책상물림으로 오해를 사게 된 것 같아 머쓱해진 해리는, 자기가 그랬던 건 오직 그때의 자신이 마법의 세계에 대해 갓 알게 된 흥분한 11살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어차피 친척들이 그가 방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 안에서 뭐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해리 너 대단하다. 난 딱히 성공해 본 마법이 없거든. 어제는 스캐버스를 노란색으로 바꿔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자, 보여 줄게…….”
론은 짐에서 여기저기 조금씩 깨져 있는 낡은 요술 지팡이를 꺼내고는 자기 무릎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뚱뚱한 회색 쥐를 겨누었다.
그때, 객실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손님이 들어왔다. 헤르미온느와 네빌이었다. 그들은 아까와 달리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너희 여기에 있었구나?” 헤르미온느가 뾰족하게 말했다. “말도 안 하고 도중에 가 버리다니! 나랑 네빌이 얼마나 어리둥절했는지 아니?”
“설마 지금까지 두꺼비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니지?” 해리가 살짝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사실, 트레버는 너희들이 없어지고 거의 바로 다음에 찾아냈어. 그런데 문제는…….”
헤르미온느는 말끝을 흐렸다. 말을 이은 사람은 네빌이었다.
“……다시 잃어버렸어!”
“어이구야.” 론이 감탄했다.
그 말에 론에게로 고개를 돌린 헤르미온느는, 론의 지팡이를 보고는 탄성을 흘렸다.
“와, 너 지금 마법 쓰니? 나도 보여 주라.”
돌연한 화제 전환에 론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목을 가다듬고는 주문을 외웠다.
“선샤인, 데이지, 버터 멜로. 이 멍청하고 뚱뚱한 쥐를 노랗게 바꾸어라.”
그렇게 말하며 론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거 제대로 된 주문 맞니?”
헤르미온느의 의심 어린 표정에, 해리는 론을 위해 무언가 해명할 필요를 느꼈다.
“주문이 잘못된 건 아닐 거야. 1학년 교과서에는 없지만 오래된 주문 중에는 이런 운문형 주문도 꽤 있거든.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보면, 수염 끝이 약간 노랗게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우리 할머니도 가끔 그런 주문을 외곤 하셨어.” 네빌이 맞장구쳤다.
‘진짜였어?’
해리는 어리둥절했다. 기실 해리는 그런 건 알지 못했고, 그냥 되는 대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교복 안주머니에서 자기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그럼 나도 해볼래!”
론의 말 없는 허가의 몸짓에, 헤르미온느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선샤인, 데이지, 버터 멜로, 이 쥐를 노랗게 바꾸어 주세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에서 파직하고 불꽃이 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졸고 있던 스캐버스가 깜짝 놀라 일어나 제 자리를 팽글팽글 돌았다. 물론 쥐는 여전히 회색이었지만, 헤르미온느는 지팡이 끝에서 무언가 나왔다는 것에 흥분한 것 같았다.
“방금 뭔가 일어났어! 너희도 봤니?”
‘원래 요술 지팡이는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불꽃이 튀긴다고, 너희처럼 자기 마법을 제대로 못 다루는 어린애들은 특히. 교과서를 다 외웠다면서, 순진하긴…….’ 해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꼬맹이들의 멍청한 짓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볼거리 같았다.
네빌이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그럼……. 나도!”
네빌이 꺼내 든 지팡이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무언가 반짝거리면서 불길한 파직파직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스캐버스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찍찍거리기 시작했다. 쥐는 필사의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주인은 구원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살아날 길은 있었다. 쥐의 물기 어린 눈망울이, 상황을 관망하는 녹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런, 눈 마주쳤다.’
갑작스럽게 해리는,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잔악한 애새끼들에게 둘러싸인 불행한 생물을 직시하고 말았다. 불안에 떠는 회색 쥐에게서 두들리의 죽은 거북이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크흠.” 해리가 헛기침했다. “얘들아, 그……. 주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녀석이 다칠 수 있지 않을까? 불꽃이 튀는 지팡이 끝으로 쥐를 쿡 찌르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아. 어렸을 때 내 사촌이 키우던 거북이가 너무 이리저리 건드려진 끝에 죽어 버린 걸 봤거든.”
“뭐!” 론이 외쳤다. 그러고는 마치 보호하듯 스캐버스를 들어올려 껴안았다. 같은 객실에 있는 내내 아무 쓸모가 없다면서 불평을 해댔지만 역시 자기 쥐가 죽는 걸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해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쥐를 바라봤다. 그 순간 해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스캐버스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던 것이다.
해리는 그저 머쓱하게 웃었다.
론이 스캐버스를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서야, 손님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떠올렸다.
“맞다, 우리 두꺼비 찾으러 왔었지!”
“트레버!” 네빌이 울상을 지었다.
“아, 그냥 반장 객실에 가서 찾아달라고 말해. 걔들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일이야. 우리 같은 꼬마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 주는 거. 분명 바로 찾아 줄걸.” 해리가 태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네빌은 얼굴이 환해져서는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는 달려 나갔다. 헤르미온느는 네빌을 따라 나가려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멈췄다.
“잠깐, 그걸 알고 있었으면 아까는 왜…….”
해리가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했다.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야. 우리 나이에는 시시때때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마련이지.”
“그래……? 아무튼 너희도 빨리 옷을 입는 게 좋을 거야. 이제 거의 다 도착했거든.”
헤르미온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고는, 그 말과 함께 객실을 나가 버렸다.
직후, 네빌이 다시 돌아와서 물었다. “그런데 반장 객실이 어디니?”
네빌까지 내보내고 난 뒤 론은 헤르미온느의 말을 따라 바로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했다. 그제서야 해리는 짐을 모조리 말포이 패거리의 객실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녀석들이 내 짐에 해코지를 하진 않았겠지? 헤드위그는 괜찮을까?’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는 해리를 눈치챈 론이 말했다.
“아무래도 거기로 도로 돌아가긴 힘들 것 같은데, 내 옷 입을래? 빌이 물려준 낡은 교복이라도 괜찮다면.”
론의 교복은 해리에게 딱 맞았다. 정작 옷 주인인 론은 큰 키 때문에 옷자락 아래로 운동화가 보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론에게도 모자는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해리는 그저 자기 말고도 모자를 안 쓴 신입생이 있기만을 바랐다.
옷을 다 갈아입을 무렵 딱 맞춰 안내 방송이 나왔다.
“5분 뒤에 호그와트에 도착합니다. 짐은 따로 옮겨질 테니 열차에 그대로 두고 내리시면 됩니다.”
긴 여행의 끝이었다.
* * *
“1학년들은 이쪽으로!”
반가운 해그리드를 따라 해리와 신입생들은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렀다. 돌계단 위 거대한 참나무 정문이 열리고, 맥고나걸 교수라고 불린 마녀를 따라 그들은 홀에서 약간 떨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호그와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곧 개강 연회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대연회장에 자리를 잡기 전 기숙사 배정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잠시 후 전교생 앞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니 기다리는 동안 모두 옷차림을 단정히 하시기 바랍니다.”
맥고나걸 교수의 시선이 해리의 휑한 머리 위에 잠깐 머무르는 것 같았다.
준비가 끝나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며 맥고나걸 교수는 방을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자 신입생들은 모두 대단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외워 온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태평한 사람은 해리뿐인 것 같았다.
어쩐지 해리는, 이 모든 엄숙하고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는 그냥 신입생들을 골려 먹기 위한 전통의 신고식이고 실제의 배정식은 정말 별것이 없으리란 것을 ‘알았다’.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의 입구를 ‘알았던’ 것과 같았다.
‘다들 뭘 그렇게 겁을 먹는지……. 하여간에 꼬맹이들이란…….’
해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 지루한 기다림이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맥고나걸 교수가 돌아온 것은 전통의 유령 행진까지 끝난 다음이었다. “따라오세요.”
그들은 홀을 가로질러 대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검은 천장을 수놓은 별빛과 허공에서 빛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촛대, 반짝이는 황금 접시와 잔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에 해리는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반가움을 느꼈다.
일련의 과정이 지나고, 신입생들은 머릿속을 읽는 모자를 그냥 쓰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론이 트롤과 레슬링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해리는 빙그레 웃었다.
배정식은 알파벳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맥고나걸 교수가 긴 양피지 두루마리를 들고 신입생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론과 같은 기숙사에 가고 싶었던 해리였기에, 론보다 자신의 순서가 앞인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가족이 대체로 같은 기숙사에 간다는 해그리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도 론도 무난하게 그리핀도르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또한 “말포이, 드레이코!”가 쾌속으로 “슬리데린!”에 배정된 것을 해리는 잘 눈여겨 두었다.
마침내 “포터, 해리!”의 차례가 되었다. 해리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대연회장이 술렁였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이라도 된 듯한 이 취급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에서 뛰쳐나가서 이곳에 오게 된 건가? …….
가득 긴장한 마음으로, 해리는 의자에 앉고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 썼다. 교복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기에 먼저 모자를 벗을 필요도 없었다.
‘제발 그리핀도르! 정 안 된다면 슬리데린은 걸러 줘! 그럼 이만 실례, 감사했습니다!’ 해리가 속으로 외쳤다.
“흠.”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육성이 아닌 머릿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기묘한 소리였다. “되게 흥미로운 정신이네. 이렇게 복잡한 정신 구조를 가진 아이는 정말 오랜만이야. 네가 슬리데린에 간다면 위대해질 수 있을 거야. 굳이 피하는 이유라도?”
정신적으로 걸어오는 대화에 해리는 순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당황하고 말았다. 잠시 후, 해리는 생각을 정리해 ‘말했다’.
‘글쎄, 슬리데린에 대해 나쁜 말을 듣긴 했지만 그건 그리핀도르에 대해서도 비슷하고. 그냥 오늘 한나절 내내 나를 반쯤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간 애가 있는데 걔가 슬리데린에 갔거든. 어쨌든 내가 정말 불합격이 아니라면 그리핀도르에 가고 싶어. 또 내가 뭔가 부탁을 할 수 있다면 론 위즐리라는 아이도 나와 같은 기숙사에 넣어주지 않을래?’
“그래서, 슬리데린에 가는 게 ‘겁이 난다’? 흠……. 뭔가 좀…….”
해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포이에 대해선 아예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불현듯, 해리의 뇌리에 깨달음이 반짝였다. 아니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모자는 해리가 그리핀도르에 진정 어울리는 용기를 가졌는지를 시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리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죄다 끌어올려서 최대한 ‘용맹하게’ 말했다.
‘하! 전혀 아닌데? 슬리데린에 가는 것 따윈 전혀 무섭지 않아.’
“아 그래 알았어 슬리데린!”
모자의 마지막 말이 대연회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
…….
…….
‘뭐라고오오옷.’
속았다.
아니, 모자를 과대평가했다. 정확히 11살 아이의 단순무식한 정신을 분석하는 데에만 특화된 이 멍청한 모자는 고도의 반어법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천 쪼가리가 틀림없었다!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하지만 해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해리가 공황에 빠진 사이 모자는 해리의 머리에서 벗겨졌고 슬리데린 테이블에서는 의례적인 박수를 뛰어넘은 환호성이 쏟아졌다.
‘없었던 일로 하면 안 될까요?’
해리는 떨리는 눈빛으로 맥고나걸 교수를 쳐다봤다. 그녀는, 당연히, 엄숙하게 고개를 저었다.
해리는 넋 빠진 표정으로 슬리데린 테이블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대연회장 이곳저곳에서 해리를 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의 해리에게 그따위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론이 슬리데린에 들어와야 한다……. 제발 슬리데린……. 무조건 슬리데린……. 반드시! 슬리데린!’
옆에서 말포이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해리는 이를 악물고 배정식이 이루어지는 자리만을 노려봤다.
그리고 마침내……. “위즐리, 로널드!”
“그리핀도르!”
해리는 이 학교를 졸업하는 날 교장실에 침입해 모자를 불태워 버리겠다고 자신에게 맹세했다.
발행
Charming Princess
pi2022년 9월 1일 08:29:10
k2022년 9월 1일 12:31:13